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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이 뺏어간 ‘기억·사유’ 능력…역사는 퇴보한다
디지털이 뺏어간 ‘기억·사유’ 능력…역사는 퇴보한다
  • 김선진
  • 승인 2022.04.01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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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의 재미_『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니콜라스 카 지음 |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424쪽

긴 글 읽으며 키워가는 문해력이 사라지는 세태
사고의 해이는 약자 향한 반지성적 혐오·차별 키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래 무려 백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전쟁없는 평화의 시대가 지속되고 있다. 이는 산업 자본주의의 확산과 경제의 세계화가 이끌어온 풍요와 잉여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아프리카, 남미 등 아직 가난한 나라들이 여전히 많지만 대체로 세계 경제는 공급이 수요를 주도하며 성장 지상주의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각국은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삼아 값싼 노동력과 원자재를 물쓰듯 쓰며 끝없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행복한 환상은 도둑이 오는 것처럼 갑자기 끝났다. 14세기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세계적 코로나 팬데믹이 닥친 것이다. 한순간에 세계 곳곳에서 물류가 멈추고 경제 흐름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모든 사건은 결핍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코로나로 세계 경제가 신음하는 가운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써 세계는 더욱 혼돈 속에 빠져들고 있다. 석유, 원자재, 식료품 가격이 일시에 급등하며 세계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침체의 늪으로 떨어지고 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불확실한 미래는 서로를 불신하는 악순환에 빠뜨린다는 사실이다. 

국내 상황 역시 국제 정세 만큼이나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번 만큼 비이성적 상호 비방의 네거티브 선거가 있었을까. 캠페인은 아니면 말고식 묻지마 폭로전으로 치달았고 양자 모두 과반을 얻지못한 불과 0.73% 차이 지지로 당선자가 결정됐다. 과열된 선거 과정에서 가짜 뉴스가 판을 쳐도 양 진영은 각자 보고싶은 것만 보고 믿고싶은 것만 믿는 확증 편향에 빠져들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문제 앞에서 현실과 팩트에 근거해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건 기대하기 어려웠다.

암울한 국내외 정세 속에서 나는 이와 같은 혼란의 근본 원인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생각 끝에 내린 나름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인간의 합리성과 이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견지했던 데카르트의 언명대로 인간 존재의 본질이기도 한 인간의 비판적, 반성적 사유 능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과 문명이 이렇듯 급속히 발전하고 있음에도 역사의 교훈을 배우지 못하고 퇴행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이 퇴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 끝에 머릿속에 떠오른 책이 바로 같은 문제의식을 제기한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턴트이자 IT 미래학자인 저자의 이 책은 이미 십년 전에 처음 출간된 책인데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더욱 심화된 사고 능력의 퇴행 현상에 대해 과학적 연구 근거들을 추가로 제시하며 지난 2020년 새롭게 나온 개정판이다.

 

스마트폰·인터넷이 대신하는 인간 본성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라는 부제와 ‘The Shallows’라는 영어 원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인간을 더 ‘똑똑하게’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스마트폰, 인터넷과 같은 디지털 미디어가 반대로 인간을 매우 비합리적이고 즉흥적인 생각과 판단을 하는 어리석은 존재로 전락하게 한 장본인이라는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

이 책의 미덕은 단순히 일련의 사건들의 의미를 분절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사유 능력이 퇴화하게 된 근본 원인을 미디어 도구라는 문명사적 관점에서 조명하려 시도한 점이다. 프롤로그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미디어를 인간 몸의 확장으로 정의한 세계적 커뮤니케이션 학자 마샬 맥루한(1911∼1980)과 같은 맥락으로, 그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인간의 기억능력과 사유능력의 연장 역할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간이 인간답게 하는 고유의 본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대부분 현대인들의 생각하지 않는 습성은 단적인 행태로 쉽게 확인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 현대인들은 생각을 작동시키는 텍스트에 더 이상 몰입하지 않는다. 글을 읽기는 하겠지만 스마트폰에서의 스크롤 흘려 읽기는 집중해서 생각하며 읽어야 하는 깊이 읽기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 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문해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이유다. 게다가 이젠 글 자체를 더 이상 읽지도 않는다. 문자를 ‘읽는’ 대신 유튜브와 같은 영상을 ‘본다’. 유튜브가 구글과 같이 텍스트로 된 검색 서비스를 대체한 지 오래고, 영상도 유튜브 대신 틱톡같은 1~2분짜리 초단시간 콘텐츠를 더 선호하게 됐다.

 

디지털 기기로 인해 현대인들은 생각할 여유를 빼앗긴다. 사진=픽사베이

이런 미디어 이용 습관을 고착화한 대가로 현대인들은 집중력, 기억력, 사고력을 잃는다.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문제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귀찮아 한다. 최근 세계적으로 만연되고 있는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반지성적 혐오와 차별은 바로 이와 같은 ‘사고의 해이(Thinking Hazard)’에서 비롯된 예다. 이런 나태한 사고 능력은 결국 자신과 공동체의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감정에 휘둘린 채 편향적인 비이성적 판단을 하게 함으로써 인류 문명의 퇴행을 자초하게 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인간이 생각하지 않으면 인공지능과 같은 기계가 인간의 생각을 대체할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똑똑해지기보다 현명해지기를 희망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강력 추천한다.

 

 

 

김선진
경성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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