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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비전일 사이 학문공동체
전일·비전일 사이 학문공동체
  • 정혜인
  • 승인 2022.06.20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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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정혜인 전남대 사회학과 박사 수료
정혜인 전남대 사회학과 박사 수료

전일제 대학원생보다 비전일제 대학원생이 더 많은 타 학과 수업을 듣다가 당황할 때가 이따금 있다. 학위가 직장에서의 승진에 필요하기에 입학했다고 동기를 밝히는 타 학과 비전일제 대학원생들을 만날 때 그렇고 어디 공기업의 부장이라거나 어디 변호사 사무국장이라며 직함을 들먹이는 대학원생을 만날 때도 당황스럽다. 이런 경우도 있다. 타 학과 수업 중 대학원생의 발제문 본문에 각주 표시가 되어 있는데도 각주 내용이 없어서 네이버 지식백과와 위키백과를 뒤져본 적이 있었다. 알고 봤더니 위키백과를 베끼면서 위키백과의 각주를 따로 한글 편집하지 않아 발제문 본문에 각주 표시만 있고 각주에 관한 내용이 없었던 것이었다. 나 역시 발제를 부족하게 해가서 수업 시간 내내 고개만 푹 숙이며 부끄러워했던 적이 있다. 떠올리기도 싫은 창피한 기억이지만 그래도 위키백과를 베껴가느니 차라리 부족한 발제문 들고 가서 눈물, 콧물 흘리며 혹독한 질책을 듣는 게 백번 더 나을 것 같다.

다행히 필자가 속한 학과에는 학문에 대한 열정이 많은 비전일제 대학원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학위라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입학한 비전일제 대학원생은 자연스럽게 대학원에서 이탈하는 양상을 띠기도 한다. 비전일제 대학원생에 대한 통상적인 선입견과 다르게 그들이 현장에서 좌충우돌하며 얻어낸 통찰력은 전일제 대학원생보다 뛰어날 때가 많다. 오히려 현장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생생한 지역 현장을 느끼기도 하고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을 비판하는 비전일제 대학원생을 통해 통찰력을 배우기도 한다.

다만 학문적 기초가 조금 부족한 한계는 있다. 비전일제 대학원생의 통찰력을 학문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면 실증적이고 또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논문이 생산될 수 있을 것이다. 학문적 기초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할 텐데 이는 대학원 수업만으로 충족되기 어렵다. 동료들과 세미나를 하면서 메꿔가야 하는 부분이나 이를 보충해줄 수 있는 전일제 대학원생이 부족한 것 또한 현실이다.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전일제 석사과정생에게 이러한 학문적 공동체를 일궈나가자고 요구할 수는 없다. 또한, 프로젝트 노동을 하면서 학위논문을 준비하는 전일제 대학원생에게 요구하기도 어렵다. 이곳에서 애쓰는 선생님들과 선배들에게 가르침을 받아온 나에게, 혼자서라도 학문적 연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할 사회적 의무가 있지 않은지 고민해 보기도 했으나 번번이 시간과 역량의 한계에 부딪치는 것을 절감할 뿐이었다. 이에 따른 죄책감은 대학원에서 이탈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생기기도 한다.

어떻게든 세미나를 이끌어 보려 하기도 했지만 세미나 중 토의는커녕 내용 설명하다 숨이 가빠오는 경우가 더러 있다. 비전일제건 전일제 대학원생이건 모두 자신의 학위논문에 대해 토의하고 싶어 하지만 다들 그럴 여력이 없어 보인다. 내 주장을 전거(典據) 삼아 자기화시키지도 않은 채 그대로 읊는 동료를 보며 입을 다물어 버리기도 한다.

점차 여타 이유로 혼자서 공부해나가는 게 너무나 익숙해져 간다. 책을 이해할 때까지 수차례 읽어 보기도 하고 해제본이나 관련 논문을 보충적으로 읽고서 이해해보는 시도도 한다. 또한, 이에 대한 논평문을 쓰는 연습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이론적 관점의 논리 구성을 익혀보기 위해 내 글에 대한 반박과 비평을 직접 해보기도 했다. 이렇듯 혼자서 공부해나가는 데 너무나도 익숙해져 간다. 개별적인 학업에 익숙해져서 누군가와 학문적 연대를 할 상호작용 능력이 사라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다른 대학원생들과 마찬가지로 신체가 이른 나이에 무너지는 걸 겪기도 한다.

그럼에도 현재 조건을 탓하기보다 다른 이들과 학문적 연대를 꾀할 방안을 고심하고 싶다. 누군가는 지방대학원의 자격증화, 혹은 평생교육원처럼 변모하게 되는 것을 두고 제 살 깍아먹기 식의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필자는 전일제 대학원생과 비전일제 대학원생이 상호보완하면서 이곳만의 특수성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실용적 방안에 더 초점을 두고 싶다. 그리고 그러한 논의의 장이 펼쳐지기를 고대한다. 

정혜인 전남대 사회학과 박사 수료
전남대에서 2015년, 「청년 타투 하위문화에 대한 연구」로 석사를 졸업하고 2017년 동대학 사회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해 문화사회학을 전공했다. 현재는 청년들의 변화된 행동양식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사회구조변동에 따른 개별화된 주체의 상호작용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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