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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착각(2)
교수의 착각(2)
  • 박구용
  • 승인 2022.02.15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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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 전남대 철학과·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지난 칼럼에서 나는 교수의 첫 번째 착각으로 교육자로서 정체성 혼란을 들었다. 이 혼란에서 생기는 가장 큰 부작용은 교육이 사육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사육도 교육처럼 기르는 일이다. 다만 먹여서 기르는 것이 사육이라면 교육은 가르쳐 기르는 것이다. 문제는 교수들이 가르치는 일을 먹이는 일로 착각하는 것이다.   

최고 품질의 먹을거리라도 먹여서 기르는 것은 사육이지 교육이 아니다. 가르쳐 기르는 교육은 먹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찾아서 다듬고 고치며 가꾸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학생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사육이라면 교육은 학생 스스로 문제를 찾아서 풀이하는 과정에 참여하고 협력하는 것이다. 

사육체계에서 훌륭한 학생은 대학에서 백화점 VIP 고객 같은 대우를 받는다. 불황이 장기화될수록 VIP고객이 늘어나듯이 대학교육의 위기가 커져갈수록 모범 사육사와 그들의 장학생 수도 늘어간다. 대학장학금만이 아니라 국가장학금조차 학점이라는 필터를 통해 사육체계를 견고하게 만든다. 

견고한 사육체계의 틀을 흔들려면 다차원적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미시적 지평에서 대학 수업이 지식 전달형 수업에서 능력 개발형으로 바뀌어야 한다. 수업을 통해 개발해야할 능력이란 무엇일가? 다양한 주장이 중첩되어 이루어진 잠정적 합의에 따르면 크게 네 가지 ①비판적 사고능력, ②합리적 의사소통능력, ③창의적 문제해결능력, ④공감적 협업능력이다. 교육자로서 모든 교수는 자신의 수업이 이러한 능력을 키우는데 적합한지 냉정하게 평가하고 바른 길을 찾아가야 한다. 

개별 교수들의 노력으로 사육체계가 곧바로 교육체계로 바뀌진 않는다. 거시적 지평에서 전환이 동반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대학에서 학과와 학문의 장벽이 무너져야 한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자신의 전공학문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치게 강하다. 그래서 학생들을 가능한 오래 주전공 학과의 교육과정에 묶어두려고 애쓴다. 왜? 이 정도 과목은 이수해야 전공자라고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물어야 한다. 정말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전공 관련 지식의 축적이 중요한가? 전공마다 차이가 있다지만 하나의 전공만으로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래사회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공학이나 예술관련 학문의 토대에까지 접근할 수 있는 융합 능력을 요구한다. 학문 횡단형 교양과정만이 아니라 부·복수전공, 연계전공, 협동과정이 더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학과와 학문 사이의 장벽이 높으면 높을수록 다양하게 시도된 융·복합 교육의 효과는 감소한다. 효과를 증폭시키려면 모든 학과와 학문 안에 다른 학문으로 통하는 길을 만들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 학과 내부에 외부가 있어야 한다.

인문대 안에 공학이, 공학 안에 인문학이 있어야 한다. 의학 안에 사회과학이, 사회과학 안에 예술학이, 예술학 안에 자연과학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순혈주의에 포섭된 교수들의 착각 앞에서 좌절되고 있다. 교수가 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인정해준 통로만 신성하다는 이들의 착각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 중에 교수의 길을 가려는 학생은 1%도 안 된다. 이들을 위해 99% 학생의 희생을 요구하는 순혈주의가 바로 사육체계의 심장이다. 복제된 것의 복제, 무절제한 복제의 증식에 자부심을 갖는 교수들의 순수는 참으로 순수할까?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전남대 철학과·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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