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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대학원, 은마아파트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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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일구
  • 승인 2022.04.19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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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신진연구자에게 듣는다② 학문생태계 무엇을 바꿔야 하나

<교수신문>은 창간 30주년 특집으로 30대 전후 신진연구자들이 말하는 현실 문제의식과 관심사, 연구환경에 대한 전망을 가감없이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호에서 신진연구자들은 파편화된 학술장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방임에 대해 증언한다. 국내 대학원 진학이 일종의 도전(?)이 된 현실과 부실학회 활동이 벌어졌는데도 자정작용이 없는 학계 모습을 비판한다. 또한, 학계의 높아지는 연구 성과에 대한 요구를 신진연구자들이 충족시키면서도, 거기에 지쳐서 도태되고 있는 역설적 현실에 대해서도 호소한다.

먹고사는 학문에 대해서도 고민을 털어놓았다. 소수의 인문학 명사에게 빼앗긴 시장을 찾을 것을 외치기도 하고, 유럽처럼 연구 주제와 직업 연결 강화를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양적 평가의 가능성을 인정하며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학원과 학계의 폐쇄성 해결을 위해 신진연구자들은 동등한 동료로 인정해줄 것과 자원과 권한 분배의 필요성을 요구했다. 

좌담에는 강수영(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과정), 김보경(서울대 국문학과 박사수료), 유현미(서울대 사회학과 박사졸업), 이송희(고려대 한국언어문화학술확산연구소 연구교수), 이우창(서울대 영문학과 박사과정), 전준하(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졸업), 조승희(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현수진(성균관대 사학과 박사과정)씨가 참여했다.

좌담은 지난 3월 20일 줌을 통해 이뤄졌다.

<교수신문>은 창간 30주년 특집으로 30대 전후 신진연구자들이 말하는 현실 문제의식과 관심사, 연구환경에 대한 전망을 가감 없이 청취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은 지난 3월 20일 줌을 통해 이뤄졌으며 <교수신문>은 두 차례에 걸쳐 이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사진=ZOOM캡처

 

동료에게 “왜? 국내 대학원을 선택했지?”라는 질문 받아
“공부하려면 유학 가야지”라는 말…미국박사 위계 재생산 아닌가

연구 평가제도, 연구 힘들게 하고 새로운 의미 못 찾게 해
신진연구자가 학계 가속시키는데, 가속된 학계에선 도태

‘명문대’라 불리는 대학 대학원은 은마아파트 같은 곳
낡았으나 보유한 투자 가치 때문에 사람 모이는 것

 

△ 여러 번 내부에서 문제제기가 됐어도 학계와 대학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강수영: 석사 졸업 후에 많은 분들이 유학을 가라고 말했다. 다른 나라도 안 되고 미국이어야 한다. 최근 한 친구는 “어떻게 국내 대학원에 갈 마음을 먹었는지”를 물어보기도 했다. 국내 대학원 진학이 일종의 도전이 됐다. 왜 이렇게까지 됐나 싶어 전공 분야 교수님들의 이력을 쭉 훑어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미국 유학을 다녀오신 분들밖에 없었다. 유학을 권하신 분들의 말에 애정이 담겨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고, 실제로 연구 환경이 잘 갖추어진 해외 대학들이 많다는 것도 알지만, “공부하려면 유학가야지”라는 말들이 미국박사와 국내박사의 위계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쨌든 제게 조언을 해주신 분들은 한국 학술장에 계시는 분들인데, 한국 학술장의 상황이 나쁜데도, 그럼에도 당신들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며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는 말씀을 거의 만날 수 없었다. 후학으로서는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다.

전준하: 학술장에서도 신진연구자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분명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못 나아가고 있다. 연구 평가제도가 연구자들을 힘들게 하고, 논문을 잘게 나누어 쓴다거나, 분석 결과만 리포팅 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지 못하게끔 하고 있다. 그런데 연구자들은 다들 바쁘다. 전에 ‘가속화되는 학계’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연구자들의 논문 게재 속도만 빨라진 게 아니라 시간 압박 또한 커졌다. 연구와 논문 쓸 시간은 한정돼 있는데, 연구를 계속하고 해당 연구 분야에서 인정받고 자기만족을 위해 요구되는 성과 기준은 높아져만 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학계를 가속시키는 사람과 떨어져 나가는 사람 모두 신진연구자들이다. 이미 자리를 잡은 선배 연구자와 다르게, 그들은 논문을 적지 않게 게재하고도 심심치 않게 도태되곤 한다. 때문에 끝없는 압박과 불안, 스트레스는 일상이 돼버렸다. 이 제도 안에서 연구를 해 나가려면 이 제도 안에서 살아남아야 하므로, 이 제도를 연구해서 바꾸고 싶은 사람들은 살아남기 힘들다. 신진연구자 모두 비슷한 문제의식은 갖고 있으나 분야가 저마다 달라 파편화돼 있어 고민을 나누기 힘들다.

유현미: 이공계가 연구비라든지 과제를 많이 가져가게 되고, 상품성 있는 지식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이공계의 지식 생산 방식과 학문하는 방식, 산업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 일종의 본보기가 됐고 그 속도를 따라가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전준하 선생님이 ‘가속화된 학계’의 개념을 소개해 주셨는데, 인상 깊었다. 모두가 각자의 영역 동향을 따라가는데 바쁘고 거기에서 너무 치이며 살고 있다. 자리 잡지 못하면 죽을 것이라는 공포와 불안 때문에 나오는 패배의식, 자조, 무력감 같은 것을 모두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신진연구자들에게 기대하는 패기라든지, 거대이론에 대한 도전 같은 것을 막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까 이야기가 나온 ‘내재적 발전론’처럼 기존의 이론이나 거대 서사에 도전하는 것들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송희: 지금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말씀해 주셨지만, 그중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대학원 사회에서 자원배분권이 전임교수들에게 집중돼 있다는 것 아닐까 싶다. 주로 이공계 밈이지만 요즘 흔히 대학원에 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전임교수에게 모든 자원과 권한이 쏠려 있고, 그 때문에 위계폭력과 갑질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게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조직에 발을 들였을 때 사람이 어떻게 갈려나갈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다들 대학원 입학을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전임교원들은 그들 나름대로 ‘노동’에 걸맞는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 같고, 그것도 충분히 사실인 듯 하다. 그러나 그 밑에 있는 강사, 비전임, 대학원생들의 처우는 말할 것도 없이 더 열악하다.

이우창: 정책결정권자들, 대학, 학과 모두 대학원생과 신진연구자의 육성이 갖는 중요성을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난달 국회 학술정책 토론회에 갔을 때, ‘7080학번들은 제대로 된 대학교육을 받아보지 않아서 대학교육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 사람들이 대학과 학술 정책을 결정하는 게 심각한 문제’라는 말이 나오더라. 물론 실제로는 전문가도, 사명감을 가진 분도 계시지만, 대학과 대학원을 막연히 “미래 먹거리”나 취업률을 위한 기구라거나 혹은 입시정책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시선이 한국의 교육정책에서 지배적인 것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같다. 그런 건 지금 한국에 필요한 고민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수준의 이야기다. 고등교육 및 대학원생·연구자 육성과정은 한 사회가 보유하고 생산할 수 있는 지식의 양과 질 모두의 한계선을 결정하는 작업이자, 사회가 자신의 문제와 약점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진단하고 해법을 찾아나가는 역량의 크기를 키우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고등교육·연구환경 분야 정책이 갖는 국가적인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 인문·사회를 비롯한 학문생태계, 무엇을 어디서부터 바꿔야 하나.

강수영: 선배들을 보면 학계에서 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운이 따라야 하는 것 같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일찍부터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먹고사는 문제로서의 학문이 어떤 것인지를 많은 교수자분들이 학생들한테 정말 성실하게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임으로 계시는 분들은 진로 프로그램 등을 제도화해 학생들을 도와줄 필요가 있다. 해외 사례를 들어보면 첫 학기부터 연구주제와 진로를 연계하는 작업이 제도화되어 있다고 하던데, 이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잘 판단은 안 되지만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정책이 아닌가 싶다.

김보경: ‘인문학 위기’를 누가 말하는가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진로나 생계문제에 당면한 사람들이 위기를 말하기도 하지만, 과거 영광스러운 지위를 누렸던 시절을 상정해 그때로 되돌아가기 위해 위기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학생이나 연구자들이 겪는 어려움이나 문제를 지적하면, 이를 구조적인 문제로 생각하기보다는 장학금이나 펀딩을 늘리는 것 정도로 대책을 마련하는 데 그치기도 한다. 저도 대학원 들어와서 학술 제도와 정책에 대한 고민을 교수와 못 나누고, 알지도 못했다. 대학원생으로서 자기 연구에만 관심사가 제한되게 만드는 분위기 때문에, 정작 이러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기반에 대해 대학원생들 스스로 생각하고 개입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

이송희: 인문학·사회과학 분야는 사기업에서 펀딩을 받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국가에서 세금으로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설득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양적지표가 성과를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생각도 든다. 양적 평가가 야기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는 물론 공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공계 R&D예산에 비해 1% 규모에 불과한 예산을 배당받는 입장에서 오히려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당장 대학원 입학생이 희귀한 상황에서 학과가 BK사업에 선정되어 박사과정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할 수 있다면 이는 먹고 살기 어려운 인문사회학 분야에서는 상당히 큰 메리트이다. 현 상황에서는 일단 인력풀을 확대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 같다. 사람이 많이 모이고 연구가 계속해서 제출되면 그 가운데서 좋은 연구가 나올 가능성도 더 커진다. 양적인 팽창이 질적인 성장을 가져온다는 말에 일부분 동의하고, 파이 자체를 키우기 위해서는 양적 지표든 뭐든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다.

현수진: “인문학이 중요하니까 도와줘”라고 이야기하면 당연히 사회는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끊임없이 사회에 우리의 효용을 설득해야 한다. 나아가 사회에서 인문학 연구를 할 수 있는 자본을 끌어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시민사회에는 역사학과 같은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있다. 최태성 씨, 설민석 씨와 같은 사람이 쓴 책은 정말 많이 팔린다. 우리 정도의 연구자들이 먹고살 수 있는 시장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시민들을 설득할 방법을 못 찾고, 시민들 또한 사고를 자극하는 것보다 답을 제시해주는 역사 콘텐츠에 익숙하다. 세종대왕 같이 인기 있는 주제나 답을 제시해주는 콘텐츠를 찾는 경향이 있다. 
사고의 과정 그 자체를 보여주고 여기에서 지적인 재미를 찾을 수 있다고 설득하고 싶은데 그것이 잘 안 된다. 우리도 시민들을 설득하는 전략을 개발해야 하지만, 시민사회 또한 인문·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한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나 싶다.

전준하: 학계를 떠나는 것을 낙오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스스로 과거에 학계를 떠나는 것을 두고 낙오라 생각한 적이 있다. 학계 루틴에 자리 잡지 못하고 논문을 빨리빨리 써내지 못해 결국은 자본주의 사회에 굴복해 돈을 벌러 나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학 문제에서도 비슷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선택의 문제일 뿐인데 부정적으로 “왜 내가 유학을 가지 않았나?” 혹은 “가지 못했나”와 같은 자책 또는 주변 질문이나 분위기에 주눅이 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학계 내부에서 형성된 위계에 기반한 인식을 하지 않는 게 개인적으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우창: 대학원과 연구기관은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대학원 입학자 수가 미달이 난다고 걱정은 많이들 하지만, “왜 학생들이 대학원에 오지 않는가”를 진지하게 묻는 일은 잘 없다. 지금의 학생들은 “대학원에 가도 진로가 불투명하다”는 것만이 아니라, “대학원에 가서 인간으로서, 연구자로서 기본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는가”, “시간과 돈을 투입할 만큼 유의미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 한국의 대학원이 여기에 답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이제 학생들이 “저런 곳에 뭐하러 가나”라고 집단적으로 생각하는 시점까지 온 거다.
더불어 연구자 재생산과정, 그리고 연구물 생산과정에서의 질과 전문성의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양적인 성과측정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양적인 성과측정만 신경 쓰다 보니 사람들이 논문 생산이든 학생 교육이든 질을 포기하고 양을 많이 늘리는 형태로 대응해버린다. 이제 제도를 다시 설계할 때가 온 거다. 어떤 형태로든 지금보다 합리적인 공간이 되지 않으면 인문·사회 분야 대학원의 위기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신진연구자들은 학문생태계가 재생산의 위기에 처해있지만, 고쳐지지 않는 학계의 폐쇄성에 낙담했다. “동료로 인정하지 않는다”라며 학계 내 신진 연구자의 위치를 고백하기도, 대학원의 구조적 문제를 장학금으로 무마하려는 방식에도 회의감을 드러냈다. 사진=픽사베이

 

인문·사회 분야 국가지원 옳지만, 문제는 그 방향이다
교수가 가진 권한과 자원, 학술장 구성원에 분배해야

선배들을 보면 학계에서 경제적 기반 마련에는 ‘운’이 절대적
‘먹고사는 문제’로서 학문에 대해 교수자가 성실히 설명해야

전임교수는 연구자 정체성 이상으로 교육자 정체성 가져야
학계가 바뀌길 기다리지 말고, 내가 속한 집단을 먼저 바꿔야

 

△ 폐쇄적 학문생태계, 어디서부터 바꿔야 하나.

강수영: SSK사업 연구보조원으로 5년 동안 일했다. 물론 제가 놓친 것일 수도 있지만, 10년이 넘게 몇 십 개의 연구과제가 축적된 이 사업의 결과를 심층적으로 돌아보는 작업을 보지 못했다. 사회과학 분야가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대중에게 학문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설득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나아가, 학계가 사회와 소통하는 방법도 너무 협소한 것 같다. 카드뉴스 몇 장 내고 대중강연 몇 번 한다고 갑자기 학계와 사회가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 저는 인문·사회과학 전문가들을 학계라는 가두리에 가둬 놓지 말고 다양한 진로 사다리를 만들어서 진출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전준하: 교수들이 가진 권한과 자원을 어떻게든 학술장에서 가려진 수많은 구성원에게 더 분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권한과 자원을 쥐고 있는 많은 전임교수 중심으로는 대학과 학계를 바꿀 수 없다는 게 증명되지 않았나 싶다. 신진연구자들이 책임을 질 테니 권한과 자원을 공유해야 하지 않나 싶다.
또한, 인문·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지원이 중요하고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 다 옳다고 쳐도 그 지원이 누구를 통해 어디로 가는지를 아무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 문제다.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는 말하기 힘들지만, 학술장의 가려진 구성원들에게 좀 더 퍼지는 방향으로 지원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유현미: 앞서 자원 분배가 잘 안된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우리를 동등한 동료로 인정하고 있지 않아서다.
또한, 흔히 ‘명문대’라고 하는 곳에는 사람들이 온다. 제가 아는 어떤 대학원 동료는 이 상황을 가리켜 ‘은마 아파트’ 같은 것이라고 했다. 시설은 낡았지만, 그것이 보유한 투자 가치가 있기에. 그래서 아무도 대학원 내부의 문제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
저는 어떤 의미에서는 전임교원이나 안정적인 연구자들일수록 연구자 정체성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교육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고 제도를 설계하는 데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신진연구자도 여기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 이미 학계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집단을 스스로 바꿔야만 그들도 바뀌게 된다고 생각한다.

현수진: 학술연구를 통해 형성된 담론이 공유되는 공간이 학계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학계 내부에서만 학술 담론이 생산되고 유통될 경우 결국 그 학술 담론을 생산하는 주체들 사이에 보수성과 경직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학문 후속 세대가 좀 더 자유롭게 연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던지기 위해서는 현재의 좁고 국한된 학계를 벗어나 토론의 장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양질의, 그러나 읽기 쉬운 연구서가 시민 사회에 많이 출판되어야 하고, 해외 학계의 최신 연구가 쉽게 소개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인문학에는 언제나 신선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각 학문 분과가 요구하는 연구로서의 성립 요건을 갖춘다는 전제하에 이러한 토론의 장이 잘 작동될수록 학문 후속세대가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지리라 본다. 연구자가 대학과 학계를 기반으로 두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대학과 학계를 넘어서서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환경이 조성될 때 폐쇄적 학문생태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승희: 제 배경이 융합과 관련된 것이니, 학계 내 융합 학문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다. 우선 융합연구 분야에서 가장 큰 문제는 탑다운 지원 방식에 치중해 있다는 점이다. 연구 과정에서 한 분야에서만 하기엔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을 다른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찾는 것이면 모를까, “융합연구를 하면 지원을 더 많이 주겠다”라고 해서 하는 탑다운(top-down) 방식은 좀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나 싶다. 또한, 이런 융합연구 지원과 융합 연구자를 육성하는 일은 조금 다른 문제다. 융합 학과가 2008년 이후로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는데, 융합 학과를 만들면 그 학과 졸업생들은 평생 그 학과의 타이틀을 달고 다닌다는 것을 반드시 먼저 생각해야 한다. “어디 나와서 나는 역사학을 하는 사람이다”, “문학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짧게 말할 수 있는 사람과, 예컨대 과학기술 정책을 전공해서 이 학과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그 배경을 좀 더 길게 설명해야하는 사람은 입장이 좀 다르긴 하다. 융합적인 학과를 나온 학생들도 말하자면 전통적인 라인을 탄 학생들에 뒤지지 않게 학문적인 숙련을 갖출 수 있도록 보장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잘 해주는 곳도 있지만, 그런 것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학과도 많다. 

이우창: 졸업 전후로 모두 우리는 어디에 소속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연구자에게 정말 중요한 건 어디 소속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다. 다른 영역의 연구도 참조하고 다른 분과의 동료와도 같이 작업해야 한다. 물론 기존에 축적된 전문성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기존의 학과에서 ‘여기까지가 우리 영역’이라고 그어놓은 선에 너무 얽매이면 진짜 필요한, 한 발짝 앞서나가는 연구를 할 수가 없다. 지난 수십 년만 살펴봐도 진짜로 필드를 바꾼 연구자들은 기존의 주어진 한계선을 점점 더 멀리 밀고 나가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 사람들이었다. 현재 인문 분야의 학문적 풍토를 보면 “선배들이 하니까”, “외국에서 하면” 그제서야 우리도 한다는 식의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태도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이건 위기에서의 탈출은커녕 우리 스스로를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넣는 독이 될 수 있다. 엄격한 학문적 기준을 충족한다는 전제하에, 새로운 시도가 더 자주 나올 수 있게 지원해주는 쪽으로 방향을 정해야 새로운 답이 나온다.

 

△ 개인적인 진로는 어떻게 잡고 있나.

강수영: 작년에 서울시에 취업하고 파트타임으로 박사를 하고 있다. 일과 학업 병행이 어렵긴 하지만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다. 내 분야의 정석 루트인 미국 유학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한데, 제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과 기여하고 싶은 일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넘어 해외로 나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 납득하지 못했다. 고민을 오래 할수록 유학 가기 어려워진다는 것은 맞는 말 같다.

이송희: 저같은 경우는 박사를 마치자마자 운 좋게 프로젝트 연구소의 연구교수로 일하게 됐다.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기 때문에 잘 지내고 있다. 5년짜리 프로젝트라 그 후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반 사기업을 다녀도 5년 뒤에 계속 다닐지 안 다닐지 모르는 거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실 학계의 전망은… 국문학과에 속한 입장에서는 그저 BTS가 더 잘 되고, 제2의 오징어 게임이 나오길 바란다.

조승희: 같이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있고, 내가 답답해하는 질문에 대해 속 시원하게 긁어주는 곳에 있고 싶다. 아직까지는 대학이 가장 그런 곳에 가깝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현수진: 일단 전통적인 방식으로 학계에 남고 싶다. 공부를 좋아하고 교육에 관심이 있는데, 이것을 할 수 있는 직업은 대학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인문학 연구자가 대학에 자리 잡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임은 모두가 공감하리라 본다.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그 뒤는 나중에 생각하려 한다. 설령 마음 먹은대로 잘 안 되더라도 그간 공부가 재미있었으니 다른 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우창: 블로그(begray.tistory.com)를 운영하면서 느낀 것인데, 정말로 좋은 연구, 중요한 문제제기, 깊이 있는 분석의 수요는 많지는 않을지언정 꾸준히 존재한다. 그런 글이 나오기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보다 좋은 동료 집단을 만드는 것이다. 자기 필드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진짜 뛰어난 연구자들과 지적인 교류를 통해서 자기 연구를 풍성하게 만들고 싶은, 연구 욕심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 필요하다. 암묵적으로 그런 갈증은 있는데 그런 그룹을 만드는 예는 별로 없다. 어쩔 수 없이 직접 만들어가는 중이다.

유현미: 졸업할 때 즈음 한국연구재단에서 학술연구교수 A유형을 뽑는다고 해서 지원할까 했는데, 쓰려다가 보니까 ‘한 학기 앞에 무슨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어떻게 5년 계획을 세우나’이런 생각을 하며 못 썼다. 그래도 학계의 루틴에 익숙해진 것 같다. 프로젝트 노동자가 된 것 같다. 프리랜서로서 가장 어려운 것은 아직 오지 않은 어떤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공포에 계속 사로잡힌다는 것인데, 현재의 목표는 그런 공포에 사로잡히지는 않는 것이다.

전준하: 왜 학교를 떠났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완벽하게 떠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언제나 가능성은 열려 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갈 수도 있고 파트타임으로 할 수도 있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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