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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급 연구원의 '해방일지'
석사급 연구원의 '해방일지'
  • 소가람
  • 승인 2022.04.26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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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소가람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석사

대한민국 누구의 삶이 편하다고 할 수 없지만, 연구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연구자가 되는 것도 쉽지 않다. 최소 6년 이상의 준비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 과정의 끝에 도달해도 온전히 연구로 먹고 살 수 있는 연구자로서의 과정에 집중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고급 인력이라는 미명하에 등용문 또한 좁은데 그 과정에 뛰어드는 이는 줄어들지 않아 마치 연어들의 회귀를 보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학문후속세대들은 그 과정에서 방대한 지식의 영역을 한 점만큼 넓힌다는 자부심이 아닌 생존의 위기감 앞에 몸부림치기에 십상이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 한 사람에게 연구자의 자부심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무언가이기 때문에, 나중을 도모하거나 살기 위해 다른 길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학문후속세대로서 잠깐 외도를 하는 이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다. 학교 내에서 연구재단의 지원사업을 수행하는 팀에 몸담거나 각종 연구기관에 연구원으로 입사하기도 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연구”라는 큰 틀에서 방향성을 잃지 않은 좋은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최악의 경우는 연구와 무관한 길에 발을 담그게 되는 것이다. 이는 연구자가 연구와 멀어지게 할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우리 사회는 한 명의 지식인을 잃을 수도 있는 셈이다.

거기에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는 명문대학 혹은 외국 대학 학위를 우대해주는 경향은 좀 더 늦게 학문에 길에 정진하게 되었거나 좋은 학위가 없는 연구자에게는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 물론 연구소나 기업 등 선택지가 많기 일쑤인 고용주의 입장에서 이런 경향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자체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있는 연구자나 외국 대학 학위 또는 명문대 학위를 가지지 못한 이들은 연구 실적이 뛰어나도 교수나 정규 연구원 등의 자리에는 큰 제약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남은 선택지인 시간강사나 비정규직 연구원(흔히 위촉연구원이라 불리는)을 통해 경력을 유지하며 연구할 환경을 개척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 또한 비정규직 연구원 과정에 있었다. 내가 소속돼 있던 어느 자치단체 출연 연구원에서는 석사급 연구원들의 사기가 굉장히 낮았는데 직장인들의 푸념 등이 올라오는 특정 웹사이트에서의 평가는 그야말로 바닥을 치는 수준이었다. 이런 푸념의 글은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동조하는 수준에서만 머물러 있었다. 차라리 보고계통을 통해 문제를 처리하려는 것이 나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규정에 있는 사항을 사례가 없다며 처리해주지 않았고, ‘노동법 위반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상황들, 연구원으로서 존재의 의미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는 상황이 반복되며 노조 및 노사위원회의 결성까지 생각하고 주도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에 노조를 결성하고자 했던 박사급 연구원분께 조언을 들으며 실패의 가능성을 감지하기도 했다. 이유는 비정규직인 석사급 연구원 문제가 박사급 연구원들이 공감해 줄 수 있는 문제인지 여부와 시의 조례에서 철저히 연구원들에게 불리한 조항 등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움직임은 박사급 연구원들의 협조를 받는 데 실패하며 성사되지 못했고, 이 작업을 주도했던 이들이 하나둘 떠나며 그곳은 다시 조용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비슷한 길을 걷는 내 동료 연구원에게는 뭐하러 경력에 도움도 안 되는 것을 하냐는 핀잔 비슷한 말을 듣게 되었다. 결국, 나 또한 “그냥 빨리 돈 벌어서 박사 따자”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고 지금은 꿈에 그리던 유학을 위해 준비하는 중이다.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까지도 중요하다고 지도교수님께 가르침을 받아온 내게 이러한 기억은 씁쓸한 기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마치 황지우 시인의 시에서 애국가의 끝에 주저앉는 그들의 모습처럼 말이다. 연구자들은 누구 하나 쉬운 길을 걸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술안주로 연구자를 사기꾼이라는 얘기도 듣고는 하지만 연구계의 이런 고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공감하는 시각이 없지는 않다고 알고 있다. 최소한 같은 연구자들이 힘들어할 때 후속세대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줄 수 있는 넓은 아량을 기대한다.

소가람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석사

한국의 민간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연구자이며, 도시환경정책 및 에너지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연구 관심사는 도시에서의 친환경적 이동으로 지속가능한 교통 및 워커빌리티(Walkability)이다. 순수하게 연구 관련 교류를 하고자 하는 이들과 지속가능한 사회과학연구회라는 조직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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