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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 산만하게 흩어지면 잡음... 체계적 이탈은 편향
판단, 산만하게 흩어지면 잡음... 체계적 이탈은 편향
  • 유무수
  • 승인 2022.05.27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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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노이즈: 생각의 잡음』 대니얼 카너먼 외 2인 지음 | 장진영 옮김 | 김영사 | 616쪽

규칙·가이드라인은 잡음 줄이고 결정의 질 개선
통계적 사유와 외부관점 활용으로 잡음 줄이기

유튜브 한문철tv를 보면 교통사고 장면을 설명하면서 “판사에 따라서는” 하는 말을 덧붙일 때가 있다. 똑같은 사고에 대해 어떤 판사는 ‘100:0으로 무죄’라고 할 수도 있는데 또 다른 판사는 ‘80:20으로 유죄’라고 판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사망자가 발생한 대형 사고의 재판에서 이러한 변산성(variability)은 운전자의 인생을 크게 좌우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판단의 차이를 ‘잡음’이라고 불렀다. ‘잡음’은 임의적으로 분산된 판단들이고 체계적으로 이탈된 판단은 ‘편향’이다. 

 

1973년 미국의 마빈 프랑켈 판사는 잡음 문제를 연구했다. 범죄 전력이 없는 두 사내가 58달러 40센트와 35달러 20센트 상당의 위조수표를 현금화한 혐의로 기소됐다. 전자는 징역 15년을, 후자는 징역 30일을 선고받았다. 같은 유형의 범죄에 대해 징역 0년이냐, 최대 25년이냐 하는 격차까지 있었다. 프랑켈은 형사사법제도에 존재하는 잡음에 경악했다. “나는 곧 피고에게 내려질 징역형이 해당 사건이나 개별 피고인보다 그 사건을 맡은 판사의 관점·선호·편견 등 개인적 판단에 더 많이 좌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판단이 있는 곳에는 잡음이 있다. 보건 분야의 잡음은 생사를 결정하기도 한다. 가장 위험한 피부암인 흑색종의 피부 병변을 분석할 때 병리학자들의 의견 일치도는 ‘중간’ 정도였다. 여덟 명의 병리학자가 완전히 합의에 이르렀거나 어느 한 사람만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62퍼센트였다. 이 사례의 연구자들은 “흑색종 진단의 임상적 실패는 치명적일 수 있는 흑색종이란 질환을 앓는 환자들의 생존율을 고려하면 통탄할 일”이라고 결론 내렸다. 정신의학계의 잡음 수준은 높게 나타난다. 다른 학파, 다른 교육과정, 다른 임상 경험에 의해 동일한 유형의 환자에 대해 일부는 ‘우울증’으로, 일부는 ‘불안증’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발견됐다. 

저자들에 의하면, ①세상은 복잡하고 불확실한 곳이기 때문에 (정확하고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어렵다. ②의견 차이의 정도는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크다. ③잡음은 줄어들 수 있다. ④잡음 축소 노력은 곧잘 반대에 부딪힌다. 

저자들은 특히 ③과 관련하여 잡음을 줄이는 ‘결정위생’을 정의하는 여섯 가지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첫째, 판단의 목표는 개인적인 의견의 표현이 아니라 정확도다. 규칙, 알고리즘, 가이드라인은 잡음을 줄이고 결정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 둘째, 통계적으로 생각하고 외부관점을 활용하자. 겸손하지 못해 자신의 판단만을 지나치게 확신한 것은 비난받을 수 있다. 셋째, 판단 문제를 작은 과제들로 분할해서 다수의 평가 항목으로 나누어 평가되도록 한다. 넷째, 이른 직관을 참자. 주어진 증거를 균형적으로 주의 깊게 고려하자. 다섯째, 여러 판단자들로부터 나온 독립적인 판단을 집계하자. 독립적인 판단들을 평균화해보자. 표본의 크기를 키우면 추정의 정확도가 개선된다. 마지막으로, 상대적 판단과 상대적 척도를 선호하자. 

오만과 독선은 잡음을 키운다. 특히 타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는 전문가, 판사, 의사, 정치 지도자 등은 결정위생의 원칙에 더 충실하고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저자들은 잡음이 덜한 세상에서는 피할 수 있는 많은 오류가 미연에 방지된다고 주장했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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