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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중국인의 해국 탐색
근대 중국인의 해국 탐색
  • 최승우
  • 승인 2022.05.18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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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현 지음 | 소명출판 | 488쪽

대양을 건넌 중국인들
청말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해양은 무슨 의미였을까? 전근대 중국인들은 바다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미지의 세계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아편전쟁 이전 해외 여행기는 비록 과거의 전설 수준에서 벗어나 사실에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여행 범위는 동남아 지역과 러시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두 차례 아편전쟁의 패배 후 청국은 서양 열강에 의해 해금 정책을 버리고 강제로 개항하면서 근대적 만국공법 질서에 편입되어 외교근대화를 이루는 계기를 맞이하였다. 이때 청국인들이 구미 문화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개인 여행자와 해외 사절단 및 출사대신(出使大臣)은 매우 중요한 매개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출사대신이야말로 청국이 국제사회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선구자였으며, 외교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미지의 세계인 대양을 건너야 했다.

청말 해외로 나간 중국인 가운데 출사대신의 여행기(혹은 일기)에는 구미 열강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풍속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들의 눈에 가장 인상적으로 들어온 것은 19세기 서양의 놀라운 과학기술이었다. 근대 문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과학기술로는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윤선과 대형함포를 갖춘 군함을 꼽을 수 있다. 중국인들에게 이른바 ‘견선리포(堅船利?)’의 위력은 큰 충격을 주었다. 근대 문명이 바다로부터 왔다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해양 문명에 대한 인식 수준은 곧 근대화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다. 대양을 건넌 청국인들은 유럽 사회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였고, 청일전쟁 이후에는 오랜 경쟁자였던 해양 국가 일본이 새로운 모델로 등장하였다.

‘동양’과 ‘서양’의 해양 문명의 경험을 엿보다
이 책은 청국의 지식인들이 서양과 일본의 해양 문명을 어떻게 이해를 했는가? 라는 주제를 가지고 양무운동과 청말신정의 역사 경험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작업의 하나이다. 책의 전반부를 구성하는 제1편 ‘서유기(西遊記), 유럽의 해양강국을 탐색하다’에서는 양무운동 시기 청국에서 파견한 유럽 출사대신을 중심으로 여행기와 일기에 나타난 서양의 과학기술, 특히 해양 문명의 대강을 정리한 후 중국인들이 새로운 해양관을 형성하는 과정을 분석하였다. 이 책의 후반부를 구성하는 제2편 ‘동유기(東遊記), 해국일본을 학습하다’에서는 청일전쟁 전후로 청국에서 파견한 일본 출사대신이나 시찰단 및 유학생의 여행기나 일기를 중심으로 해국(海國)일본과 일본해군을 이해하는 수준과 더불어 일본 사회의 해양 문명을 시찰하거나 유학하는 과정을 분석하였다. 본문에서 다룬 내용을 대략 네 가지 주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청말 출사대신이 서양(혹은 일본)으로 출양하는 과정에서 겪은 대양항로의 경험이다. 청국의 지식인들에게 대양이라는 지리적 공간을 경험하는 놀라움은 근대의 출발을 알리는 새로운 문명사적 발견의 하나였다. 당시 일반 중국인에게는 5대양 6대주의 개념이 아직 정착하지 않았고, 대서양의 상대어인 ‘대동양’이란 용어가 ‘태평양’으로 바뀌는 중이었다. 대양항해 가운데 해양 관련 소재를 열거하자면, 증기기관과 선박구조, 대양항해의 기억들(풍랑, 배멀미, 선상 질병과 사망), 지리관의 혁신과 시간관념의 변화, 등대와 암초, 해저케이블과 해외 이민, 수에즈운하의 개통, 항구 풍경 등을 들 수 있다.

출사대신은 대양을 산업혁명의 놀라운 발명품인 증기선으로 건너면서 지구가 둥글다거나 바다가 육지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였다. 그리고 대양항해 중에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따라 밤낮과 사계절이 생긴다는 근대적 시간관념을 인식할 수 있었다. 날짜변경선의 이해, 즉 “태양의 반대 방향으로 여행하면 하루가 더 많아진다”라는 시차 문제의 자각은 근대적 시간과 거리 감각의 수용을 가져왔다. 이런 근대과학의 지구설과 지리관을 수용할 경우, 세계 어느 지역도 중심이 될 수 없다는 탈중심화로 연결되면서 전통적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균열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둘째, 출사대신이 유럽(혹은 일본)에서 군함과 대포를 구매하는 과정에 나타난 해군 건설이다. 근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해양 문명으로는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증기선과 대형함포를 구비한 군함 등을 꼽을 수 있다. 출사대신 일기와 여행기 중에는 군함의 구매 문제, 최신식 철갑선에 대한 기억, 신형군함의 진수식 참가, 어뢰와 어뢰정에 대한 놀라움, 함포의 제작과 위력, 서양해군의 역사와 발전과정, 해군 열병식과 해군학교 참관, 조선소에서 군함의 무기 장착 과정, 문자선의 결함, 군항과 해안포대의 참관 등 다양한 기록들이 나타난다. 그런데 청국이 북양함대와 같은 신식 해군을 건설해 일본을 압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청일해전 중 거의 모든 전투에서 패배한 사실은 놀라운데, 이 점은 청국의 전통수사가 실질적인 근대해군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 후 체제의 붕괴 위기에 직면한 청조는 청말신정 시기에 이르러 구미 국가를 대신해 일본을 모범으로 삼아 군함을 구매하거나 해군 유학생 파견하는 등 전향적인 모습을 보였다.

셋째, 출사대신과 유학생 등이 경험한 유럽(혹은 일본) 현지의 해양 문명이다. 출사대신의 유럽 시찰 가운데 해양 문명 관련 소재를 열거하자면, 어정과 선정의 합리성(금어기간과 선원훈련 등), 해양법과 만국공법, 해양기술(해저터널, 해저인양, 해저전선 등), 동물원과 수족관의 신기한 어류(고래 등), 해양스포츠와 해수욕 등이 있었다. 그들이 서양의 물질문명뿐만 아니라 사회, 풍속이나 정치, 교육 등 다양한 제도와 문화를 수용하려는 노력은 여행기 곳곳에 나타난다. 한편 일본 시찰 여행기인 다양한 동유일기는 청말신정과 중국 근대화과정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자료인데, 여기에는 교육 시찰, 실업 시찰, 법·행정 시찰, 군사 시찰 등 전 방위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그뿐만 아니라 해국일본의 해·수양학교, 해·수양산업 및 일본 사회의 해산물과 같은 독특한 해양 문화도 포함되었다. 군사 분야에서도 육·해군 시찰은 물론 육·해군 유학생 파견도 이루어졌다.

넷째, 출사일기에 나타난 중서문화 비교인식의 문제이다. 양무운동 시기 출사대신 가운데 진심으로 서양 문화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들은 중국인의 전통적 가치관에서 출발해 서양인의 물질에 대한 추구를 천시하였다. 따라서 서양 국가가 과학기술과 상공업무역을 발전시킨 것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차가운 눈으로 방관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실제로 유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서양과학과 이론을 받아들이는 것은 무척 험난하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왜냐하면 동아시아인의 인식구조와 지식체계가 구미의 근대적 과학이론과 서로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서양의 과학기술을 중국식으로 해독하는 경우가 쉽게 발견된다. 전통적 가치와 서구적 근대 간에 긴장과 균열은 서학중원설이나 중체서용론과 같은 절충적 인식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일본 시찰을 통해서는 오히려 서양 배우기에 몰두해 중국문화로부터 멀어지는 일본인들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 나타난다.

대체로 양무운동 시기는 서양 열강의 해양 문명과 격차를 실감하고 중체서용의 한계를 자각하는 과정이었다면, 청말신정 시기는 적국이던 일본의 해양 문명을 모범 삼아 학습하던 때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자는 해양사의 관점에서 청국의 서양(혹은 일본)의 해양 문명을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전통적 대륙 중심의 세계관이 균열을 일으키고 근대적 만국공법 질서가 침투하는 과정을 파악하고자 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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