UPDATED. 2022-09-28 18:01 (수)
[한민의 문화등반 28]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넘어서
[한민의 문화등반 28]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넘어서
  • 한민
  • 승인 2022.01.20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민의 문화등반 28

 

한민 문화심리학자

한국은 전통적으로 집단주의 사회였다. 집단주의란 나 자신보다 내가 속한 집단이 우선되는 사회다. 속한 집단이라고 학교나 회사 같은 2차적 집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집단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은 가족이다. 그 배경에 농경문화가 언급되기는 하지만 집단주의의 본질은 집단이 개인의 삶을 책임져 주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있다. 

우리들의 아버지 세대만 해도 아들은 가문의 명운을 지고 살아야 했다. 먹고살기도 빠듯한 살림에 모든 자식들을 공부시킬 수 없었던 부모는 장남 혹은 아들들에게 집중적으로 투자를 했다. 그 과정에서 다른 형제나 누이들은 교육에서 소외되어야 했고 어린 나이에 공장을 다니며 공부하는 형을 지원해야 했다. 

그렇게 집단의 지원을 받은 개인은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다시금 집단을 부양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한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내야 하는 장남(혹은 아들)의 삶도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 형제들의 기회를 빼앗았다는 죄책감, 가족의 안녕과 장래가 자신의 손에 달렸다는 책임감까지. 

그렇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삶과 자기실현은 그리 중요한 가치일 수 없었다. 자신을 위해 희생한 부모와 형제를 저버리고 자신의 인생만 챙기려 한다면 저만 아는 놈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 뻔한 것이다.

그러나 경제 사정이 나아지고 한 가정에서 낳는 자녀의 수가 줄면서 교육의 기회가 비교적 평등하게 주어졌고, 교육의 결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가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한국에도 개인주의가 싹트기 시작한다. 
개인주의는 자신이 취하는 행동의 이유가 자기 스스로에게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어떤 행동을 하기 전 집단의 요구나 분위기를 고려하는 집단주의와 다르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개인주의 문화가 점차 확산되면서 오랫동안 당연시해왔던 집단주의 문화의 단점이 점차 부각되고 있다.

대학생들은 조별과제를 최악의 활동으로 꼽고 있으며 젊은 회사원들은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회식이나 주말 산행 따위의 집단적 조직문화에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가정에서는 자녀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부모에 대한 비판이, 사회적으로는 깊이 얽히고 싶지 않은 지인들의 오지랖에 대한 불만이 높고, 다른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혼자 밥을 먹고 영화를 보며 술을 마시는 문화가 날로 확산되는 추세다. 

그렇다면 개인주의는 이런 모든 문제의 답이 될 수 있을까? 우리가 피곤하고 성가신 이유는 오직 집단주의 문화 때문일까? 사회가 점차 개인화되고 파편화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비혼이 늘고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범죄 및 복지의 사각지대가 생겨나는가 하면 고독사의 빈도는 점점 높아지고 연령은 점점 내려가고 있다. 죽을 때까지 스스로 찾아야 하는 삶의 의미 또한 개인주의 문화에서 주어지는 과제다.

많은 사람들은 개인주의 문화를 가진 서양 사람들이 대단히 행복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개인주의 문화는 개인에게 기본적으로 독립적일 것을 요구한다. 개인주의 문화의 사람들은 매사에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 책임 또한 자신이 감내해야 한다. 그는 자신이 잘 적응하고 있으며 행복하다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약한 사람 또는 패배자라는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동양인(한국인)들의 주된 정신장애가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우울이라면 서양인들의 주된 정신장애는 독립적 개인으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압력에서 오는 불안이라 할 수 있다. 개인주의 문화나 집단주의 문화나 그 나름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집단주의 문화에 지친 나머지 반대급부로 개인주의 문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개인주의 문화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더구나 우리가 기왕 가지고 있는 집단주의적 문화는 날로 파편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훌륭한 대안이 되어줄 수도 있다. 집단주의는 나쁘고 개인주의는 좋다는 식의 접근보다는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는 새로운 관점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