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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사회와 반도체
우울사회와 반도체
  • 박혜영
  • 승인 2022.06.20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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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박혜영 논설위원 / 인하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박혜영 인하대 교수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반도체 산업분야의 인재 양성이 시급하다며, 교육의 첫째 의무는 산업인재 공급이라고 단언했다. 나아가 교육부에게 스스로를 경제부처로 생각해달라는 주문도 뒤따랐다. ‘교육부’의 과거 명칭이 ‘교육인적자원부’이었다가 ‘교육과학기술부’이었음을 반추해보면 다소 복고적이긴 해도 무리한 주문은 아니다. 이미 2000년대부터 우리교육의 목표는 과학 분야의 인적자원 양성이었다.

물론 인적자원은 인간과는 다른 말이다. 대통령은 첨단산업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휴먼 캐피탈’이라는 용어로 지칭했다. 인적자원이나 디지털 인재보다는 자본을 의미하는 ‘캐피탈’이 노골적인 만큼 이해하기에는 더 깔끔하다. 물론 인간자본은 인적자원과는 다른 말이다.

캐피탈은 원래는 가축의 머릿수를 가리키던 말이다. 혹자는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산업인력 양성을 통한 국가발전이라는 교육 목표는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지금은 ‘능력중심 사회구현’으로 교육목표가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둘 다 같은 말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후자가 더 위험한 위장술일 수도 있다. 

인적자원에서 휴먼 캐피탈로의 진화는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유용한가에서 얼마의 이윤을 창출하는가로 넘어갔음을 잘 보여준다. 이제 나의 가치는 내가 얼마나 이윤을 만들어내어 자본축적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자기 개발형 인간관과 초긍정 심리학에 힘입어 이제는 저마다 자기 몸과 마음의 CEO가 되어 자기를 관리하고 평가하고 포상한다. 사람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이런 사회는 경쟁체제를 통해 작동한다.

메리토크라시는 이 사회의 또 다른 이름이다. 개인의 두뇌와 능력에 따라 사회적 재화가 재분배되는 것이 공정하다지만 처음부터 평등한 출발선은 없었다는 점에서 능력주의는 사실상 허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신기루를 쫒으며 스스로 채찍질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선물도 주고, 칭찬도 해주며 자기를 상대하며 살아간다. 저마다 자기에게 모든 것을 투자하여 자신을 자본으로 만드는데 온 힘을 다 쏟고 있다.

그 결과 유례없는 기록들이 생겨났다. OECD 최고의 자살률, 최저의 출산율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우울, 고독, 분노, 혐오, 불안과 같은 정서적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영국은 이미 2018년에 ‘고독부’(Ministry of Loneliness)를 내각에 만들고 고독퇴치 예산을 배정했다. 영국인이 4명 중 한 명꼴로 우울증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제약회사로서는 새로운 블루오션이 열린 셈이다. 우울증이 뇌 호르몬의 문제로 축소되면서 약물치료제는 쏟아지고 더불어 약물중독자도 늘어났다.

고독사로 악명 높은 일본도 2021년에 고립·고독 대책부를 만들었다. 우리도 우울증·우울감 유병률이 36.8%나 된다고 한다. 이 통계는 우울증이 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임을 잘 보여준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향후 더 많은 청년들이 연애와 결혼, 출산을 거부하며 자본의 방에 고립되지 않으려면, 과시욕, 소유욕, 인정욕, 물욕의 경쟁에서 패한 많은 루저들이 사회의 또 다른 약자를 향해 느닷없이 분노를 터트리지 않으려면, 부모찬스, 입시스펙, 학벌과 인맥에 치여 낙오한 청소년들이 절망감에 의지하여 생을 마감하지 않으려면 지금 우리사회에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반도체 인재가 아니라 ‘고독부’임을 자각해야한다.

박혜영 논설위원
인하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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