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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적인‘개인의 자유’는 환상 …‘몸’의 관점을 더하다
의식적인‘개인의 자유’는 환상 …‘몸’의 관점을 더하다
  • 김봉억
  • 승인 2022.02.09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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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_ 융복합 첨단연구의 현장 ‘체화된 마음 연구’ ② 몸된 자유란 무엇인가? 추상적 자유를 넘어서

 

<교수신문> 특별기획 융복합 첨단연구의 현장 ‘체화된 마음 연구’두 번째는 ‘몸된 자유란 무엇인가? 추상적 자유를 넘어서’라는 주제로 이어간다. 김종갑 건국대 몸문화연구소장(영어영문학과)과 문화비평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가 대담을 나눴다. 

언뜻 보기에 자유는 체화인지라는 연구단의 전체 프로젝트와 무관해 보일 수가 있다. 그러나 체화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 자유만큼 좋은 주제는 없다. 우리는 자유를 탈신체적으로, 즉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이나 몸된 조건과 무관한 추상적이며 보편적인 가치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자유를 올바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우선 체화인지는 지나치게 몸을 도외시했던 과거의 탈신체적 인지과학에 반발하면서, 그것의 결함을 극복하고 보완하기 위해 생겨난 이론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지과학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던 정보이론에 따르면 몸은 메시지의 투명한 소통을 방해하는 매체의 소음이었다. 매체는 메시지의 내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했으며, 바로 그러한 이유로 다른 매체에 의해 대체되어도 무방한 것이어야 했다. 과연 그럴까?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빌어서 말했듯이 몸은 영혼의 감옥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몸이 없으면 인지나 생각도 불가능하다. 몸과 인지를 떼어놓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인지가 아니라 행동은 어떨까? 인지가 인식론의 영역이라면 행동은 윤리학의 영역에 속한다. 인간에게 자유가 없다면 윤리학도 가능하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자유가 없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운동이며 그것은 물리학의 연구 대상이다. 그리고 자유의 반대를 구속이나 강제, 필연으로 정의하는 오랜 철학적 전통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유의 이해는 철저하게 인간의 몸된 상황을 무시함으로써 가능하다. 즉 탈신체적 인지과학의 쌍생아가 탈신체적 자유 이론이다. 그것은 자유를 지나치게 생각이나 의식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했을 때도 이러한 탈신체적 자유관이 성행했던 적이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이번 논의는 코로나19에 대한 대응과 더불어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김종갑(이하 김): 요즈음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서 우리의 자유에 급격한 제동이 걸리고 있습니다. 현 상황은 자유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사유하기에 좋은 기회입니다. 지금 이 선생님은 이탈리아에서 체류하고 계시는데, 거기 상황은 어떻습니까.

이택광(이하 이): 이탈리아는 확진자 증가로 다시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실행 중입니다. 초반에 의료체계 붕괴로 엄청난 고통을 겪은 경험 때문인지 개인 방역을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저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자유라는 것이 사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그렇지요. 자유는 사적일 수가 없습니다. 자유는 몸으로 체화되기 때문에 사회적이며 정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아감벤(Giorgio Agamben)이 코로나19 발병 초기에 그것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행했던 이탈리아 정부의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민의 생명 유지와 안전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생명보다 중요한 가치는 자유라고 주장했습니다. 자유를 포기한 삶은 인간적 품위를 상실한 동물적 삶이라고 보았던 것이지요. 그가 자유를 너무나 절대화하고 이상화했던 것이 아닌가요? 그리고 자유를 너무나 탈신체적으로 그리고 자율성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요?

가령 칸트에 따르면 계몽된 인간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전통,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성적 사유에 의해서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인간을 뜻합니다. 이때 윤리적 행동은, 자신의 감정과 신체적 소여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이성적 명령에 따를 때만 가능합니다. 몸이 없으면 없을수록 더욱더 자유로운 것이지요. 

이: 해방의 담론으로서 계몽은 근대를 신분적 구속으로부터 개인의 해방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일찍이 간파했듯이, 신분의 속박에서 벗어나면서 개인이 획득한 자유라는 것은 ‘굶어 죽는 자유’까지 포함하는 아이러니한 자유였습니다.

자유는 사회적 불평등과 떼어놓고서 논의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무한한 자유의 이념이라는 것은 신체의 파괴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은 무한한 쾌락의 추구를 근대의 병적 증상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근대의 자유는 아포리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찍이 스피노자는 인간은 해방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속박을 위해 목숨을 건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지요. 이 아이러니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유의 문제에 대한 해답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김: 중요한 지적을 했네요. 사회적 구속으로부터 해방은 자유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습니다. 벌린(Isaiah Berlin)은 이러한 자유를 소극적 자유라고 명했는데, 마르크스의 먹지 않는 자유가 이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당연한 말이지만 몸을 가진 인간은 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적절한 주거 환경과 가족, 친구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최소의 물질적 사회적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런 것이 확보되지 않은 자유는 진공 속의 탈신체적 자유입니다. 이 점에서 이 선생님이 정확히 꿰뚫어 보았듯이 자유는 매우 역설적입니다.

가령 무한한 쾌락의 추구는 무한한 구속의 극적인 사례입니다. 사회적 관계에서 단절된 사람은 고독을 견디지 못해서 강박적으로 쾌락에 탐닉하게 됩니다. 혹은 생각의 자유를 실현할 수 없는 사람은 자유를 생각과 동일시할 수 있습니다. 『아큐 정전』에서 노신은 그러한 탈신체적 자유를 정신의 승리로 희화시켰습니다. 저는 칸트의 자유 개념도 그러한 정신의 승리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몸된 자유’에 대한 보충 설명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몸을 ‘실체’로 취급하면 또 다른 논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정신분석이나 포스트 칸트주의는 몸을 일종의 부분 충동 내지 ‘생성’(devenir)으로서, 개별화되지 않은 과정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뇌과학의 영역에서 뇌가 생각을 결정하는지 아니면 반대로 생각이 뇌를 결정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만, 저는 양자의 가능성을 포괄하면서 어느 하나로 환원시키지 않는 제3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 저는 메를로-퐁티처럼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대립을 인간의 몸됨을 무시하는 허구적인 대립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허구는 인간을 탈신체적 의식으로 정의하려는 철학적 전통, 그리고 인지과학의 탈신체적 재현이론에 기인합니다. 데카르트적 코기토의 명제처럼 생각이 인간의 본질이라면 자유도 탈신체적이어야 합니다. 탈신체적 인지주의자들의 주장도 다르지 않습니다.

인지는 외부 세계와 단절된 인간의 의식에서 진행되는 기호적 계산(symbolic computation)이라는 것이지요. 이때 인지된 내용은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감정의 변화는 물론이고 고통과 같은 신체적 상황과도 무관한 정보로 간주됩니다.

물론 이러한 탈신체적 인지 이론은 허구입니다. 우리는 눈동자가 빨갛게 물들지 않고서는 빨간색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파란색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침착한 마음으로 빨간색을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몸은 빨간색을 보면 흥분하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서 내가 인지의 대상과 더불어서 변화하지 않으면 인지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 탈신체적 인지 이론을 허구로 단정하는 것은 최근의 이론적 대세라고 봅니다. 대니얼 대닛(Daniel Dannette)은 의식을 하나의 환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관심은 이런 과학철학의 논의와 결을 달리하면서 하나의 작동으로서 의식의 문제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들뢰즈가 지적하듯이, 의식과 몸을 나누는 것 자체가 생물학적인 패러다임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과학적 진리는 내적 논리로 본다면 수미일관하지만, 그 논리 체계 바깥에서 다른 진리와 조우하면 이율배반적으로 판명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괴델의 발견은 이런 내적 논리의 수미일관성으로 인해 과학적 사고가 체계 내의 오류에 포획되어버릴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 사건입니다. 이 점에서 과학의 진리가 철학적 사유로 보완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과학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인문학적인 감수성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는 과학이나 철학으로 환원될 수 없는 절대적 타자성을 가지고 있으며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생성의 과정입니다. 저는 몸과 의식의 문제도 이분법을 넘어선 생성의 문제로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김: 저도 동감입니다. 이제 이 대담의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 자유의 문제로 다시 돌아오기로 하지요. 인간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자유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아감벤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유를 개인의 생각이나 선택, 의식과 동일시하는 것은 지나치게 관념적인 오류입니다. 앎과 자유의 주체는 의식이 아니라 몸에 있기도 합니다. 대부분 우리의 활동이 그러합니다.

자전거를 타거나 골프를 치거나, 심지어 책상의 커피잔에 손을 뻗어서 커피를 마시는 이 모든 활동의 주체는 마음이라기보다는 몸입니다. 몸이 그러한 대상과 조화롭게 조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롭게 활동할 수가 있습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세상에 자유롭게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우리는 세상을 자기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자유롭다는 느낌은 세상이 우리 편에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에서 여성은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구속과 억압, 강제로부터 해방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근대 초기에 계몽주의자들은 구속으로부터 해방되면 행복한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낙관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속되고 고약한 현실에 절망하고 그러한 현실로부터 소외되었던 19세기의 낭만주의자들은 현실에 대한 오만한 무관심을 정신적 자유로 미화시켰습니다. 그러나 참된 자유는 개인의 의식이 아니라 타자 및 세계와의 조화로운 몸된 관계 속에서만 가능합니다.

이: 사실 우리는 개별자로서 절대시해온 개인의 자유에 대한 환상으로 20세기를 허비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사상적 조류들은 타자의 문제에 대한 깊은 통찰들을 제공해왔습니다. 그리고 21세기에 등장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은 근대 계몽주의 이후 하나의 정언명령으로 받아들여졌던 자유의 문제를 근원에서 다시 생각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몸의 관점에서 자유를 재사유해야 하는 것이지요. 

김종갑 건국대 몸문화연구소장(영어영문학과)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영미문학비평’으로 박사를 했다. 건국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2007년부터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몸에 관한 연구와 문화철학에 주된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수사학회장, 19세기영어권문학회장을 지냈다. 저서로 『몸의 철학 : 영혼의 감옥에서 존재의 역능, 사이보그의 물질성까지』『인공지능이 사회를 만나면』등이 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국 워릭대 철학과에서 석사를, 셰필드대 영문학과에서 문화비평으로 박사를 했다. 경희대 영미문화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는 이탈리아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다. 저서로 『버지니아 울프 북클럽』『인상파, 파리를 그리다』『이것이 문화비평이다』『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등이 있다. 

체화인지 연구단은

<교수신문>은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의 융복합 연구가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첨단연구의 현장을 찾아 지식생산의 새로운 흐름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체화된 마음 연구 : 몸-뇌-세계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를 연구하고 있는 ‘체화인지연구단’이다. 체화인지연구단은 최근 인지과학 분야에서 마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는 ‘체화된 마음 이론(theory of embodied mind)’을 2021년부터 2024년까지 3년간 인문사회분야 일반공동연구 지원사업(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 주관)으로 수행하고 있다. 

체화된 마음 이론은 내재주의와 뇌 중심주의에 치중하고 있는 현재의 ‘마음 연구’를 극복하기 위한 인지과학 이론으로, 1990년대 이후로 해외 학계에서는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체화인지연구단에서는 철학, 문학, 미학, 인지과학, 법학, 영화학, 의학 등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이 모여 융복합적으로 체화된 마음을 연구한다. 

이번 특별기획에는 20명의 교수·연구자가 참여한다. 연재 주제별로 체화인지연구단 연구자와 관련 외부 전문 연구자의 대담 형식으로 풀어내 자유롭고 생생한 담론을 제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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