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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은 ‘사회적 젊음’이다
성숙은 ‘사회적 젊음’이다
  • 김월회
  • 승인 2022.02.0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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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_ 선도 국가란 무엇인가 ⑤

"20세기 초반 새로운 중국 만들기에 나선 진보적 지식인이 처음에는 청년을 호명했다가 이내 ‘신청년’을 호명한 까닭은, 
삶과 사회를 혁신해가는 데 필요한 주체는 생리적 젊음은 지녔지만 정신은 낡음에 물든 ‘구(舊)’ 청년이 아니라, 
나이와 무관하게 생성과 변이를 추동하며 새 흐름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사회적 젊음을 지닌 ‘신(新)’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전통과 근대가, 낡음과 새로움이 또 중국과 서구가 폭력을 매개로 세게 부딪혔던 시절, 이른바 근대 중국이라 통칭되던 20세기 전환기에 ‘통(通)의 사상’을 내지르며 소통의 제단에 자신의 선한 피를 기꺼이 바친 자가 있었다. ‘유신’ ‘변혁’ ‘민주’ ‘열사’의 조합으로 호명되는 담사동(譚嗣同, 1865~1898)이 그 주인공이다. 

‘연결과 융합 기계’로서의 인간

아편전쟁(1840년) 이후 서구와 붙는 족족 깨진 중국은 청일전쟁(1894년)에서 일본에게까지 참패하자 결국 근대적 제도 개혁을 단행한다. 1898년 당시 황제였던 광서제가 강유위, 양계초 등의 유신론자를 발탁하여 일으킨 무술변법이 그것이다. 

담사동은 이 근대적 변혁운동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오래 가지 못한 채 수구파의 정변에 의해 100여 일만에 좌절된다. 수구파는 신속하게 무술변법의 핵심인물 제거에 나섰다. 당시 담사동은 일본대사관으로 피신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변혁에는 개혁 주체의 피 흘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며 도망하지 않고 체포되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참수됨으로써 치열했던 젊은 삶을 마감하였다. 

『인학』은 담사동이 유신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직전에 집필한, 죽음을 초극할 ‘정신의 힘(心力)’을 축적하는 글쓰기였다. 문자 그대로 불꽃같은 삶을 산 담사동의 사상이 집적되어 있는 저술로, ‘통의 사상’이 집중적으로 체현되어 있다. 담사동은 부처의 자비, 예수의 박애, 과학의 에테르가 다 공자가 말한 인(仁)이기에, 이로써 나와 남, 남과 여는 물론 나라와 민족, 인종 간 경계 등을 가로지를 수 있으며 삶과 죽음, 현상계와 초월계 같은 구분도 넘어서서 참된 통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평가가 극과 극이다. “봉건전제를 끝내고 민주로 향한 길을 개척하는 이정표”, “유신운동의 성경” 같은 극찬과 더불어 논리 비약과 세계에 대한 주관적 상상, 과학기술에 대한 허술한 이해 등으로 “잠꼬대 같다”, “사상이 아니다” 같은 혹평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쪽이든 『인학』을 근대 중국을 대표하는, 달리 말해 근대 중국을 빚어간 핵심 저술로 꼽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선도국가의 조건을 논의함에 담사동과 『인학』 얘기를 꺼낸 이유는 이러하다. 『인학』이 근대 중국의 주요 고전으로 꼽힌 데는 담사동의 삶이 놓여 있었다. 성근 논리와 허황된 상상, 허술한 이해 등은 그의 삶에서 서로 섞여 근대적 변혁운동의 초석으로 승화되었다. 인간은 그렇게 비약된 논리나 황당한 상상, 미숙한 이해조차도 삶을 통해 유용한 밑천으로 다시 빚어낸다.

이는 처음부터 인간이 온갖 사유와 상상, 직관 등이 형식과 경계를 넘나들면서 서로 연결되고 융합되는 장이었기에 가능했다. 늘 생성하고 변화하며 새 흐름을 빚어내는 역동적 존재로서의 기계라는 질 들뢰즈의 개념을 빌자면, 인간이 연결하고 융합하는 기계였음을 담사동의 삶이 치열하게 일러주었음이다. 

‘사회적 젊음’의 표지인 성숙

선도국가는 연결하고 융합하는 기계인 인간들의 집합체이다. 연결과 융합이 선도국가의 중요한 속성이라는 얘기다. 하여 선도국가에서 인간의 성숙은 성장의 관건이자 동력으로 작동한다. <교수신문> 지난 호(2022년 1월 17일 자)에서 안재원 선생이 제기한, “이해에서 표현으로, 표현에서 소통으로”라는 화두를 가지고 얘기해보자.

암기나 이해는 내향적이다. 안 선생의 용어를 빌리자면 그들은 ‘지식의 내장화’를 추구한다. 그런데 이는 디지털 대전환이 일상을 재구성하는 지금, 그에 따라 우리의 감각과 사유, 상상이 밑동부터 변이되고 앎이 인간 외부에 축적되고 경계 없이 확장되는 오늘날과는 어울리지 못한다. “이미 외장화된 지식과 정보와 이야기를 활용하고 누릴 수 있는”, 다시 말해 “디지털 문명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은 내부에 축적한 앎과 힘의 외향적 발휘를 실현하는 표현과 소통의 역량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암기나 이해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디지털 문명은 표현과 소통의 시대라는 얘기다. 성숙이 성장의 관건이자 동력인 이유가 여기서 비롯된다. 성숙은 암기하고 이해한 바를 표현하고 소통하는 역량으로 거듭나게 해준다. 그리하여 새 역량을 갖춤으로써 인간은 성장한다. 성숙은 그렇게 성장의 텃밭이 된다.

성숙의 사전적 뜻은 생물의 발육이나 정신적 성장이 완전히 이루어짐이다. 이는 외부에서 ‘나’ 안으로 들여온 것을 소화, 숙성하여 다시 ‘나’ 밖으로 드러내는 과정에 다름없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형식과 경계는 허물어지고 내용이 서로 섞여 새 것이 생성된다. 이렇듯 성숙은 무언가를 근본으로부터 구조적으로 일신하는 일에 간여한다. 그것은 표피가 아니라 심층으로부터 낡음을 혁신하고 병폐를 타파하며 진보를 빚어간다.

성숙은 그래서 그 자체로 성장이다. 그것에는 자신의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능동성이 깃들어 있다. 능동성이 결여된 성숙은 그저 노숙(老熟)이다. 성숙이 정적이거나 관조적이기만 하지 않은, 오히려 능동적인 까닭이다. 하여 성숙은 열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갱신과 변이, 생성을 통해 새 흐름을 빚어가고자 하는 인간의 능동성에 대한 열정이 있기에 성숙은 심층으로부터 작동된다. 

여기서 성숙은 젊음과 만난다. 20세기 초반 새로운 중국 만들기에 나선 진보적 지식인이 처음에는 청년을 호명했다가 이내 ‘신청년’을 호명한 까닭은, 삶과 사회를 혁신해가는 데 필요한 주체는 생리적 젊음은 지녔지만 정신은 낡음에 물든 ‘구(舊)’ 청년이 아니라, 나이와 무관하게 생성과 변이를 추동하며 새 흐름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사회적 젊음을 지닌 ‘신(新)’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현실을 개선하고 미래를 빚어가는 데 필요한 것은 생리적 젊음이 아니라 사회적 젊음이었음이다. 흔히 윤리학적 경지의 하나로 사유되는 성숙은 이처럼 ‘사회적 젊음’과 근본적으로 결합되어 삶과 사회의 진보를 견인해내던 경세적 역량이었다. 

지난 1월 미국에서 열린 ‘CES 2022’에서 삼성이 내세운 ‘seamless eXperience(끊김 없는 경험)’이라는 슬로건에서 목도되듯이 ‘연결되며 융합되는’ 인간이 미래 사회를 이끌 새로운 원천으로 주목되고 있다. 사진=CES 2022 홈페이지

전환성장을 위한 성숙

그래서 성숙은 우리 사회의 ‘전환성장’을 일구어내는 원천이다. 개도국 시절 우리 사회를 주도했던 ‘식민지-냉전-추격형’ 패러다임 등을 이제는 ‘선도국가-평화 공영·좋은 나라’ 패러다임으로 전환해 가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성숙, 평화 실현, 인간 제고 같은 사회적 젊음을 삶과 사회의 기초부터 일상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구현해가게 된다. 

게다가 우리는 초연결·초지능이 삶과 사회의 기본값인 시절을 살고 있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나는 남과 또 사물, 지구, 가상세계와 시시각각으로 연결되고 있다. 사물인터넷(IoT)의 보편적 실현 덕분에 사물과 사물이 연결되어 인간사회, 지구생태계, 가상현실계, 메타버스 등과 더불어 또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에 인간의 경험이 다중적으로 연결되고 다차원적으로 융합되고 있다. 지난 1월 미국에서 개최된 ‘CES 2022’에서 삼성이 내세운 ‘seamless eXperience(끊김 없는 경험)’이라는 슬로건에서 목도되듯이 ‘연결되며 융합되는’ 인간이 미래 사회를 이끌 새로운 원천으로 주목되고 있다.

성숙이 그 자체로 성장이 되는 문명조건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음이다. 첫발을 내딛고 이를 지속 가능한 흐름으로 빚어가는 선도국가에서 성숙이라는 사회적 젊음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가 되었음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서울대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를 했다. 주로 고대와 근대 중국의 학술사상과 중국문학사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인문적 시민사회’ 구현을 위한 교양교육과 인문교육에 대한 연구도 함께 하고 있다. 저서로 『인문정신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좋은 삶인가』 『깊음에서 비롯되는 것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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