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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탈근대 군주론』(존 산본마쓰 지음┃ 신기섭 옮김┃ 갈무리 刊┃ 2005┃ 429쪽)
화제의 책:『탈근대 군주론』(존 산본마쓰 지음┃ 신기섭 옮김┃ 갈무리 刊┃ 2005┃ 429쪽)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5.10.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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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총체성’을 꿈꾼다

미국내 비판적 이론의 ‘장식적인’(baroque) 포스트모던 경향은 서구의 저항운동 세력을 혼란스럽게 했고 해악을 끼친 면이 있다. 다시 말해,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은 미국내에서 포화상태에 이르자 주변부 국가들로 덤핑수출 됐고, 그럼으로써 이들 국가에서 더 정직했던 지식상품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실천적 면에서도 전세계적으로 저항운동은 위기에 처했는데,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노동, 여성, 환경, 생태, 동성애 운동이 대중운동의 주도세력으로서 그 유효성을 증명하는 데 실패했다.

이러한 상황, 즉 힘없이 흩어진 전지구적 좌파들에 대해 존 산본마쓰의 ‘탈근대 군주론’은 ‘형태없는 실체’로 규정한다. 그는 사회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 등 학계의 비평가들이 반세계화 운동 효과를 과대평가하고, 거꾸로 좌파운동들이 현 체제를 위협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점을 ‘식자의 낙관론’이라 규정하며, 이론이 현실에 뒤쳐져 있음을 비판한다. 그런 가운데 산본마쓰가 새로운 대안을 찾는 지점은 그람시의 ‘근대 군주론’이다.

선진자본주의 상황에서는 레닌이나 트로츠키보다 그람시 사상이 윤리적으로나 전략적으로 더 도움이 된다. 주지하다시피 그람시는 자본주의의 시민사회가 점점 복잡해질수록 새로운 종류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걸 인식했고, 따라서 국가를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경제적·정치적·윤리적 차원에서 섬세하고 유연한 전략을 벌이는데 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람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에서 신비화된 점들은 벗겨내고 정치영역에서 집단적 사회주의 미덕과 ‘의지’를 실현하는 방법론을 제공한 장본인이다.

근대군주는 인민과의 변증법적 대화를 통해 정치적·문화적 프로그램을 구성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사회의 정신적·사회적 힘을 자기 주위로 모으게 된다. 산본마쓰는 ‘근대 군주’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형식에 관한 이론을 ‘탈근대 군주’라는 새로운 집단적 주체로 되살리려 시도한다.

이 주체는 수많은 분산된 저항행동과 문화운동들을 단일 운동이라는 형식 속에 모으는 전략이다. ‘탈근대’란 명칭은 달았지만, 이는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구조주의의 의미가 아닌 이행을 표현하기 위한 것일 따름이다. 궁극적으로 그는 ‘총체성’ 개념을 제시한다. 하지만 기독교나 근래 사회주의가 꿈꿨던 바벨탑의 세계가 아니다. 그는 분산된 차별적인 운동들이 하나의 ‘형식’으로 결합될 거라 보진 않는다.

현재 해방운동이 제기하는 주장의 총체성은 본질적으로 세계 자본주의 비판을 넘어서서 기존 인류 문명에 더 깊은 도전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메타인문주의’라 불리우는 철학적 근거가 필요함을 역설하는데, 이는 그가 생각하는 보편적 존재론과 윤리에 대한 철학을 담아낸 새로운 개념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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