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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깨·짱꼴라’는 중국에서 보통명사…한국은 비하 표현으로 정착
‘짱깨·짱꼴라’는 중국에서 보통명사…한국은 비하 표현으로 정착
  • 유무수
  • 승인 2022.06.03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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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착한 중국 나쁜 차이나』 임대근 지음 | 파람북 | 320쪽

‘3분 차이나’ 396꼭지로 대만·홍콩 이슈 다뤄
화교, 임오년 군란 진압하던 청나라 군대가 시초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인제니움칼리지)는 2019년 3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3분 차이나>라는 YTN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중국의 역사와 정치외교, 문화, 대만과 홍콩, 최근의 뜨거운 이슈 등을 396꼭지로 다뤘다. 이 책은 프로그램 내용을 다듬은 것이다. 한반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우리나라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에 늘 개입했으며 202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수입과 수출 규모에서 모두 1위인 중국을 알고 우리의 미래를 제대로 설계하자는 취지다.

 

중국의 무협영화를 보면 환관들의 권력투쟁으로 나라가 혼란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장면을 접할 때가 있다. 이런 장면은 순전히 영화제작자의 상상이 아니다. 중국의 역사에서 형벌을 받아서 궁형에 처해진 뒤 환관이 된 경우가 많았지만 당나라 이후부터는 권력의 중심부에서 생활했던 환관들이 문관이나 무관보다 실제로 더 큰 권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외과수술이 비위생적이었기 에 수술후유증으로 살이 썩어 죽는 경우도 허다했지만 권력의 자리에 가기 위해 스스로 환관이 되기로 선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크게 어수선한 상황을 접할 때 흔히 쓰이는 “호떡집에 불났다”라는 표현은 화교(華僑, 외국에 사는 중국인)와 얽혀있다. 한국 화교의 시초는 조선말기 임오년(18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년이 넘게 월급을 받지 못한 병사들이 소요를 일으키자 조선의 조정은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했고 4천 명의 청나라 군사가 제물포로 들어왔다. 이때 청군의 식생활을 돕기 위해 민간인 40명이 따라왔고, 이들이 한국의 최초의 화교로 여겨진다. 조선말기에 들어온 화교는 일제강점기에 숫자가 늘어나 6만여 명에 이르렀고, 화교는 중화요리점과 호떡 가게를 늘려나갔다. 1927년과 1931년에 조선인들이 화교들의 가게를 대대적으로 습격하여 중국인 가게의 기물을 부수거나 불을 질렀다. 바로 여기서 아수라장이 된 상황을 묘사하는 말로 “호떡집에 불났다”는 표현이 시작됐다.  

“홍콩 간다”라는 표현은 1950∼1960년대에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1950년대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은 서양의 앞선 문화로 번영하는 도시였다. 한국에서 서양문화를 경험하려 할 때 홍콩은 미국이나 프랑스, 독일에 비해 접근성이 좋은 도시였고, 홍콩에 가면 유쾌한 오락을 즐길 수 있다는 데서 “홍콩 간다”라는 표현이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한편으로는 1960년대 중반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들이 전쟁 중에도 베트남에서 가까운 홍콩으로 휴가를 다녀온 상황과 연관된다. 그때 참전했던 한국군에게 “홍콩 간다”라는 미군들의 말은 ‘홍콩 가서 신나게 놀고 즐기고 오겠구나’하는 부러움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서 “홍콩 간다”는 말이 비롯됐다는 설이다.

“짱깨”라는 말은 ‘장꾸이’에서 시작됐다. ‘장(掌)’은 ‘잡다, 관리하다’는 뜻이고 ‘꾸이(櫃)’는 ‘상점의 카운터’를 의미한다. 조선말기 중국 화교가 차린 중국집에서 직원들은 카운터를 맡은 주인을 장꾸이라고 불렀고, 한국인들이 이를 따라하다가 ‘짱깨’가 되었다. ‘짱꼴라’는 베이징 사투리가 가미된 표현이다. 짱깨나 짱꼴라는 중국 현지에서는 보통명사로 쓰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중국인을 비하하는 뜻으로 정착됐다면 사용을 자제하자고 저자는 제안했다. 싫든 좋든 긴밀하게 얽힌 이웃 나라이니 상호이익이 되는 교류와 이해의 범위를 넓혀나가는 노력이 바람직하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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