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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학당의 130여 유령들
한국어학당의 130여 유령들
  • 윤지웅
  • 승인 2022.06.08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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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윤지웅 연세대 한국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지금 쿠바에 가 있는, 내가 참 좋아하는 형이 아바나에 있는 공자의 동상 사진을 에스엔에스에 올렸다. 소년 두엇이 한낮의 더위를 피해 근엄하게 서 있는 공자 상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중국의 공자학원처럼 체 게바라의 나라에 공자의 동상을 세울 만큼 공격적이지는 않지만 세종학당도 예전에 비해 많이 늘었다. 한국어가 세계에 전파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어떤 분은 내게,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의 시간강사들이 노조에 가입한 것을 두고 ‘왜 스스로 노동자가 되려느냐’고 개탄하셨더랬다. ‘강사 생활에 만족한다면 그렇게 살라. 하지만 박사학위를 받고 더 큰물에서 놀아야 하지 않겠느냐’던 분도 있다. 잠깐. 큰물이란 뭘까? 큰물에 가면 막 신이 나고 그런가? 그곳에서는 엄청나게 보람 있는 일을 하게 되는 걸까? 지금 이 학교에서,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다. 강사 임용 후 학회 준비에 차출되어 정장을 입고 인간 이정표가 되어 이른 아침부터 내리던 비를 담뿍 맞으며 서 있던 교정과, 기역 니은도 모르는 외국인 학생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고 학교에 보고하자 접촉자와 동선을 파악해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지시를 받던 강사실의 적막함, 사무실에 연락해도 아무 도움이 없다며 ‘선생님, 무서워요’라고 최선을 다해 한국어로 작문해 보낸 학생의 문자를 받고 죽과 약을 사 들고 찾아가 학생에게 건네던 어둠침침한 싸구려 숙소의 복도. 그리고 한국어 교육을 하는 사람들은 무식하다는 말을 듣는다며 천연덕스럽게 나를 보던 어떤 통사론 연구자의 말과, 딱 입에 풀칠할 돈푼을 쥐여 주며, 때로는 먹고 죽을 돈조차 주지 않으며, 수업 시간 외의 노동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급을 고수하면서도, ‘강사료에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강사가 당연히 할 일 아니냐’던 어떤 이의 말과, 대상포진에 걸렸을 때도 눈치가 보여 학교에 말을 못했다며 객쩍은 웃음을 짓던 후배 강사, 그리고 강사 시급 좀 올리자고 이야기하면 뻔뻔하다는 둥, 지저분하다는 둥 손사래를 치던 모습도. 큰물에 가면, 젖과 꿀이라도 흐른다는 건가?

나는 제2언어로서의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현장 경험이 쌓일수록 모르는 것이 늘기에 한국어교육을 더 연구하고자 박사과정을 지원했다. 그 결정, 지독히 후회한다. 왜냐하면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나는 분명 “있지만 없는 사람”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큰물에 있는 이들은 내가 옆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정확히 헤아려 보지 않았으나 전국 대학의 한국어교육 관련 과정을 통틀면 150여 개 이상이다. 국문학, 한국학, 국어교육학 등 그 외피도 다채롭기 그지없다. 연세대만 해도 국문과, 한국학협동과정, 언어정보학협동과정, 교육대학원 등에서 한국어 교육 전공자들을 배출하고 있다.

아! 나는 미처 몰랐다. 한국어교육학에 대한 학문적 갈급과 열정이 이토록 대단한지. 그러나 나는 국어학도 아니요, 사회학도 아니요, 문화연구도 아닌 격 떨어지는 글을 쓰겠답시고 학교에 왔다 갔다 하는 호구일 뿐. 강사로서도, 학내 신분은 교원도 직원도 아닌 ‘그냥 근로자’(‘그냥 근로자’라는 표현은 금번 임금・단체협약 결렬 후 지방노동위원회 조정 시 ‘사측’ 노무사의 표현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한 선배는, 자기는 ‘운 좋게 교수로 자리를 잡았’고 제자들에게는 ‘절대 한국어 교육일랑 하지 말라’고 조언하면서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솔직해서 차라리 좋다. 선배들에게 묻고 싶다. 제자들의 눈을 과연 똑바로 들여다볼 수 있겠는가? 한국어 강사들의 실상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으로서, 연구 대상이 되는 교육 현장과 그 주체를 외면하면서, 독립적 학문 분야로서의 존치를 바라는가? 연구자로서 당신의 위치는 어디인가? 내가 노조에 가입했다고 하자 선배들과 선생들은 말을 몹시도 아끼며 침묵했다. 그 침묵의 의미는 앎인가, 알지 못함인가? 고맙게 어깨를 토닥여 주던 이들은 ‘그러니 빨리 논문 쓰고 거기서 나오라’고 할 뿐이다.

나는 어리둥절하다. 나가서, 어디로? 뭘 연구하고 어떤 논문을 쓰란 말인가? 나는, 나와 나들은, 한국어 강사들은, 연구의 주체들은 유령들인데. 아하, 이것은 심령학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한국어 강사는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유령들이니까. 지성이 부족한 나는 몸으로 부딪고서야 다소 정리가 된다. 학교는, 한국어 교육에 대한 나의 순진한 희망과 욕망을 이용했다.

내가 몸담고 있는 교육기관은 현재 ‘노사’ 교섭이 결렬되어 쟁의행위에 돌입했다. 나는 그 교령회의 현장에 있는 130여 유령들이 내지르는 소리와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연구 주제 삼아 기록해 볼 요량이다.

윤지웅 연세대 한국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세계 언어 지형에서 주변 언어였던 한국어가 중심 언어・경제 언어로 거듭나고 있는 과정, 그리고 그것이 한국어 교재에서 구현되는 양상 등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현직 한국어 강사로서의 현실 고발, 그리고 노동자로서의 처우 개선에 더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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