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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라이츠’는 어떻게 ‘천부인권’이 됐을까
‘휴먼 라이츠’는 어떻게 ‘천부인권’이 됐을까
  • 송경호
  • 승인 2022.06.1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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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⑭ 동아시아 개념사의 과제들

<교수신문>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연재를 시작하며: 새 세대 한국 인문사회 연구자를 만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정치적 개념은 역사적 구성물이다.
개념사는 과거에서 현대에 이르는 개념의 역동성을 추적한다.
동아시아 개념사는 다양한 도전적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동아시아 인권 개념사도 전체 퍼즐의 한 조각으로 자리매김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 개념사 연구가 완성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정치 개념은 역사적 구성물이다. 과거의 텍스트에서 ‘자유’, ‘민주주의’, ‘인권’ 같은 표현이 등장하더라도, 당대에는 지금과는 다른 의미로 이해되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종종 망각되는 사실이다. 망각은 과도한 해석으로 이어지기 쉽다. 옛 문헌에서 현대의 흔적을 발견하면 과거에도 오늘날과 같은 의미에서 해당 개념이 이해되었으며 통용되었을 것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개념의 구성은 역사적 과정이다. ‘자유’, ‘민주주의’, ‘인권’의 의미는 시공간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해왔다. 이 역시 너무나 당연하지만 종종 간과되는 사실이다. 개념의 역사성에 주목하더라도 과정으로서의 연속성이 무시되곤 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어가 과거의 특정한 시점에 ‘고안’되었으며 그 이후로는 의미가 고정적이었다고 오해하게 되는 것이다.

동아시아 개념사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여기서는 인권의 개념을 사례로 동아시아 개념사 연구가 직면한 과제를 일부 정리해보고자 한다. 

원 개념부터 재검토 필요

동아시아에서 인권의 개념사는 원 개념인 ‘휴먼 라이츠(human rights)’가 번역어 ‘인권(人權)’으로 성립하게 되는 과정에 대한 역사적 탐구로 이해된다. 그러나 번역어 ‘인권’이 19세기에 성립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원 개념부터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19세기 인권 개념은 지금의 그것과는 달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용어상의 차이로도 확인된다. 19세기에 보다 빈번하게 사용되었던 용어는 ‘휴먼 라이츠’가 아니라 ‘라이츠 오브 맨(rights of man)’이었다. 

피터 데 볼라(Peter De Bolla)의 연구에 따르면, ‘휴먼 라이츠’는 1760년에서 1780년 사이에 고작 4번, 1780년에서 1800년 사이에는 102번 언급됐다. 이에 반해 ‘라이츠 오브 맨’은 같은 기간 각각 45번과 3천532번 등장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걸쳐 영미권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용어는 ‘휴먼 라이츠’가 아니라 ‘라이츠 오브 맨’이었다는 것이다.

흔히 인권의 원 개념을 미국 독립선언이나 프랑스 인권 선언 등에서 찾는다. 그러나 실제 인권 개념이 동아시아에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이 19세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번역의 대상이 되었던 당대의 인권 개념을 추적할 필요가 있다. 당시의 인권은 현재와도, 18세기의 선언들과도 달랐기 때문이다.

‘권리’와 ‘권’의 문제

‘휴먼’과 ‘인(人)’, ‘라이츠’와 ‘권(權)’이 대응한다는 점에서 ‘인권’은 ‘휴먼 라이츠’의 직역이자 1:1 대응어로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권’이 권리를 지칭하게 된 맥락이 깔려 있다. 19세기 동아시아에 등장했던 권리 개념에 관련된 다양한 번역어들에 대한 추적과 이와 함께 등장한 여러 ‘권리들’에 대한 검토가 요구되는 이유다.

또한 이는 ‘권’의 의미변화라는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19세기 이전에 ‘권’의 의미변화 과정에 대한 추적뿐만 아니라, 권리·의무 개념과 연관되어 사용되었던 여러 표현에 대한 검토, 나아가 당시 ‘권’이 담아낼 수 있었던 ‘권력’, ‘권위’, ‘권세’ 등과 ‘권리’의 관계에 대한 탐구가 포함된다. 이 과정에서 이러한 표현들에 내재된 유학의 맥락과 한문맥이 고려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당대 ‘권’이라는 표현이 가졌던 뉘앙스에 대한 입체적인 조망은 인권 개념에 대한 다양한 번역어의 각축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조건이다. ‘권’이 힘을 의미하기 때문에 적절한 번역어가 아니라든가 ‘권리’가 ‘권’ 과 ‘이’의 결합이기 때문에 ‘라이트(right)’의 ‘옳음’이라는 측면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은 특정한 시공간에서만 유효한 지적이다. 원어는 라이트뿐만 아니라 ‘유스(jus)’ 개념에 근간한 유럽어를 포함해 재설정될 필요가 있다. 또한 ‘권’이나 ‘권리’에 대한 이해 역시 시공간에 따라 변화한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1883년 출판된 우에키 에모리(植木枝盛)의 『천부인권변』(왼쪽)과 바바 다쓰이(馬場辰猪)의 『천부인권론』(오른쪽). 가토 히로유키(加藤弘之)가 『인권신설』(1882)에서 사회진화론에 입각해 천부인권을 부정하자 이에 대해 반박한 글이다. ‘천부인권’이라는 표현이 책의 제목에 사용된 대표적 사례이자 인권의 ‘천부성’을 놓고 벌어진 사상적 각투를 보여주는 사례다. 사진=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콜렉션

‘민권’으로도 표현된 인권 개념

앞서 간략히 언급했듯, ‘인권’과 경쟁했던 번역어들에 대한 추적과 그것이 표상하고자 했던 개념적 차이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그리고 인권 개념이 인간이나 권리뿐만 아니라 자연권, 실정권 등 다양한 구성 개념 내지는 하위 개념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는 점 때문에 탐구의 범위는 더 확장될 수밖에 없다.

일례로 고지마 쇼지(島彰二)는 『민권문답(民權問答)』(1877)에서 “민권이라는 것은 일찍이 서양만리 바깥에서 출산(出産)”되어 우리나라에 온 “선래품(船來品)으로서 본래 우리 제국의 풍토에 적합한 것이 아니”라지만 “인민은 본래부터 자연의 인민이고, 따라서 그 권리와 같은 것도 역시 국가의 힘을 빌린 후에서야 있는 것이 아니며, 권리는 그 고유한 것의 권리로서 각각 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라며 인권 개념을 수용하고 있었다. 

여기서 고지마가 인권 개념을 ‘민권’으로 표현한다는 점은 인권 개념에 대한 번역어의 추적 과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민권’은 이후 일본에서 자유민권운동의 맥락에서 참정권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이후 동아시아에서 다양한 의미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민권’을 비롯한 유사 표현들의 등장과 의미변화 역시 인권의 개념사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시공간에 따라 인권 이해가 다를 수 있다

당대의 다른 여러 경쟁적 번역어들을 물리치고 ‘인권’이 동아시아에서 일반적 번역어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는 두터운 사상적 각투의 맥락이 깔려있다. 이는 ‘인권’이라는 표현이 단순히 외래 개념의 1:1 대응어가 아니라, 19세기에 동아시아에 해당 개념이 수용되면서 배경문화와 화학작용을 일으킨 결과물로 간주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당시에 등장해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천부인권’이라는 표현은 그 대표적 사례다. ‘천부인권’은 19세기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천’이 내재하고 있는 유학적 뉘앙스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역시 ‘천’의 의미를 단순화하는 것일 수 있다. ‘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당대 ‘천’ 혹은 ‘천부’가 가지는 의미에 대한 다각적 분석이 필요하다.

시공간에 따라 인권에 대한 이해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은 보다 복잡한 문제를 내포한다. 그 중 하나는 특정 사상가의 인권론 내지는 인권관을 당대의 일반적 인권 이해로 환원할 수 없다는 점이다. 번역어의 성립 과정과 마찬가지로 인권에 대한 특정한 이해가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과정에 대한 탐구가 필요한 이유다.

동아시아 인권 개념사, 새로운 방법론 요구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라 동아시아에서 인권의 개념사는 새로운 방법론을 요구한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기보다 여러 방법론의 결합에 가깝다. 원 개념과 번역어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서지학적 탐구가 요구되며,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사상사적 연구가 필요하다. 특정한 번역어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사전류뿐만 아니라 다양한 대중매체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개념에 대한 이해가 변화해나가는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접근 가능한 모든 자료를 활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회사, 경제사, 문화사도 고려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국내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단선적이고 일회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보편적 방법론의 구축을 더욱 어렵게 한다. 개념의 소개, 번역, 통용, 이해라는 수용과 변용의 화학작용은 연속적으로 발생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말안장시대’ 혹은 (동아시아의 경우)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반만을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데이터베이스가 늘어나면서 과거를 보다 입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자원이 확충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데이터베이스가 산개해있으며, 구축방식과 원칙에 통일성이 없기 때문에 활용에는 한계가 있다. 정제되지 않은 상태로 데이터의 양만 늘어나면서 전 처리 과정에 대한 부담 역시 커졌다. 자연어처리나 텍스트마이닝과 같은 방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구축된 데이터베이스를 전체적으로 재구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간략히 살펴본 바와 같이, 동아시아에서 인권의 개념사는 그 자체로 도전적 과제다. 그러나 관계된 개념들에 대한 연구가 함께 이루어져야 전체적인 의미망을 그려낼 수 있다. 동아시아 인권 개념사가 전체 퍼즐의 한 조각으로 자리매김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 개념사 연구가 완성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송경호 연세대 정치학과 BK21 박사후연구원
1982년생. 연세대에서 「19세기 동아시아의 인권 수용과 가토 히로유키(加藤弘之) 천부인권론의 역설」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시아 인권 개념사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하고 있으며, 데이터 크롤링과 자연어 분석, 텍스트마이닝 등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의 정치 개념들에도 관심을 갖고 시대를 넘나들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발표한 주요 논문으로는 「시큐리티(security)는 어떻게 ‘안보’가 되었을까?」(2020), 「Matching and Mismatching of Green Jobs」(2021), 「근대적 기본개념으로서 ‘민주주의(民主主義)’의 개념사」(2021), 「코로나19와 한국 민족주의의 분화」(2021), 「마리아 루스호 사건을 통해 본 메이지 일본에서의 인권 개념 수용」(2022)이 있다. 저역서로는 『다문화주의 시민권』(2010, 공역), 『(완역) 서양사정』(2021, 공역), 『서양을 번역하다』(2021, 공역)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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