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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에서 중세 유럽을 만나다
지중해에서 중세 유럽을 만나다
  • 최승우
  • 승인 2022.06.17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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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지음 | 컬처룩 | 264쪽

우리는 유럽에서 무엇을 보는가
과거와 현재의 유럽을 동시에 탐색

여행에 문외한인 사람도 가보고 싶은 곳으로 대개 유럽을 첫손에 꼽는다. 유럽은 구시가에 있는 낡은 건물과 허름한 거리조차 낭만처럼 통한다. 유럽 어느 도시를 가든 만나게 되는 교회와 성채는 가장 유럽다운 장소다. 높은 성벽, 방패 모양의 화려한 문장과 깃발, 하늘 높이 치솟은 고딕 성당, 투구와 사슬 갑옷 등 동화에나 등장할 법한 이러한 이미지는 유럽 중에서도 중세를 상징한다. 십자군 전쟁은 중세 교회가 주도해 이교도이자 이국적 문명의 나라와 장기간 벌인 전쟁으로, 종교와 전쟁이 만나 다채로운 이야기를 낳았다는 점에서 중세 유럽의 특색을 잘 보여 주는 사건이다. 종교와 전쟁이야말로 유럽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성지 원정의 목적지였던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그리스 로도스섬의 성벽 도시, 십자군 기사단이 최후를 맞이한 몰타까지 그 흔적은 지금도 도처에 남아 있다. 이처럼 가장 중세 유럽다운 주제인 십자군의 발자취를 따라 흥미롭게 쓴 [지중해에서 중세 유럽을 만나다: 십자군 유적지 여행]이 출간되었다.

십자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요르단(암만, 제라시, 페트라 등), 로도스, 보드룸, 몰타, 이스라엘(예루살렘, 아코 등) 등을 여행하며 저자는 그곳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현재를 읽어내고 있다. 지금은 이슬람 문화권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이 지역에서 유럽의 흔적을 찾는다니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지역들은 모두 중세 십자군이 주요 원정 지역으로 중세 유럽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거기다 중세 유럽의 유적뿐만 아니라 유대인, 아르메니아, 무슬림 등 다양한 종교적 민족적 일상과 만날 수 있는 데다, 지역에 따라서는 그리스와 로마 시절의 유적도 있어 시대와 지역이 뒤섞인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십자군은 1095년 가톨릭교회 수장인 교황의 주창으로 시작되어 약 200년 동안 이어진 성지 회복 운동이다. 하지만 세속적 측면에서는 유럽의 왕족과 귀족, 평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계층이 참전해 이교도이자 이국적 문명의 국가와 벌인 장기간의 정복전이었다. 종교의 이름으로 국적과 무관하게 군대가 조직되어 먼 팔레스타인 땅까지 원정이 단행되고 많은 사람이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특히 기사단은 오직 가톨릭교회의 권위하에 결성된 다국적 조직으로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순례자 보호와 성지 수호에 몸 바쳤다는 점에서 중세적 세계관을 잘 구현한 집단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포착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유럽을 보여 준다. 오늘날의 유럽은 중세에 비해 몰라볼 정도로 세속화했다. 하지만 반이슬람과 타 문명에 대한 편견과 적대가 때로는 실제 전쟁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역사적 유적지는 희미하게 남은 과거의 흔적과 기억만으로도 감동을 준다. 더불어 유적에 남은 사연을 잘 알수록 상상력도 경험의 깊이도 배가된다. 여행은 특정 장소에 대한 개인적 경험과 느낌, 사전 지식, 그리고 약간의 우연이 함께 어우러져 빚어낸 독특한 이야기다. 이 책은 단지 과거에 대한 호기심 어린 구경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현재 세계에 대해 성찰한 기록이다. 여행지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저자의 시선으로 포착한 사진은 우리를 십자군 유적지로 안내한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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