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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 현대 철학을 열다
현상학, 현대 철학을 열다
  • 김재호
  • 승인 2022.01.21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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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섭 (엮음) 외 9인 지음 | 세창출판사 | 376쪽

“사태 자체로 돌아가자!”
관념의 함정에 빠진 철학을 구출한 후설의 외침
후설로부터 시작된 현상학은 어떻게 현대 철학의 새 시대를 열었는가?

현상학의 시작, 에드문트 후설
왜 현상학인가?

현상학이 등장하기 전까지 철학은 위기에 처해 있었다. 수학과 자연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발전한 심리학은 그동안 철학의 전유물로 여겼던 인간 정신의 수수께끼를 과학적 방법으로 해명할 수 있다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러한 심리학의 혁신은 이내 모든 학문의 기초가 심리학이라는 믿음까지 확산시켰다. 후설이 보기에 심리학주의란 불확실한 가설에 의지하는 경험과학적 방법을 차용해서 토대를 구축하고자 하는 학문에 불과했다. 만약 심리학이 모든 학문의 토대라면 개연적인 타당성만을 갖는 경험과학을 보편타당한 지식의 토대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 것이다.

 

후설이 보기에 어떤 학문이 모든 개별 학문의 토대가 될 수 있다면 그 학문은 자신의 타당성을 어떤 다른 학문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입증해야 하며, 가장 객관적이고 확실한 출발점을 갖고 있어야만 했다. 철학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데 현상학이야말로 그런 철학을 위한 혁신의 상징이었으며 ‘사태 자체로’는 그 캐치프레이즈였다. 기존 철학의 한계를 후설은 ‘지향성 개념’을 통해 돌파하고자 했다.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의식이란 항상 무엇에 대한 의식’이라는 프란츠 브렌타노의 테제를 발전시킨 후설의 현상학은 양자역학의 막스 플랑크, 정신분석의 지크문트 프로이트 그리고 순수지속의 앙리 베르그송과 더불어 후설을 20세기를 견인할 대학자의 반열에 올려놓게 된다. 날카롭고도 집요한 철학자 후설은 일평생 연구에 매진하는 동안, 초기의 기술적 현상학에 결여된 ‘절대 명증’이라는 보편성을 탐색한 중기의 선험적 현상학을 거쳐 서구 학문의 위기 극복이 목표가 되는 생활세계(Lebenswelt) 현상학에 다다르게 된다.

후설의 현상학이 중요한 이유는, 의식 일반의 본질과 그 작동 방식에 대해 치밀한 분석을 시도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 학문과 정치 상황의 위기를 진단해 경고하는 선명한 역사의식도 피력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지구상의 각종 위험을 내다보는, 유럽 역사의 이성적 휴머니티의 회복과도 관련된다.

하이데거를 비롯한 네 명의 현상학자,
후설을 계승하며, 후설식 정통주의에 갇히지 않은, 후설의 후학들

“인간의 ‘본질’은 그의 현존재에 있다.”
후설의 제자였던 마르틴 하이데거는 후설이 지향성을 통해 설명하는 ‘선험적 주관’ 대신에 시간적 존재로서 ‘현존재(Dasein)’를 새로운 주체로 이해하면서부터 후설에게서 선명히 멀어졌다. 후설 현상학에서 선험성은 인식론적 지평의 직관으로 주어지는 데 반해, 하이데거가 말하는 현존재의 세계는 전보다 실천적인 지평에서 드러난다.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을 열어 준 후설 현상학의 공로를 인정하면서 하이데거는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거듭난다.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 제시된 전복적 사유 방식이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가 주축이 된 프랑스 실존 철학을 비롯한 현대 철학에 많은 영감을 끼쳤기 때문이다.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다.”
막스 셸러의 철학은 한마디로 감정주의라고 할 수 있다. 후설에게서 강조되었던 이성이 진리를 발견하는 데 있어 부차적인 역할을 할 따름이고, 감정이야말로 진리를 인식하는 주체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라’는 이성의 도덕 법칙은 ‘생명이 귀중하다는 느낌, 감정’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다. 셸러는 인간과 동물이 감지적 충동, 본능, 연상기억, 실천적 지성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돌연히 인간과 동물 사이에 벽을 치고, 동물이 가지지 못하는 정신을 인간만의 것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과연 이것이 정당한가는 현대의 동물 행동 연구를 통해 검토되어야 한다. 생존 초월적인 행동들이 동물에게도 존재하며, 어느 정도 본질직관 능력과 자기절제 및 타자 배려의 능력이 있다면 동물들의 인격성도 인정되어야만 한다.

“감정이입은 다른 사람의 인격 그 자체로 향해 있는 인식 행위다.”
후설의 조교이자 유일한 여성 현상학자인 에디트 슈타인은 타자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감정이입 개념과 마주한다. 슈타인은 철학에 접근하는 방법이 우리의 경험으로 시작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독아론, 곧 자아 중심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실재를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타자로의 개방’이라고 본 슈타인은, 자신과 후설 사이의 현상학적인 간극을 뚜렷이 밝히게 된 것이다. 그는 독립적인 타인을 인정하는 ‘대상성’, 같은 인간으로서 비슷한 ‘육체성’, 타인의 자아를 나와 다른 자아로 지각하는 ‘독립성’, 고유한 정신적 주체와 소통하기 위한 나와 타인의 사이의 영역을 인정하는 ‘사이성’이라는 네 가지 기준으로, 실재로서의 타자를 인정함으로써 실현 가능한 감정이입의 원리를 밝혔다.

“인간은 세계에 열려 있는 존재자다.”
슈타인과 마찬가지로 후설의 조교였던 오이겐 핑크는 후설 사유에 내재한 현상학의 자기 비판적 틀인 ‘현상학의 현상학’을 방법론으로 삼아, 전반기에는 선험적 주관을 메온(μὴὄν), 곧 비존재라 여기는 현상학적 이념으로 후설의 주요 개념들을 보완, 수정하고자 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후반기로 가면, 후설 현상학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하이데거 사상에 강한 영향을 받으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철학을 개척한다. 그는 존재론 전통에 서려 있는 ‘세계 망각’을 비판하면서, 단순히 사물을 사유하는 범주를 벗어나 세계 그 자체를 사유하려 했다. 그에게 존재의 문제란 요컨대 인간이 개입된 ‘우주적 운동’으로 드러난다.

“타자의 참된 자율성, 다름을 인식한다.”
얀 파토치카도 핑크처럼 후설로부터 출발했지만, 세계와 인간 실존 사이의 ‘조화로운 결속력’을 발견하고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접하면서 자신만의 현상학을 발전시켰다. 그렇게 파토치카는 정착, 자기 연장, 돌파라는 실존의 세 가지 운동으로 ‘비주관적 현상학’을 내놓게 된다. 이것은 그의 핵심 개념인 ‘나타남(Erscheinen)’으로의 귀환이었다. ‘나타남’이란 자아에 의존하지 않고 세계와 인간 실존이 나타나는 근원적 현상을 고찰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그의 철학은 ‘나타남 너머’를 구하는 형이상학이 아니라 ‘나타남 자체’를 현상적 맥락에서 자각하고 있다.

현대 철학의 교두보,
21세기 프랑스 현상학 이전의 현상학,
지금 독일 현상학을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은 프랑스로 넘어가기 이전의 독일 현상학의 지형도를 6명의 철학자를 통해 그린 것이다. 특별히 후설은 전기, 중기, 후기 3시기로, 하이데거는 전기, 후기로 나누어, 네 명의 다른 철학자들과 함께 총 9편의 글로 상술했다. 이 책의 특징은 서두의 「총론」을 통해 21세기 현재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프랑스 현상학의 얼개를 ‘계승’과 ‘현황’이라는 제목에서 자세한 정보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 구성을 보면, 프랑스 현상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험적 관념론인 후설 현상학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두 가지 경향의 현상학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주체와 세계 사이의 동위 협력적(coordinative) 긴장이 유지되고 있는 ‘조응의 현상학’으로서 메를로퐁티가 이끌었다. 둘째는 에마뉘엘 레비나스와 미셸 앙리로부터 촉발된 3세대 현상학자들의 ‘실재론적 현상학’으로서 그 아우라가 현재 팽배해 있다.

20세기, 후설의 현상학은 위기에 빠진 철학을 구하면서 현대 철학의 무대를 열었다. 처음 촉발된 이후 여러 분야로 뻗어 나가면서 인문・사회과학과 예술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태 그 자체로 돌아가자’는 선언은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유의미한 질문을 던진다. 후설의 현상학은 지지를 받거나 보충되기도 하고, 때로는 반박되기도 하면서 다양하게 발전했다. 결국 일련의 모든 과정이 현대 철학 전체의 발전을 이끈 것이다.

한국현상학회가 기획한 이번 공저는 독일 현상학을 갈무리하는 것을 넘어, 하이데거의 ‘존재’, 셸러의 ‘공감’, 슈타인의 ‘감정이입과 타자’, 핑크와 파토치카의 ‘세계’를 횡단함과 동시에 프랑스 현상학의 현재를 낳은 후설 현상학의 궤적을 스케치한 것이라 하겠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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