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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학맥과 학풍
우리의 학맥과 학풍
  • 최승우
  • 승인 2022.05.13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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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지음 | 천년의상상 | 376쪽

1. 유일한 한국 현대 지성사, 다시 태어나다
- ‘학술 저널리즘의 개척자’ 이한우와 K-를 탐구한 ‘청년 연구자’ 임명묵 대담 수록

더 나은 변화를 위해서는 문제의 ‘근본根本’을 파고들어야 한다. 우리 정신사를 형성해왔던 한국 현대 학문의 ‘뿌리’를 찾아 나섰던 『우리의 학맥과 학풍』도 우리 학계가 처한 문제의 근본에 다가가기 위해 쓰였다. 이 책은 출간된 지 30여 년이 지났음에도, 개정판을 출간하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 현대 지성사를 조망한 유일한 저작이다. 당시 서른둘의 패기 넘치던 학술 기자 이한우는 ‘우리 스스로 학문 활동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품고서 우리 학계의 출발점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우리의 현대 학문들이 광복 이후 어떻게 도입되고 성장해 왔는지, 각 학문 분야 학자와 학파들의 면모는 어떠했는지, 한국 학계의 정확한 실상과 계승할 지적 유산은 무엇인지 찾아 나섰다. 그 결실이 바로 이 책 『우리의 학맥과 학풍』 이다.

이번 개정판은 1995년 이후 학계의 변화된 상황을 저자 이한우와 젊은 연구자 임명묵의 대담으로 보완하였다. 동서양 철학을 함께 공부하면서 번역서를 포함 100여 권의 책을 쓴 저자 이한우와 『K-를 생각한다』에서 20대라고는 믿기지 않을 놀라운 분석력과 통찰력을 보여준 청년 학자 임명묵과의 대담. 이 말들의 향연에서는 깊은 관록과 힘찬 패기가 때론 부딪치고 때론 조화를 이루면서 풍성한 대화의 숲을 만들어갔다. 또한 기존 본문 내용 중에서 어색한 문장들을 새롭게 다듬고, 사실관계를 일일이 다시 확인해서 정확하게 수정하였다. 개정판 『우리의 학맥과 학풍』에서 우리의 오늘을 만든 생각의 뿌리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책을 낼 때 강조했던 동ㆍ서양학문의 통합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고 학문성의 철저화 또한 약간 개선된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는 이 책의 현재성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하겠다. 역설적이지만 지난 30년 가까이 크게 발전하지 못한 한국 인문사회과학계의 부실함이 이 책에 현재성을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어찌 보면 이 과제는 필자 스스로 어느 정도 수행해 오고 있다. 실록읽기에서 출발해 사서삼경 해독으로 나아갔다가 다시 중국 역사를 공부하고 태종실록으로 돌아와 최근 태종 이방원에 관한 책을 쓰면서 경經과 사史를 통합하는 학문 모델을 정립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과제를 다음 세대에게 넘긴다. 미안한 일이다. 필자는 믿는다. 반드시 다음 세대 중에 필자의 이 책을 훌쩍 뛰어넘는 저술을 쓰는 인물이 나올 것이라고. 그것이 역사의 역동성이다._‘개정판 서문’ 중에서

2. 우리 학문의 한계와 가능성을 정확하게 진단하다
- 현재성을 상실한 동양 학문, 현실성을 상실한 서양 학문

『우리의 학맥과 학풍』에서 다루는 학문 영역은 우리의 정신사 형성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동양철학, 서양철학, 역사학, 사회학, 정치학, 법학, 여섯 개 분야이다. 이 모든 학문은 본래부터 자생적으로 일구어왔던 것이 아니라 일본 강점기와 해방 이후 주로 일본을 통해 서양에서 도입해 이식된 것이었다. 당시 학문 1세대를 이루는 학자군들은 일본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거나 심지어 학사 졸업 후에 한국 대학의 교단에 섰다. 일본도 서양 학문을 우리처럼 밖에서 받아들인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출발부터 달랐던 게 현실이다. 이를테면 서양철학에서는 하이데거 제자 중에 교토학파라는 게 있다. 교토학파 학자들은 19세기 말에 독일 유학 가서 가다머 등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서양 학문의 본고장에서 정통으로 공부하고 온 학자들이 일본 학계를 이끌어 나갔던 것이다. 더욱 문제였던 것은 우리 1세대 학자들이 자기 한계를 인정하면서 후학들의 토대를 마련해주는 데 집중해야 했는데 대가大家 행세를 하며 권위주의적으로 군림했다는 데 있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제대로 학문 트레이닝을 받은 새로운 학자들이 자리를 잡아나가긴 했으나, 전통 학문과는 단절된 채 구습과 이론 속에만 포박당한 상태를 쉽게 벗어나진 못했다. 저자 이한우는 이러한 우리 학계의 상황을 ‘현재성을 상실한 동양 학문, 현실성을 상실한 서양 학문’이라는 말로 압축해서 표현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학계의 기초를 세우기 위해 분투한 학자들이 있었다. 실학을 재발견하고 다산 정약용의 학문을 탐구해 계승하고자 했고, 형식상으로 논문 모음집에 그치긴 했지만 『한국철학사』를 집필하기 위해 중견 학자들이 대거 힘을 합치기도 했다. 역사학에서는 문헌고증사학, 민족주의사학, 사회경제사학이 자웅을 겨루면서 식민사학을 극복하고자 노력했으며, 한국형 사회학을 시도하고 정착시키고자 하는 여러 학자들의 노력이 이어졌다. 일제 잔재와 수험법학에 이중 구속된 처지에 있던 법학 분야에서도 교과서 집필에 머물지 않고 독자적인 연구 방법론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이 모든 노력은 ‘전통 학문의 현대화’이면서 서양 학문을 우리 사회와 접목시키고자 했던 과정이었다.

전통 학문의 현대화! 이 작업은 ‘현재성을 상실한 동양 학문’과 ‘현실성을 상실한 서양 학문’의 갭을 메우는 이중적인 의미에서의 해석학적 작업이다. 그런데 그 작업은 이 두 무책임한 경향을 단순히 합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로 이 같은 태도를 물리치고 ‘전통 학문의 현대화’라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동양학자건 서양학자건 각자 자기의 역할과 한계를 의식하고 연구를 추진해 나갈 때 완성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 본문 106-107쪽

3. 불성실한 학문 행태를 타협 없이 비판하다
- 오역 비판 전문가, 표절 사냥꾼의 고독한 추적기

구습에 포박되고 이론에 갇힌 우리 학문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모습은 오역과 표절일 것이다. 저자 이한우는 책 마지막에 「번역, 제발 제대로 합시다!」와 「베끼기에서 시각 도용까지, 한국 학계의 표절 백태百態」라는 글 두 편을 따로 할애해 우리 학계의 민낯을 드러내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당사자들을 이니셜로만 표기했지만 저서명, 해당 전공을 공개하여 쉽게 누구인지 짐작 가능하여 사실상 실명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학계 내부 ‘침묵의 카르텔’을 깰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어학 실력을 갖춘 저자의 지성과 패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학계 내부자가 아니라 외부 아니 정확히는 ‘학술 기자’라는 경계인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책에 실린 글은 그가 쓴 관련 기사 중 극히 일부일 뿐이며, 우리 학문을 좀먹는 폐해를 뿌리 뽑겠다는 결기로 쓴 오역과 표절 비판에 관한 글이 수십 편에 이른다.

‘어떤 책에 오역이 많다’라는 식의 전문가 의견 뒤에 편하게 숨는 게 아니라, 저자 자신이 직접 왜 이 문장의 번역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고치면 읽을 수 있는 문장이 되는지 보여준다. 문맥에 따른 용어 차이와 뉘앙스를 무시하거나, 기본 개념의 이해를 결여하거나, 일관성 없는 오역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으로 좋은 번역을 위한 지침서 역할까지 아우른다. 표절 비판의 경우, 그 유형을 5가지로 나눠서 철저히 파헤친다. 첫째, 고전적 표절 양상으로 국내 학자의 논문이나 책을 국내 학자가 베끼는 경우, 둘째, 외국 저서나 논문에서 여러 장이나 절을 그대로 번역해 싣는 경우, 셋째, 외국책을 거의 그대로 번역해 자기 ‘저서’로 둔갑시키는 경우다. 넷째는 표절의 냄새를 줄여보려고 사실상의 번역서를 잡글 하나와 함께 ‘편저’라고 해서 책을 내는 경우, 다섯째, 가장 고난도의 표절인데, 어떤 저자의 고유한 입장이나 견해를 명시적 표시 없이 도용하는 경우다. 당시 우리 학계의 ‘웃픈’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를 하나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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