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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파노라마] 왜 북한 디자인을 하세요?
[디자인 파노라마] 왜 북한 디자인을 하세요?
  • 김소연
  • 승인 2022.04.22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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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디자인 파노라마 ⑭_김소연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디자인학과 강사

“북한에 디자인이라는 말이 있어요?”, “왜 (하필) 북한 디자인을 하세요?” 김소연 북한 디자인 연구자(국민대 강사)가 북한 디자인을 연구할 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라고 한다. 김 연구자는 이번 디자인 파노라마 글에 북한 디자인 연구 이유를 함께 생각해보고 고민하는 과정을 담았다.

제7차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 선전화. 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제7차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 선전화. 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에서는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대신해 ‘산업미술’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쓰고 있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 따르면, 산업미술이란 “제품의 형태와 색깔, 생활환경 같은 것을 아름답고 보기 좋게 또는 쓸모 있게 만들거나 꾸리는 등 산업 목적에 이바지하는 미술”이다. 디자인에서 시각디자인, 제품디자인, 공간디자인, 의상디자인과 같은 세부 분야가 있듯이 산업미술은 다시 산업출판미술, 형태미술, 장식미술, 의상미술 등으로 나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산업미술가들이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북한의 대표적인 미술 잡지였던 <조선미술>에서는 산업미술의 정의를 다루는 글에서 ‘데자인’이라는 용어에 대해 다른 나라들에서 통용되는 단어이며, “일정한 용도와 목적에 적용되게 아름다운 형태로 되게하는 구상과 조형적 설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1960년대 북한의 산업미술계에서 활약한 장만희가 쓴 글에서는 ‘타이포그라휘크’에 대한 용어 설명도 나와 있어 적어도 초기 북한의 산업미술가들은 이러한 단어들에 익숙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또한 2000년대 이후 산업미술 관련한 기사에 ‘우리식 디자인’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여러 근거를 종합했을 때, 북한에서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산업미술로 대체되었고, 그 세부 분야의 분류 기준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디자인 분야와 하위 범주들이 존재해왔다. 그리고 적어도 60년대 이전의 산업미술가들과 현재 산업미술가들 대부분은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알고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북한 디자인 연구자로서 지닌 네 가지 고충

가끔 “왜 이런 쪽을 연구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 “그러게 말입니다”라고 응수하고 싶을 때가 있다. 북한 디자인 연구자들은 연구를 시작하며 크고 작은 산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 첫 번째는 시선이다. 그 시선은 크게 두 종류 정도로, 차이는 있지만 위아래로 훑어보는 것만 같은 곱지 않은 느낌, 혹은 신기하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나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연구의 진입 장벽이다. 직접 가서 볼 수 없는 사물과 현상을 한정된 텍스트와 이미지 자료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은 연구 한계로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연구자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관은 국립중앙도서관 내 위치한 북한자료센터다. 국내 최대의 북한 자료들을 보유하고 있는 이 기관은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과 방대한 문헌 및 영상 자료를 연구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북한의 국경 봉쇄로 최근 자료들의 열람이 막히고, 이미지 저작권에 대한 이슈가 불거지면서 이미지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북한 디자인 연구는 또다시 침체기를 맞았다. 출처 표시를 명확히 한다는 전제하에 학문적 연구의 활성화를 위한 북한 이미지 저작권의 기준과 논의가 구체적으로 필요한 지점이다.

세 번째로는 선행 연구의 부족이다. 인접 분야인 미술사의 경우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된 1990년대 이후 지난 30여 년간 각종 단행본과 논문들이 촘촘한 연구망을 형성하고 있는 반면, 북한 디자인 연구는 불과 십여 년 남짓한 기간 동안 학문적 성과물들을 내고 있는 신생 분야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이렇다 할 단행본도 없었으며 각 분야 연구자들도 손에 꼽을 만큼 적다. 2020년에서야 나온 『북한에도 디자인이 있을까?』(최희선)는 북한 디자인에 관심 있는 연구자와 대중들을 위한 국내에서 출판된 첫 전문서적이다.

네 번째로는 북한 디자인뿐 아니라 북한 연구자들이 지닌 공통적인 부담은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받는 학문이라는 점이다. 분단국가가 짊어져야 할 숙명이라지만 역설적으로 분단국가이기에 정치적 편향성을 넘어 안정적인 제도와 학문적 지원이 담보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국내 대학에서 북한 디자인 관련 수업 하나 개설하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필자가 연구를 시작할 무렵 도움을 주셨던 선생님들은 이 분야 외에 다른 분야도 필수적으로 연구할 것을 조언해주셨다. 아직 소수의 북한 디자인 연구자들을 뭉치게 하는 힘은 바로 이러한 연구 지속성의 어려움을 서로가 경험했기 때문이다.

 

북한 국가우표발행국이 발행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10돌 기념 우표. 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 국가우표발행국이 발행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10돌 기념 우표. 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 디자인 연구의 필요성

처음 연구를 시작한 2015년경, 미국 유학 중에 있던 필자는 우연히 네덜란드 라이든대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서유럽 최초로 세워진 유서 깊은 한국학과가 있는 이 학교에는 방대한 북한 시각물을 보유하고 있던 네덜란드 컬렉터의 컬렉션을 디지털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모든 문장과 단어마다 매큔-라이샤워 표기와 영어 번역이 뒤따르는 쉽지 않은 일이었고, 역사적, 문화적 맥락이 다른 외국인 학생들과 작업을 하다보니 이런 저런 해프닝도 있었다. 한 번은 인삼을 들고 있는 이미지를 서양 무로 잘못 표기한 것을 고쳐주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들이 지닌 환경(북한 시각물을 학문적 자산으로 여기고 디지털 작업을 위한 여러 자원을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왜 우리는 이런 작업을 먼저 하지 못했을까. 상대적으로 같은 언어와 분단 이전 같은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고 있어 포스터의 내용과 구조를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연구를 시행해 나가는 데 있어서 여러 규제와 장벽들은 북한 이미지 연구를 쉽지 않게 한다.

이미지는 곧 한 사회의 거울이며 이미지 연구는 한 사회를 들여다보는 하나의 창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향후 북한 연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국내 연구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다양한 연구를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안정적인 연구 환경이다. 소수의 연구자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북한 디자인 연구를 멈추지 않는 것은 우리의 연구가 맹목적으로 상대방만을 위하거나,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서로를 아는 힘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무언가를 대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소한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가 연구하는 목적은 거기에 있다.

 

김소연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디자인학과 강사

서울대에서 미술이론으로 석사를,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SVA NYC)에서 Design Research, Writing and Criticism 전공으로 석사를 받았고, 국민대에서 북한 디자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북한 디자인을 포함한 근현대 디자인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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