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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숲
소리 숲
  • 최승우
  • 승인 2022.06.22 1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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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용 지음 | 320쪽 | 푸른사상사

충만한 생명과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소리 숲

환경, 폭력, 식민지와 노예제도 등 인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해온 소설가 우한용(서울대 명예교수)의 장편소설 『소리 숲』에는 생명력 충만한 숲의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지극히 풍성한 그 소리를 들으면서 인간은 세상을 감각하고 성장한다. 이 책의 배경인 전북 고창의 풍수와 자연을 저자는 생생하게 체험하면서, 그 느낌을 먼저 시로 읊은 뒤 이야기로 풀어낸다. 

스물세 살 청년 윤종성은 1년간 대학을 다니다가 학비 부담으로 휴학을 결정한다. 몇 년 전 외삼촌이 양녀인 소말리아 소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을 목격하고 그를 살해하려고 했으나 실패한 적이 있는 윤종성은, 그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김제 금산사에서 타종의 순간 당좌에 손을 밀어 넣어 왼손 손가락 네 개가 모두 잘린 상태다. 휴학 이후 경제적인 문제로 고민하던 그는, 참회의 삶을 살아가는 노인 김대성의 자서전 대필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처음 만난 윤종성에게 거액의 통장을 맡길 뿐만 아니라 손가락 치료를 도와주기까지 하는 이 노인에게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그의 수수께끼 같은 삶이 고창의 역사, 자연, 문화와 얽혀 펼쳐진다.

윤대석 교수(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평설에서도 밝히듯 『소리 숲』은 누구를 주인공으로 보는지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젊은 청년 윤종성이 주인공이라면 이 소설은 그의 성장담이자 교양소설로 읽힐 것이며, 여든이 된 노인 김대성이 주인공이라면 이 소설은 죽음을 문턱에 앞둔 한 인간의 삶을 그린 전기소설이자 노년소설이 될 것이다.

또한 고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라면 지역소설이 될 것이며, 모험과 깨달음의 공간인 대학과 그 학문이 주인공이라면 대학소설, 지식소설이 될 것이다. 이처럼 『소리 숲』에서는 윤종성과 김대성, 대학과 고창,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고 아우르며 하나의 소리 숲을 일궈내고 있는 것이다.

살인 미수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속죄하는 방법을 찾던 윤종성이 자서전이라는 방법으로 자기 죄를 고백하려는 김대성을 만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인간 성장과 깨달음의 과정이 담긴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충만한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숲의 소리가 들릴 뿐만 아니라 범종의 맥놀이와도 같은 긴 여운이 마음속에 깊이 울려 퍼질 것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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