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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융합
언어의 융합
  • 홍예솔
  • 승인 2022.01.19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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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홍예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분자의학 및 바이오제약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언어’의 정의를 누군가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떠오르는 여러 생각 중 하나만 골라 대답하기에는 언어가 내포하는 의미의 범위가 너무 넓다. 언어를 정의하려는 여러 시도 중 일부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고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체계”,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는 의미들의 체계”, “언어 공동체 내에서 이해될 수 있는 말의 집합”. 그렇다면 ‘융합’ 은 무엇일까? 융합은 “다른 종류의 것이 서로 구별이 없게 하나로 합해 지는 일” 로 정의된다.

학제 간 연구의 융합은 오랜 시간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융합 과학은 학문의 결합, 통합 및 응용을 뜻하며, 지식 영역을 별개로 구분하지 않고 각 학문의 개별적 특성을 모두 고려해 통합적인 연구 결과를 도출한다. 즉, 넓은 시야를 갖고 창의적인 연구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융합 과학‘, ’융합 과학형 인재‘는 필수적이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문과 과정을 수업했고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12년 동안 글로벌 제약사의 영업 및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했다. 회사 업무 중 학회에서 접하게 된 의료 데이터의 비전에 매료돼 의료 데이터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었고, 수년간 고민한 끝에 회사를 그만두고 늦깎이 대학원생이 됐다. 물론 학부 전공, 회사 업무와 완전히 다른 분야에 도전하며 두려움도 컸다. 그러나 10여 년간 회사 생활을 하며 바이오 제약산업의 생태계 구조와 작동 원리를 체득했고, 이에 더해 의료 데이터를 이해하는 전문성을 갖추면 헬스케어 산업에 꼭 필요한 융합형 인재가 되리라 생각했다.

전일제 대학원생으로 공부를 시작한 후 부족한 배경지식을 따라잡기 위해 남들보다 늦은 시간까지 추가 공부를 해야 했고, 의료 데이터 분석을 위해 처음 보는, 가끔은 컴퓨터가 나에게 그만 괴롭히라고 말하는 것 같아 미안하게 느껴지는, 검은 바탕에 영어와 기호가 가득한 코딩 프로그램을 배워야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대학원 연구 활동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언어‘ 였다. 

최근 ‘이과생과 문과생의 차이’ 시리즈가 유행했다. 가령 “눈이 녹으면?”이라는 질문에 이과생은 “물이 된다”고 대답 하고 문과생은 “봄이 온다”고 대답한다. 문과생과 이과생의 사고방식 차이를 바탕으로 한 유머이다. 그러나 나는 이 가벼운 농담을 웃어넘길 수 없었다. 내가 속한 분자의학 및 바이오제약학과의 학생 대부분은 학부에서 이공계를 전공했고, 나와 같이 입학한 학생 중 문과 전공생은 내가 유일했다.

하나의 연구 주제를 두고 의견을 나눌 때 나의 사고방식과 주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느 이공계 전공 학생들과 달랐다. 연구 주제와 관련한 자료를 찾을 때 접근 방식이 달랐고, 생각을 정리하는 논리의 흐름이 달랐다. 예를 들어, 바이오 벤처 기업을 조사하면 나는 기업이 가진 비전, 전체 시장에서의 위치와 성장 가능성을 먼저 조사했고 다른 학생들은 기업이 가진 특정 기술에 집중했다. 종종 내 생각을 발표할 때면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청중에게 명확히 전달되지 않아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소위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평가받던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물론 나의 경험은 문과생이어서가 아니라 회사 생활의 업무 습관에 기인했을 수도 있으므로, 나의 경험이 모든 문과생이 겪는 상황이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나의 사고와 표현 방식은 내 전공 분야와 맞지 않는 것일까? 나는 나의 언어가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고 생각한다. 연구자는 연구 분야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 연구자 간 대화를 할 때, 나에게 당연한 지식이 상대방에게는 생소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습관적으로 각자의 언어만 사용하기도 한다. 앞서 정의한 대로 융합 과학은 지식 영역을 별개로 구분하지 않고 통합적인 연구 결과를 도출하는 게 목표다.

기술과 학문의 융합을 위해서는 연구자 간의 원활한 소통이 우선돼야 하고, 소통을 위해 언어의 융합은 필수적이다. 연구자라면 나의 전공 분야와 지식에 자부심을 품어야 하지만, 나의 자부심이 잘못된 방향으로 작용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보수적인 자세를 취하며 내 것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나는 나의 언어를 다른 동료들과 융합해 가는 과정 중이다. 그리고, 여전히 다른 학생들은 하지 못한 나의 경험이 어딘가에 융합돼 내가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연구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학문후속세대로서 우리가 꾸려나갈 지식 공동체 내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언어’를 통해 지식을 융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홍예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분자의학 및 바이오제약학과 석박사통합과정

2009년부터 2020년까지 아스트라제네카 등 글로벌 제약사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의료 데이터를 이용해 신약 개발 과정을 효율화하는 연구를 수행중이다. 『K-방역은 없다』의 공저자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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