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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샘플링의 오류
내 머릿속 샘플링의 오류
  • 손화철
  • 승인 2022.06.13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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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손화철 논설위원 / 한동대 교양학부 교수·기술철학

 

손화철 논설위원

적은 수의 사람을 조사해서 사회 전체의 의견 분포를 가늠하는 여론조사에서 샘플링(sampling)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고 기술이다. 일단 연령별, 지역별, 성별 등으로 대상군을 세밀하게 나누어 무작위 조사를 하되, 다시 인구 대비에 따른 수만큼만 통계에 반영한다. 여론조사기관은 조사의 타당성을 담보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고 이중삼중으로 감시를 받으며,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설문 방식과 응답률, 신뢰도 등을 일일이 제시해야 한다. 

사실 비슷한 과정이 우리 머릿속에서도 늘 돌아간다. 이런저런 고정관념이야 차치하더라도, 일반적인 대상이나 현상에 대해서는 개인적 경험 중에서 선택된 인상이 생각의 재료가 된다. 이들은 당연히 현실의 일부만을 반영한다. 내 머릿속에 있는 ‘학생’, ‘교수’, ‘지방대’, ‘세상’이 과연 얼마나 현실적일까.

어떤 학생에게 교수는 지식과 지혜를 겸비한 (혹은 겸비해야 하는) 인생의 모범이고 다른 학생에게는 별것 아닌 사익에 눈이 먼 치졸하고 게으른 잡상인이다. 누군가에게 세상은 약육강식과 유전무죄의 지옥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열심히 일하면 기대 이상의 도움이 절로 따라오는 따뜻한 천국일 수 있다. 남성에게는 별로 불편하지 않은 공중화장실이 여성에게는 긴장해야 할 장소다. 이렇게 상반된 현실 인식이 생겨나는 것은 각자의 경험이 다르고 샘플링의 방식이 달라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오류다. 어떤 것이 진짜 현실인지 정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 중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누군가의 편향된 샘플링이 판단과 결정의 근거가 될 때이다. 교수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생각하며 지금의 학생들에 좌절한다. 강남에 사는 공무원은 자기 자식이 경험하는 학교와 학원 생활을 바탕으로 전국 학교의 필요를 가늠한다. 늘 병자와 범죄자를 만나던 의사와 검사가 각자의 샘플링을 통해 얻은 세계관을 가지고 우리 사회가 나갈 방향을 말할 때 망설임이란 찾아볼 수 없다.

여론조사에 들이대는 빡빡한 기준은 전문성이나 지위를 앞세운 기득권자의 머릿속 샘플링 앞에서 무용지물이다. 그리하여 다른 누군가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결정의 희생자가 된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 누구도 딱히 남을 희생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그런 결정을 한 건 아니다.

어떤 개인도 제한된 경험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있다. 하나는 나의 경험이 제한적이어서 내 생각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지 못함을 인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의 폭과 종류를 가진 이들을 중요한 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정부나 국회, 기업과 대학에 비슷한 나이, 성별, 거주지, 출신학교와 지역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몰려 그들의 샘플링이 전체를 대표한다는 착각에 빠지면 곤란하다. 그들이 선의를 가지고 최선을 다 해도 나머지가 고통 받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선다형 문제 몇 개를 더 맞은 이후, 계속 모여 있었다는 이유로 스스로 ‘능력 있는 사람’을 자처하는 것은 내 머릿속 샘플링을 일반화하여 생긴 오류다. 이런 아둔함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 능력주의가 거짓임을 보여준다. 의식적인 다양성 추구를 통해 이 아둔함을 부수지 못하면 현실의 파악도, 공정의 실현도 불가능해진다.

손화철 논설위원
한동대 교양학부 교수·기술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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