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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민족에서 벗어나 ‘북한문학’ 실체를 보다
단일 민족에서 벗어나 ‘북한문학’ 실체를 보다
  • 김성수
  • 승인 2022.06.21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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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북한문학비평사』 김성수 지음 | 역락 | 556쪽

반공 때문에 가려진 수령론 중심의 주체문예론 체계
북한 문예지와 작품·비평담론이 보이는 창조적 다양성

이 책은 ‘북한’ 문학비평사이다. 코리아 통합 문학사 서술을 위한 북한 문학 비평사(1945~2018)를 체계화하였다. '(북)조선'이 아닌 북한을 명기한 이유는 남한 학자의 자의식 때문이다. 남북 최초로 정리한 북한문학비평사의 흐름을, 크게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비평 논쟁사(1945~67)와 주체사실주의 비평의 유일체계화(1967~2020)로 정리하였다. 1990년 '창비' '실천문학'에 북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논쟁을 소개한 이후 2022년 초 '김정일 문예론체계 연구'까지 일관된 틀로 정리하는 데 23년 걸렸다. 자료 모으는 데 20년, 데이터베이스 만드는 데 5년, 쓰는 데 2년 걸린 『미디어로 다시 보는 북한문학: 『조선문학』의 문학·문화사』(2020)의 자매편이기도 하다.

 

저자는 서른 해 넘게 북한문학이라는 한 우물만 팠다. 공부 원칙으로 ‘민족문학 이념, 리얼리즘 미학, 실사구시 방법’을 표방하였다. 이번 비평사 서술을 계기로 민족문학, 리얼리즘 원칙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으려 한다. 비평사 또한 ‘사(史)’를 일사분란하게 위계화된 권력담론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해체론, 문화제국주의로 비판 받더라도 '우리 민족끼리' 통일하자는 단일 민족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다양한 실상을 ‘있었던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원칙 때문이다. 한때 통일문학론의 미학적 준거였던 리얼리즘, 현실주의 일변도 대신 문화적 다원주의, 창조적 다양성을 포용하려 시도하였다. 오랫동안 남북 문학을 균형감 있게 읽고 공부했다고 해서 ‘민족/통일/통합’을 서둘렀던 조급증과 욕망을 반성한다.

이 책에선 북한 주체사관으로 사라진 1950~60년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비평 논쟁사를 복원하는 한편, 우리의 반공·반북·반김 정서 때문에 실체가 가려진 수령론 중심의 '주체문예론 체계’와 주체문학의 비평·이론사도 함께 서술하였다. 평양에서 덮어버린 '고상한 사실주의론, 부르주아미학사상 비판론,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발생론, 도식주의와 수정주의 비판론,' 서울이 외면한 '항일혁명문학예술 전통론'과 '문학예술혁명,' 주체문예론의 '유일체계화과정'도 비평사에 담았다.

 

서울·평양의 시각을 균형 있게 담다

과문한 탓인지 김정일의 문예이론서와 실무지도서를 포함한 주체문예론'체계' 전모를 총체적으로 정리한 한국 학자의 기존 연구는 보지 못했다. 북한을 제외한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도 김정일 문예론과 주체문예론 총서류 전체를 아카이빙한 곳이 없기에, 학문 연구의 기본인 실증적 서지작업부터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평양의 학자들은 우물 안에서 자기 이론이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만병통치 약수라고 자화자찬을 반복하고, 서울 학자들은 우물 속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두레박의 물만 몇 모금 마시고는 이론이 좋네 나쁘네 논단한 셈이다. 우물물과 다른 식수들을 비교 분석하여 물맛을 객관적 과학적으로 평가하는 학술적 접근이 절실하다.

북한 문예당국의 공식 입장은 개인숭배로 점철된 ‘주체문예론’이 유일화되어 있다. 그런데 공식 문학사와 전집, 교과서 등 ‘정전’과는 달리 당대 문예지와 작품, 비평담론은 창조적 다양성을 보인다. 이에 문예지 자료를 ‘실사구시로 재구성’하여 정전에서 탈락한 작가, 비평가 및 그들의 비평 담론을 복원·복권하고자 하였다. 북한 비평을 오늘날의 정전화 이전에 생성된 당대 문예지를 통해서 미디어 독법으로 재구조화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북한문학을 대표하는 문예 월간지 『조선문학』(통권 866호)와 주간지 『문학신문』(통권 2480호)에 대한 실증적 작업과 거기 실린 비평 담론을 공시적 통시적 분석틀로 계보화하였다. 북한 특유의 수령론과 주체사상에 입각한 주체문학의 일방적 도정이라는 평양의 공식 입장인 ‘조선문학사; 정전을 해체하고 남북 통틀어 비평사를 처음 쓴 셈이다.

 

북한 비평의 창조적 다양성 실사구사로 복원

이는 코리아 남북을 아우르는 통합적 시각으로 북한문학을 공부한 일관된 원칙 때문이다. 주체문학사에서 실종되다시피 한 1950~60년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문학비평사의 주요 논쟁을 복원하여 그 쟁점과 논리를 정리하였다. 또한 비평사 논의 대상을 단순한 개념과 담론 논쟁으로만 보지 않고 해방 직후부터 2020년까지의 문예정책사, 문화사, 매체사적 지평에서 다원화시켜 보았다. 그러다 보니 북한의 공식 입장인 주체문예 유일체계와 때로는 충돌하였다. 대신 정전 이전의 (사회주의)리얼리즘 비평사, 나아가 한반도 이북 문학의 실체를 복원하였다. 가령 북에서 숙청된 임화, 김남천, 안함광, 엄호석 등 非주체문예론의 복원과 이태준, 김기림, 이용악, 백석 등 非사회주의 문학과 비평, 나아가 북에서 등단했다 사라진 서만일, 김창석, 신동철 등의 문학과 비평론도 복원할 수 있었다. 이들을 모아 가칭 코리아 통합 문학사 또는 ‘한겨레 디아스포라 문화사’를 구축할 수 있다.

북한 비평사 70년을 거시적으로 조감하면 사실주의(리얼리즘)의 좌우경화, 남북 문학의 적대 및 교류의 순환이라는 일종의 패턴을 찾을 수 있다. 이 패턴을 찾아야 앞으로 북한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게 되며, 문학 비평 차원을 넘어서 2023년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이후까지 문화사를 가늠하고 소통과 통합을 준비할 수 있게 된다. 다만 비문학적 개념이 억압장치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문화적 다원주의로 보완할 생각이다.

 

 

 

김성수
성균관대 학부대학 글쓰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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