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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착각(6)
교수의 착각(6)
  • 박구용
  • 승인 2022.06.21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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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 전남대 철학과·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박구용 전남대 교수

교수의 착각, 다섯 회를 썼다. 내부자의 시선으로 관찰 묘사한 교수들의 그림에 나를 비춰보는 시간이었다. 문뜩 외부자의 시선이 궁금해서 페이스북에 물어보았다. 교수의 착각을 칼럼으로 쓰고 있는데요, 혹시 ‘이런 착각도 있어요’라고 말해주실 분 있나요? 

유쾌하지만 뜨끔한 생각부터 들어보자. “학교가 마치 자신들만 있는 줄 아는 착각”, “뭘 좀 안다는 착각”, “협사인 주제에 박사라는 착각”, “학생들이 내 말을 다 이해하고 감동하고 있다는 착각”, “자기 이론이 제일이라는 착각!", "대중과 일정 거리를 둬야 권위 있다는 착각!”, “존경받으리라는 착각” 등등.

페친들이 말하는 교수들의 착각은 생각보다 가벼운 수준이다. 저 정도 착각은 있어야 감옥같이 비좁은 연구실에서 소중한 삶과 자유를 소비할 수 있지 않을까! 자기 일에 확신이 커서 생기는 착각은 때로 귀엽다. 이 정도 착각에 빠진 교수에겐 비난보다 안내가 필요하다. “강의 중에는 학생보다 열심히 공부하지 마세요!”

어떤 페친의 지적은 심각했다. “나는 저 연구자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착각, 내가 저 교수보다는 더 자격이 있을 거라는 착각”이다. 물론 어디에나 이런 착각은 있다. 문제는 교수들의 경우 다른 연구자들을 수시로 평가하는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교수는 학위논문 심사, 학술지논문 심사, 연구지원 심사, 교수 채용 및 승진 심사에 수시로 참여한다. 이 심사에서 교수는 황제에 준하는 권위를 가진다. 판단의 기준 자체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대학과 학회에서 연구능력 심사의 핵심 지표는 학문성이다. 평가는 일반적으로 양적 평가와 질적 평가로 나뉜다. 오직 학술지논문 심사만이 심사자의 전문성에 의존한 질적 평가로만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심사의 결과가 학위논문과 연구지원 심사, 그리고 교수 채용 및 승진 심사에서는 양적 평가의 대상이 된다. 양적 평가 역시 질적 평가의 반영인 셈이다. 특히 학술지논문의 게재 편수는 대부분의 심사에서 가장 배점이 높다. 신뢰할 만한 가치가 크다는 무언의 합의가 있어서다.      

교수들은 다른 교수의 평가를 신뢰할까? 자신만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신뢰해야 한다. 특히 학술지논문의 평가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 학문공동체는 무너진다. 평가의 객관적 기준이 없다고 할지라도 학술지논문 심사의 경우 관련 분야에 가장 인접한 전문가들의 중첩적 합의가 반영된다. 최소 3분의 2가 학문성을 인정한 논문만이 심사를 통과한다. 

학위논문 심사, 연구지원 심사, 교수 채용 및 승진 심사에는 심사 대상자와 전공 관련성이 다소 먼 교수들이 다수 참여한다. 모든 학문 영역에서 전문화와 파편화가 가속화되면서 같은 학과 전공 내부에서조차 다른 연구 분야를 평가하기 어렵다. 동양철학 서양철학, 고대철학과 현대철학은 역사학과 언어학만큼 서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니 대부분의 심사는 학술지논문 심사에서만큼 전문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학술지논문이 모든 심사의 기초인 까닭이다. 

교수 채용의 경우 교수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어느 편이든 사심이 개입할 여지가 높다. 이럴 때일수록 관련 전문성이 없는 개인 교수의 주관적 의견보다 학술지논문의 심사 결과가 기초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평생 지는 것을 배우지 못한 교수들은 온갖 논리를 내세워 동료 연구자들을 끌어내리는데 사명을 바친다. 이런 교수들에게 니체가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말한다. “어느 누구든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제 발로 정신병원으로 가기 마련이다.”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전남대 철학과·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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