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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몸-세계 포괄적 접근 필요…이론적 정합성·체계성은 과제
뇌-몸-세계 포괄적 접근 필요…이론적 정합성·체계성은 과제
  • 김봉억
  • 승인 2022.06.23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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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복합 첨단연구의 현장 ‘체화된 마음 연구’ ⑩ 인지과학철학과 뇌과학의 관점에서 본 체화인지 이론(마지막회)

 

체화인지 이론(theory of embodied cognition)은 현재 인지와 마음에 관한 주요 이론으로 연구되고 있다. 체화인지 이론은 심리철학뿐만 아니라 인지과학에서 인지주의, 연결주의, 신경과학에 이어 새로운 연구 프로그램으로 부상하고 있다. 체화인지 이론이 이처럼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이론이 인지를 정신과 뇌에 국한된 것으로 보지 않고 뇌-몸-세계 간 상호작용으로 본다는 데 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인지와 마음은 뇌와 몸을 가진 유기체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역동적 과정에서 창발한다. 

기획 연재 ‘체화된 마음 연구’ 마지막 회인 열 번째는 ‘인지과학철학과 뇌과학의 관점에서 본 체화인지 이론’을 주제로 이영의 한국체화인지학회 회장과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및뇌공학과)가 대담을 나눴다. 

이영의(이하 이): 지금까지 9회에 걸쳐 체화인지와 관련된 여러 가지 주제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되었습니다. 우리의 대화에서는 인지과학철학과 뇌과학의 관점에서 체화인지를 다루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체화인지 이론이 인지과학의 새로운 연구 프로그램으로 부상하고 있는 주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정재승(이하 정): 뇌와 몸의 상호작용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몸이 세상에 대한 정보를 ‘감각’이라는 형태로 뇌에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정보를 처리하고 세상을 인지하고 의사결정을 하는데 매우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신경생물학적 연구들을 통해 밝혀지고 있지요.

최근 신경과학 분야에서 가장 흥미로운 발견 중 하나인 ‘뇌-장 상호작용’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장내 환경이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이 쏟아지고 있죠. 체온이나 몸의 통증 같은 몸 상태가 성격 같은 기질을 형성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손에 따뜻한 커피잔을 쥐여주는 것만으로 우리는 긍정적인 의사결정을 끌어낼 수도 있고요. 다시 말해, 몸이 이제 더는 ‘세계를 향한 안테나’를 넘어, 뇌와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며 마음을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체화인지는 다시금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인지과학자로서 저는 체화인지 이론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인지 및 마음에 관한 기존 방법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시다시피 사고, 지능, 인지의 본성과 작용에 대해서는 데카르트, 앨런 튜링, 허버트 사이먼 등이 정교한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우리의 주제와 관련하여 20세기 철학에서는 여러 가지 혁명이 발생했습니다.

예를 들어, 윌러드 밴 콰인의 자연화된 인식, 힐러리 퍼트넘의 외재주의, 토마스 쿤의 역사적 과학철학 등이 그것입니다. 그런 혁명이 공유하는 사상은 사고, 인식, 지식은 정신이나 뇌의 작용만이 아니라 뇌와 몸을 가진 유기체가 삶을 살아가면서 세계, 즉 물리적-사회적-문화적 세계와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찰스 스노우 박사가 “두 문화”(Two cultures)를 지적한 지 53년이 지났지만 마음 연구에 관한 한 여전히 두 문화는 남아있고, 21세기에는 그 간극이 더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체화인지 이론은 데카르트, 콰인, 퍼트넘, 쿤이 주장한 인문학적 접근과 튜링, 프랜시스 크릭이 추구한 과학적 접근을 중재하고 연결할 방법을 통해 ‘21세기 두 문화’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정: ‘21세기 두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인문학과 과학이 참여하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데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 통합적 접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인지에서 뇌의 역할을 생각해보기로 하지요. 심리학, 언어학 등 인지과학이 신경과학 분야와 함께 인간의 인지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에 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크릭의 ”놀라운 가설”(The astonishing hypothesis)은 신경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지만, 이제 우리는 이 가설을 뛰어넘는 사고의 틀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 누구도 뇌 없이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뇌는 분명히 사고와 인지, 정서, 행위를 가능케 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놀라운 가설의 핵심은 뇌가 인지의 핵심 요소라는 점을 넘어 그 이상을 주장하는 데 있습니다.

즉, 그 가설에 따르면 인지와 자아는 뇌의 물리적 작용입니다. 철학적으로 보면 놀라운 가설은 심뇌동일론이고 환원론이라는 점에서 그다지 ‘새로운’ 주장을 제시하고 있지 않지만, DNA 이중나선 발견, 의식의 신경상관자 이론 등으로 유명한 크릭의 위상 때문에 주목을 받는 것으로 보입니다. 체화인지 이론의 입장에서 보면, 그 가설의 문제는 뇌를 몸과 환경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것으로 본다는 데 있습니다. 몸과 환경은 뇌가 잘 작동하는 데 필요한 것, 즉 영양과 정보를 제공하는 외적 기관에 불과합니다. 이런 점에서 놀라운 가설은 신경중심주의를 대변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화를 포함한 지금까지의 대화를 통해 드러났듯이, 인지와 마음을 뇌만을 연구해서 제대로 해명할 수 없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에, 인지와 마음을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뇌-몸-세계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과 생명에 관한 현대과학은 놀라운 가설이 주장하듯이 인지, 마음, 의식을 뇌의 작용으로 본다는 점에서 지극히 환원적입니다.

정: 인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뇌-몸-세계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할 것입니다. 다만, 이를 설명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이론적 패러다임이 필요한데, 아직은 그것이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다 보니 추상적인 이론적 담론에 갇히거나 반대로 단편적인 실증적 지식을 만들어내는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체화인지가 인간의 사고를 탐구하는 학자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뇌-몸의 상호작용에 대한 생물학적인 증거를 넘어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가설수준에서 제시하고, 이를 증명하거나 논박하는 과정에서 체화인지에 대해 좀 더 성숙한 이해를 얻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뇌과학자들은 뇌 전체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이론적 틀을 만드는 것조차 버거워하고 있기에, 몸과 세계까지 담아내는 야심에 찬 연구는 시도할 엄두를 못 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보니, 놀라운 가설에 대해 우리 두 사람의 견해는 대체로 일치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를 뛰어넘는 ‘더 놀라운 가설’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도 동감하고요.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저는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가 체화된 인지를 지금 주목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주제를 바꾸어, 체화인지와 관련하여 각자 현재 진행 중인 연구나 관심을 두고 있는 연구 주제에 관해 얘기해 보시지요.

정: 저희 연구실(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신경물리학연구실)은 최근 ‘건축적 요소들이 가진 행동유도성’(architectural affordance)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문을 보면 열고 싶고 계단을 보면 오르내리는 생각을 하죠. 책을 펼치면 책장을 넘기는 행동을 자연스럽게 하듯, 건축적 요소들도 행동을 유도합니다.

최근 저희는 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뇌의 운동영역이 활동화되는 것을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기법)으로 관찰한 바 있습니다. 행동유도성은 체화인지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인데, 아직 뇌영상 연구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신경생물학적 이해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저는 뇌-몸-세계에 대한 틀을 ‘운동영역-다리-건축물’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을 통해 이해해보고 싶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체화인지의 실증적 이론 틀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이: 저는 현재 체화인지연구단에서 3가지 주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체화인지 이론이 강조하는 뇌-몸-환경의 상호작용에서 몸의 위상을 ‘대상으로서의 몸’(Körper)과 ‘살아있는 주체로서의 몸’(Leib)을 중심으로 연구하면서 어떻게 몸이 확장되는지를 연구합니다.

두 번째 주제는 신경중심주의를 ‘인격체’(person) 개념을 이용하여 비판하고 신경중심주의를 겨냥한 부분전체의 오류(mereological fallacy)를 체화인지적 관점에서 해결합니다.

세 번째 주제는 인지가 웹을 포함한 인터넷 세계로 확장되기 위한 조건들을 검토합니다. 앤디 클락은 인지의 확장을 주장하면서 인지가 인터넷 세계로 확장되기 위한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저는 클락의 조건이 인지의 확장을 보증하기에 충분치 못하다는 점을 주장하고 대안 조건을 제시합니다. 이런 연구를 통해 저는 체화인지 이론을 과학철학과 포스트휴머니즘과 연결하려고 합니다.

체화인지 이론은 논리와 경험을 중시한 논리경험주의와 역사와 실천을 강조하는 쿤의 과학철학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논리, 경험 및 역사와 실천을 체화적 관점에서 해명함으로써 그런 연결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체화인지 이론은 인간 향상, 몸의 대체, 사이보그와 같은 주제를 통해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을 깊이 있게 논의할 방안을 제공합니다.
 
정: 체화인지 이론이 인지와 마음에 관한 더 좋은 이론이 되기 위해 수정 보완이 필요한 것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이: 체화인지 이론이 인지과학의 진정한 연구 프로그램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론적 정합성과 체계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체화인지 이론은 흔히 말하는 ‘4Es’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론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성 이론 간 이론적 충돌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 좋은 예로는 몸의 역할에 대한 확장된 인지 이론과 행화적 인지 이론의 대립을 들 수 있습니다. 행화적 인지 이론에 따르면 몸이 없으면 인지도 없지만, 확장적 인지 이론에 따르면 인지를 위해 몸은 필요하지만 인공물도 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주된 이유는 체화인지를 구성하는 이론들의 형이상학적 차이 때문입니다.

체화인지의 형이상학으로는 현상학, 기능주의, 속성이원론, 물리주의, 중관(中觀) 사상 등이 있습니다. 이런 형이상학의 차이 때문에 과연 하나의 통합된 이론이 성립할 수 있는가라는 회의적 시선도 있습니다. 체화인지 이론의 장점은 그런 형이상학적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충돌을 일으키는 주제들, 예를 들어, 의존과 구성, 몸의 필요성 등과 같은 주제와 관련하여 갈등 관계에 있는 이론 간 차이점이 무엇이고 그런 차이점을 넘어 그것들을 하나의 이론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개념지도 그리기 작업이 필요합니다.

정: 매우 흥미로운 말씀이군요. 올해 카이스트는 뇌인지과학과를 설립했습니다. 그동안 심리학 분야에서 인지과학이 연구되어 왔는데, 이제는 신경과학과 인지과학의 접목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신경과학자들과 인지과학자들이 한데 모여 연구하고 교육하는 학과가 만들어진 셈인데, 체화인지는 저희 학과에서 다룰 매우 중요한 주제 중 하나입니다. 

이: 그렇군요. 학과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우리의 대화를 마무리하는 때가 되었네요. 향후 체화인지 이론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를 전망해보시지요.

정: 저는 선생님처럼 체화인지의 이론적 틀을 만드는 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데이터를 해석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만들고 검증 가능한 이론적 예측을 하는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체화인지의 개념 틀을 만드는데 기여한 프란시스코 바렐라와 같은 초기 학자들의 주장을 넘어, 뇌와 몸에 대한 좀 더 높은 수준의 이해를 바탕으로 보다 구체적이고 검증 가능한 이론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연구하기 위한 방법론적 틀도 꽤 성숙한 상황이라 저는 충분히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저는 체화인지 이론과 경험과학의 결합이 점차로 더 긴밀해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계 속에서 자율적으로 자기동일성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감각 운동적 상호작용을 통해 세계에 적응하는 행화적 인공지능(enactive AI) 연구가 활성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체화인지 이론을 채택한 신경과학 연구가 증가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바렐라가 ‘의식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장한 신경현상학(neurophenomenology)과 같이 철학과 신경과학을 연결하는 연구가 신경과학에서 활발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영의 한국체화인지학회 회장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에서 철학 박사를 했다. 강원대 교수와 고려대 철학과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한국체화인지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과학적 추론, 체화인지, 인지과학철학, 사이보그철학, 정신치료이다. 저서로 『베이즈주의』, 『신경과학철학』이 있고 공저로 『입증』, 『인과』, 『포스트휴먼이 몰려온다』, 『인공지능의 존재론』, 『인공지능의 윤리학』, Understanding the Other and Oneself 등이 있다.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및뇌공학과)
카이스트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복잡계 물리학 이론으로 석사, 이를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뇌 모델링에 적용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예일의대 소아정신과 박사후연구원, 콜롬비아의대 소아정신과 조교수 등을 지냈다. 최근 카이스트에 뇌인지과학과를 설립하고 초대 학과장을 맡고 있다. 의사결정 신경과학, 정신질환 모델링, 뇌-기계 인터페이스, 뇌를 닮은 인공지능 등을 연구하고 있다. <네이처> 등 국제학술지에 100여 편의 논문을 출간했고, 세계경제포럼 2009년 차세대 글로벌리더로 선정된 바 있다. 
 

*체화된 마음 연구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 주신 독자와 수고해 주신 필진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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