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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주의 극복 위해 파시즘 동원한 걸까
허무주의 극복 위해 파시즘 동원한 걸까
  • 김재호
  • 승인 2022.05.25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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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④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9를 맞이해 「자유와 이성」을 주제로 총 44회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본성, 재난과 질병에 대한 제약과 해방 등을 역사, 정치, 철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살펴본다. 지난달 30일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철학)가 「인간 자유의 본질」을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6강은 서병훈 숭실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의 「자유, 다원주의, 상대주의」, 제7강은 김현섭 서울대 교수(철학과)의 「자유와 정의: 자유주의적 정의론」, 제8강은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의 「실존과 자유」, 제9강은 한자경 이화여대 교수(철학과)의 「분별심으로부터의 자유: 불교의 깨달음과 해탈」이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스스로 가치 창조하는 권력 의지 지닌 고귀한 인간이 진정한 자유
잘못 이해된 자유는 타락, 철학자들의 잠재적 위험성을 깨닫는 게 중요

자유는 정치적인 목적의 문제인가, 아니면 기술적인 수단의 문제인가? 이제까지 우리는 인류문명이 자유를 위해 탄생했고, 자유 실현의 과정을 통해 진보한다고 생각하였다. 프랑스 대혁명 이래 보편화된 자유 의식은 자유가 삶의 목적이라는 사실에 대해 우리가 합의한 것처럼 보였다. 자유를 실현할 수단을 구하면서 자유는 이제 기술적인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자유 이념에 대한 믿음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서양 문명의 최고 가치가 자유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허무주의는 자유의 가치가 타당성을 상실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우리가 니체의 말처럼 ‘왜 자유가 있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할 수 없다면, 허무주의가 이미 우리의 영혼을 잠식하고 일상화된 것이다. 니체는 스스로 “유럽 최초의 완전한 허무주의자”라고 자칭하면서 이 허무주의를 극복할 방법을 강구한다. 니체가 찾아낸 철학적 대안은 잘 알려진 것처럼 모든 가치의 가치전도를 시도하는 ‘권력에의 의지’다. 만약 우리가 의지를 행위를 통제할 수 있는 힘으로 이해한다면, 자유는 필연적으로 권력과 연결된다. 니체는 진정한 인간성이 운명애를 통한 자기극복에 있다고 말한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는 니체와 하이데거 철학을 분석하며, 자유의 본질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니체에게 자유는 우리가 행위를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우리는 선한 자가 되고 싶다고 선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악한 인간과 다른 존재가 되고 싶어도 선한 존재가 되지 않는다. 자유는 결코 의지의 산물이 아니다. 니체에 의하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자유는 “이렇게 또는 저렇게 존재하는 자유이지 이렇게 또는 저렇게 행동하는 자유는 아니다.” 우리의 존재와 실존이 의지에 우선한다. 

진정한 자유는 어떤 존재가 되고자 하는 자유 의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긍정에 있는 것이다. 전통 형이상학이 자유 의지를 통해 개인이 자신의 행위를 통제할 수 있다는 허구를 심어줬다면, 니체는 권력에의 의지를 통해 자신의 내부를 통제할 때만 있는 그대로의 자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니체는 자신이 창조한 가치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진정한 의미의 자유라고 부른다. 니체는 자기를 지배할 수 있는 자만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스로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고귀한 인간’, 즉 귀족은 노예처럼 비천한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위계질서를 정립한다. 이제까지 우리가 이해하였던 자유의 이념이 자유를 실현하기는커녕 오히려 타락시켰다면, 우리는 이제 자유라는 가치가 정말 어떤 가치가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가치 자체의 가치’를 묻는 니체의 철학적 방법이 자유의 본질을 묻는 것이다.

니체와 하이데거는 자유의 본질을 구하기 위하여 근대 합리적 계몽주의의 산물인 자유민주주의를 폄훼하고 부정한다. 파시즘의 창시자로 오해받았던 니체를 철학적으로 복권하는 데 공헌한 하이데거가 정치적으로 훨씬 더 논란이 많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오늘날 논란이 되는 것은 정치에 관한 그의 사상이 아니라 나치 정권에 대한 그의 태도이다. 하이데거가 나치 정권하에서 1933년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여 정치적으로 활동하였다는 사실로 비난을 받았지만, 그는 나치 정권의 몰락 이후에도 자기 입장에 관해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근래 이 시기의 유고가 『검은 노트북』(1931∼1970)으로 출간되면서 나치즘이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그의 철학에 훨씬 더 깊숙이 스며들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하이데거는 자유를 존재의 관점에서 파악한다. 하이데거는 자유를 행위 주체의 특성으로 바라보는 근대의 전통을 부정한다. 첫째, 하이데거의 자유 개념이 존재론적 개념이라는 사실은 그가 인간을 규정하는 ‘현존재(Dasein)’라는 개념에서 잘 드러난다. 현존재는 “자신의 존재에 있어서 바로 이 존재 자체가 문제되는 존재자”이다. 둘째, 자유는 인간이 존재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적 조건을 전제한다. 셋째, 존재론적으로 이해된 자유는 인간의 자발적 행위가 아니라 ‘존재하도록 함’이다. 넷째, 존재론적 의미의 자유는 부자유로의 경향이 있다. 존재가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존재 그 자체가 우리에게 은폐될 가능성을 함축한다. 다섯째, 자유는 일상적 존재 이해와 존재 방식에서 벗어나 본래 자신의 존재 능력을 선택하는 결단이다.  자유는 존재의 진리가 드러나는 방식이다. 하이데거는 고대 그리스 개념 ‘알레테이아(aletheia, Non-concealment)’에 따라 진리를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파악한다.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권력의 부재다. 권력에 대한 하이데거의 평가는 형이상학적이다. 지구를 지배하는 것은 권력이다. 오늘날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권력은 우리가 존재의 망각에서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압도한다. 권력의 양이 많을수록, 더 많은 존재를 망각한다. 과학과 기술에 기반한 권력은 궁극적으로 지구를 황폐화한다. 존재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일만이 지구를 황폐화로부터 구원하는 일이다.

니체와 하이데거처럼 반평등주의적이고 반자유주의적인 사상가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가 되었다는 점도 수수께끼지만, 이들이 ’자유의 본질‘을 그 어떤 철학자들보다 깊이 천착하였다는 사실을 여전히 풀기 어려운 미스터리다. 니체는 진실도, 목표도, 가치도, 의미도 없다는 엄연한 진실을 정직하게 직시해야만 진정한 지적 해방과 모든 가치의 재평가를 위한 길을 닦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처해 있는 존재 상황을 성찰해야 비로소 존재와 본래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믿는다. 니체는 파시즘의 창시자가 아니라 파시즘을 산출한 시대적 위기의 예언자다. 하이데거의 문제는 기술 권력으로 파괴된 상황에서 어떻게 존재 자체와 진정한 관계를 맺는가였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바로 자유의 본질을 새롭게 성찰하는 것이었다.

잘못 이해된 자유는 타락한다. 자유의 본질에 관한 위대한 사상이 오해될 때 그 결과는 훨씬 더 치명적이다. 우리는 니체와 하이데거의 사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면 그들의 잠재적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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