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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떳떳한 도시계획을 위해
보다 떳떳한 도시계획을 위해
  • 김영준
  • 승인 2022.02.24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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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김영준 도쿄대학 공학계연구과 도시공학전공 박사과정

나는 일본 도쿄에서 서울의 도시계획사(史)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1930-40년대의 일제강점기 후반, 그리고 1960-70년대의 고도성장기 서울의 확장·발전상과 그에 관련된 도시계획(urban planning)의 수법, 그리고 관여한 계획가의 삶을 추적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도시계획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유·무형적 측면을 어떻게 평가하고, 개선시킬지에 대해 주목하는 학문인만큼, 사회과학 혹은 사회기술(social technology)의 범주에서 논의가 되곤 한다. 전통적인 이학, 공학과 같이 고도의 복잡한 수식이나 과학적 실험을 동반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로 ‘과학기술’의 영역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시계획가에 관여한 기술자 혹은 사상가로서의 계획가(planner)들이 어떤 말과 기록을 남겼는지, 그들이 남긴 물리적인 유산을 추적하는 것은 넓은 의미의 과학기술학 연구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연구가 우리에게 주는 의의는 작지 않다. 먼저, 학문후속세대들에게 사안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열린 시야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한다. 도시계획 분야를 놓고 보자면, ‘보수는 개발을 추구하고, 진보는 보존에 치중한다’ 와 같은 이분법-혹은 편견-이 대표적이다. 이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널리 퍼져 있는 인식이지만, 일본의 도시계획사를 되짚어보면 오히려 좌파 사회당 출신의 수장이 사회주의 계획·복지 정신에 입각해서 적극적인 도시계획과 개발을 추진하고, 보수 관료 출신 수장이 이를 계승하는 경우가 왕왕 존재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진보 계열의 지자체장이 체계적인 도심 재개발 계획을 먼저 수립하는 등, 반드시 이념만으로 계획의 방향을 예단할 수 없는 사례가 발견된다. 과거의 역사가 현재 우리로 하여금 편견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울타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계획가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는 그들의 실책 혹은 부도덕한 행위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다. 얼핏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최신의 ‘논문거리’ 트렌드를 좇아야 하는 학문후속세대에게 과거의 계획가들이 현재의 도시 공간에 어떠한 과오를 남겼는지 파악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명확한 결과가 수치로 존재하지 않는 분야인 만큼 과거의 계획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일일이 과거의 기사나 보고서를 찾아야만 하니까 말이다. 식민지배와 태평양전쟁으로 인한 비(非) 민주적인 도시계획의 역사를 거친 일본에서는 이러한 과거를 성찰하는 연구가 상당히 활성화 되어있다. 일본 도시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도시계획가, 기술자라 할지라도 그들이 태평양전쟁 말기에 어떤 그릇된 환상을 품었는지, 서울을 비롯한 당대의 식민도시에서 어떻게 현실과 동떨어진 계획을 수행했는지에 대한 기존 연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애석하게도 아직까지는 일본처럼 기술자로서의 도시계획가와 그 사상에 주목한 연구는 드문 편이다. 몇몇 인물에 대해서는 그들의 업적을 돌아보는 정도의 연구가 이뤄졌지만, 그 계보를 형성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는 도시와 관련된 분야들도 마찬가지로, 일부 스타성을 가진 역사적 인물을 제외하면 관련 연구를 찾아보기 어렵다. 학연 혹은 지연으로 얽힌 학문의 선배를 비판하기 어려워하는 풍토 때문일까. 혹은 우리의 잘못을 돌아보지 않으려는 부끄러움 때문일까. 아니면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느 하나의 이유만으로는 이러한 현재의 상황을 설명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지난 1년 반 동안 일본에서 느꼈던 분위기는 우리의 그것과는 분명 달랐다. 앞서 언급했듯이 비록 위대한 계획가라 할지라도 그들이 남긴 과오에 대해서는 짚으려는 노력을 이미 은퇴한 연구자들이 이뤄놓은 상태였다. 잘한 것은 기리고, 잘못한 것은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하는 풍토는 당당함의 발현처럼 보이기도 했다. 누군가 내게 일본 유학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다면, 바로 이런 연구자 집단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의 학계에서도, 어찌 보면 한국의 근현대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도시공간의 역사를 당당하고 떳떳하게 돌아볼 수 있는 그런 학문의 풍토가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영준 도쿄대 공학계연구과 도시공학전공 박사과정

도시계획사 뿐만 아니라, 오래된 빌딩, 맨홀 덮개, 토목구조물 등 도시계획이 이 땅에 남긴 흔적을 기록하며 어떻게 하면 더욱 많은 이들과 함께 도시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을 공부로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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