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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박사까지 하게 되었을까?
나는 왜 박사까지 하게 되었을까?
  • 오주영
  • 승인 2022.02.07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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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오주영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박사과정

나는, 어쩌면 우리는 어쩌다가 박사까지 하게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답을 하기 전에, 프랑스의 소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 2권"에서 나온 문구 중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마취 전문 의사였던 '미카엘 팽송'은 이런 말을 했다.

의대 친구들 중에는 자기의 약점과 연관이 있는 분야를 전공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건선반점을 달고 사는 친구가 피부과를 선택하고, 소심증이 있는 친구가 자폐증을 치료하고 변비환자가 항문외과 전문의가 되는 식이었다. 심지어는 정신 분열증이 있는 친구가 정신과 의사가 되기도 했다. 마치 자기들보다 더 심각한 환자들을 접함으로써 스스로를 치료하려고 그러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나아가 우리는 왜 박사를 준비하게 되었을까? 석사과정 2년을 마치고 이제 박사과정 4년차로 들어선 필자는 '여전히 잘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다.

되돌아보면 유년시절부터 '잘 안다는 사실'에 유난히 엄격한 편이었다. 예를 들면, 영어를 배울 때 알파벳뿐만 아니라 영어 발음, 파닉스 패턴까지 다 섭렵을 해야 비로소 잘 아는 것이라고 자부했기에, 본인이 또래들보다 영어를 조금 더 잘 했음에도 누가 영어를 잘 아느냐고 물어보면 잘 모른다고 대답하기 일쑤였다. 어렸을 적 필자가 느끼기에 그 상태에서는 영어를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 힘들었다. 다 아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잘 안다는 상태는 무엇일까? 아직까지 필자의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 중 하나다.

필자는 대학원생이라는 이름 아래 약 5년 이상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다. 실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논리를 세우고 논문을 작성하거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과연 내가 잘하는 건가?’ 혹은 ‘과연 내가 이렇게 하는 게 옳은 방향인가?’라고 자주 생각했던 것 같다.

의구심에 박사과정을 하는 동료들에게도 필자와 같은 생각이 드는지 물어본 적도 있다. 되돌아온 답은 필자가 생각한 것과 비슷했다. 어쩌면 우리는 ‘잘 모르기 때문에’ 박사가 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 지인이 SNS를 통해 사진 하나와 함께 메시지를 보내왔다. 우스갯소리로 떠돌아다니는 학사, 석사, 박사, 교수의 차이점을 적어놓은 문구였다.

 

앞서 말한 대로, 연구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투성이라고 실제로 느꼈기 때문에 이 메시지를 읽고 공감했다. ‘박사’라고 하면 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이라고 많이들 생각하지만, 사실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아마도 연구는 계속해서 자신이 몰랐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실을 몰랐던 연구 초반에는 알아가는 기쁨보다 모르는 것에서 오는 불안감이 더 컸던 것 같다. 부족한 점이 보일 때마다 과연 내가 잘하는 것인지 나아지지 않는 것이 아닌지 노파심이 들었다. 이러한 불안은 비단 필자뿐만 아니라, 학위를 이미 취득했거나 혹은 앞으로 취득할 예정인 사람들 모두 공통으로 겪어왔고 앞으로도 수없이 겪을 문제일 것이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박사과정생을 포함한 모든 연구자는, 자신만의 고유한 돛단배를 타고 무언가의 목표를 향해 망망대해에서 노를 젓고 나아가는 항해사가 아닐까 싶다. 구체적이고도 추상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신이 추정했던 가정과 실제 실험 결과가 맞아떨어지는 소위 대어를 낚을 때도 있겠지만, 쓸모없는 돌덩이를 건져 올리는 경우는 더 많을 것이다.

여기저기서 남들은 월척을 건져 올리는데, 내가 낚는 고기들은 전부 다 보잘것없는 작은 물고기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바로 ‘비교하지 말고 자책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나만의 때와 길이 있다고 자신을 믿으며 꾸준히 그 모르는 길을 자신의 길로 만들어나가면서 나아가는 것이 본인의 목표에 가장 빨리 도달할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연구뿐만 아니라, 사실 우리는 동시에 자신에 대해서 ‘가장’ 잘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잘 모르기 때문에 항상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남들보다 더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모른다는 것은 본인에게 닥친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는 원인이 되고, 이는 성장을 향해 한 걸음을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 모름을 발판으로 다시 다른 모름에 도달하게 되고, 이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본인의 인식을 확장하고 더 멀리 나아가게 한다.

만약에 모든 것을 다 아는 상태가 되면 어떻게 될까? 나아가던 발걸음은 정체되고 말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잘 모르는 사람’이기에 더 나아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모른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로 연구에 임하게 된다면, 우리는 더욱 성장할 수 있으며 각자의 필드에서 지식을 확장해가는 ‘더 모르는 사람’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오주영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박사과정
금속 입자 기반의 고에너지 물질에 대한 연소 반응과 노화 효과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동시에 잘하는 연구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계속 고찰 중이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알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며 성장을 꾀하고 있다.

주요 저서, 논문, 번역서: 티타늄 기반의 고에너지 물질 개시제에 대한 노화 효과와 이로 인한 연소메커니즘의 변화를 다룬 논문 “Critical changes in the ignition and combustion characteristics of aged titanium-based initiators”을 게재한 바 있으며, 이와 같은 연구 내용을 발표하여 2020년도 한국항공우주학회, 한국추진공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우수논문발표상을 수상했다. 2021년도에는 한국연소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우수논문상과 우수학위논문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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