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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와 룰라, 빛과 그림자는 희한하게 이어져요”
“나미와 룰라, 빛과 그림자는 희한하게 이어져요”
  • 김재호
  • 승인 2022.06.14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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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팝의 고고학』 시리즈 낸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

가수보단 창작자·제작자에 초점을 두고 통사로 집필
K팝, ‘국뽕’하지 말고 역사와 헌신에 대한 연구 필요

“나미와 그의 남편 최봉호의 이야기는 룰라의 이야기와 초끈이론처럼 이어진다.” 최근 『한국 팝의 고고학』 시리즈(1960, 1970, 1980, 1990)를 펴낸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사회융합자율학부·사진 맨 오른쪽)는 지난달 31일 을유문화사에서 만나 이같이 말했다.

 

『한국 팝의 고고학』 시리즈를 펴낸 공동 저자들. 사진 왼쪽부터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 이 책을 집필하는 데 20여년이 걸렸다. 사진=김재호

1980∼1990년대 활동했던 가수들 중에서 누가 가장 강렬했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물어보자 신 교수는 “‘서울의 교육받은 중간계급 지식인’이 아닌 사람들도 1980∼1990년대를 나름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살아오고 그 과정에서 빛과 그림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한국 현대사를 대안적 시각에서 보는 듯한 느낌이다”라고 답했다. 나미는 『한국 팝의 고고학 1980』 제2장, 룰라는 『한국 팝의 고고학 1990』 제5장에 나온다. 신 교수는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 이들과의 인터뷰가 최고였다”라고 밝혔다.

이번 『한국 팝의 고고학』 시리즈에는 한국 록의 거장 신중현, 싱어송라이터 한대수, 시나위의 신대철, 동물원의 김창기와 박기영, 이적, 자우림 등 수많은 인터뷰가 담겨 있다. 그런데 싱어송라이터 송창식의 인터뷰가 녹음 음질 때문에 실리지 못한 게 아쉽다. 이외에도 책에 담아내지 못했지만, ‘한국 팝의 고고학’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수는 누가 있을까? 신 교수는 “이 책은 ‘가수’보다는 창작자와 제작자에 초점을 둔 책이라서 인기 가수에 그리 집착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며 “그래도 서태지, 김건모, 신승훈 1990년대 슈퍼스타의 인터뷰가 운때가 맞지 않아 성사되지 못한 것은 아쉽다. 이들은 가수이자 창작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가수 이외에는 서울 스튜디오(이촌동 스튜디오) 최세영 사장을 포함하여 한국에서 사운드 리코딩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분들의 이야기를 담지 못한 것이 아쉽다”라고 전했다.

『한국 팝의 고고학 1960』, 『한국 팝의 고고학 1970』은 2005년에 나온 책을 개정·증보판으로 새롭게 펴냈다.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추가 작업했다. 저작권, 사료 연구, 집필 시간 등에서 작업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가장 어려운 점에 대해 신 교수는 “이 작업에만 집중하기는 어려웠다는 점이 어려웠다”라며 “2012년에 시작한 작업이 2022년에 결실을 본 것은 이런저런 일들로 바쁘다 보니 정작 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었다”라고 답했다. 아울러,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10년 동안 이 작업만 한 것은 아니지만 어깨를 누르는 무거운 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료를 샅샅이 뒤지고, 장소를 치밀하게 답사하고, 인터뷰를 해서 탈탈 터는 조사 작업이 2014년에 일단락되었지만 『한국 팝의 고고학 1980』의 초고를 완성한 것은 2017년, 『한국 팝의 고고학 1990』의 초고를 완성한 것은 2020년이었다. 그 뒤 편집작업도 순탄하지 않았다. 저작권과 관련된 문제도 시간과 수고가 많이 드는 지리한 일이었다.”

 

한국 팝의 효시에 대한 영감

『한국 팝의 고고학』 각 시대별로 인상적인 인터뷰나 에피소드를 하나씩 소개해달라고 했다. 1960년대에 대해 신 교수는 1960년대를 여는 손석우(1920∼2019)와의 인터뷰를 손꼽게 된다”라며 “이 인터뷰는 구술채록사업으로 2003년에 이루어졌는데 『한국 팝의 고고학』의 초판(2005)에는 인터뷰를 수록하지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개정판에 인터뷰가 수록된 것은 저로서는 감동적”이라며 “식민지 시대와 해방 시대를 모두 경험한 분의 증언에서 ‘한국 팝’의 효시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1970년대 작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 “『한국 팝의 고고학 1970』에는 중요한 인물들이 워낙 많지만 아무래도 조동진(1947∼2017)과 했던 두 번의 인터뷰가 인상에 남는다. 2017년 9월, 세상을 뜨기 며칠 전 자신의 인생을 회고한 인터뷰는 아직도 잔잔한 여운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일부를 『한국 팝의 고고학 1970』의 인터뷰 말미에 넣었다. 이 내용은 조동진과 이장희의 한 만남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장희와의 인터뷰도 『한국 팝의 고고학 1960』의 마지막에 넣었다.”

1980년대를 집필하는 데에는 들국화의 최성원과 송골매의 이응수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신 교수는 “내가 좋아하는 창작자인 두 사람은 마치 친동생처럼 저를 대해 주었고 글을 쓰다가 막힐 때마다 전화를 걸면 알짜 정보를 전해 주었다”라고 밝혔다.

 

문화연구, 순응과 저항 사이 무수한 교섭

『한국 팝의 고고학』 시리즈는 문화연구에서 특별한 위상을 차지할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 이런 문화연구 외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점들이 있는지 물었다. 신 교수는 “이 책이 그저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읽고 좋아하는 책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라며 “‘한국 팝’, 일반적으로 말하면 ‘대중음악’이라는 시점을 통해 한국의 현대문화사를 조망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그는 “대부분의 한국 현대문화사가 ‘정치권력과 그에 대한 순응 혹은 저항’이라는 전제를 깔고 서술되지만, 저는 순응과 저항 사이에서 무수한 교섭(negotiations)이 발생했다고 보는 편이다”라고 밝혔다.

현재 K팝의 인기와 의미, 문제점에 대해선 어떻게 바라볼까. 신 교수는 이 문제는 제대로 평가하기 힘든 문제이지만, “K팝에 대해 지나치게 찬사 일색인 사회 분위기가 불편한 것도 사실”이라며 “음악과 무관하게 이를 대하는 미디어의 태도에서 ‘국뽕’ 분위기가 너무 강하다고 느낀다”라고 답했다. 덧붙여, 그는 “K팝이 실제로 누가 어떤 노력을 했고,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떻게 글로벌화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상세한 연구는 의외로 없는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한국 팝의 고고학』은 역사학과 문화,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등 여러 분야가 함께 한 결과다. 이 시리즈에서 더 보충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신 교수는 “이번에 발간한 네 권의 『한국 팝의 고고학』은 ‘통사(通史)’이니 앞으로 대중음악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각론’을 파고들면 좋겠다”라며 “사운드 리코딩도 중요한 주제고, 음악산업의 진화, 창작자들의 내부 세계, 음악이 실연되는 공간과 장소에 대한 기록 등이 그런 주제”라고 답했다. 그는 “이번 책은 그런 이야기를 부분적으로 넣었지만 통사라는 형태를 취하다 보니 적절한 선에서 끊어야 했다”라면서 “내가 모은 자료들은 공유할 수 있으니 젊은 연구자들이 그걸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신 교수는 “추후 일본, 대만과 홍콩, 중국 등 동아시아 내에서 대중음악과 음악산업의 연결고리를 보충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책과 관련해서 대학·교수사회에 대해 신 교수는 “각 학교 교양과정에 ‘대중음악의 이해’라는 과목이 개설되기를 간곡히 바란다”라고 전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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