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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북한사회를 볼 수 있는 가장 유용한 통로
초기 북한사회를 볼 수 있는 가장 유용한 통로
  • 우동현
  • 승인 2022.06.30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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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북한사 사료 이야기② 러시아 국립문서고 1부(모스크바)

북한사 연구에 가장 필수적인 사료에 대한 접근은 북한 안팎을 막론하고 무척 제한적이다. 최고지도자에 대한 개인숭배가 특징적인 국가에서 ‘국정(國定) 서사’에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정보는 철저히 관리되고, 극히 일부의 사람만 제한적으로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문서고(文書庫, archive)에 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아무것도 없다. 2015년 발행된 한 온라인 신문에 따르면, 평양과 자강도 모처에 북한 최고지도자들의 기록물이 보존된 문서고가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북한의 중앙·지방 당국이 생산한 문서 기록 등은 분명 문서고에 저장될 것이다.

한국전쟁 이전부터 문서고 운영한 북한

이러한 추측이 가능한 이유는 한국전쟁 이전부터 북한 당국의 문서고 운영 흔적이 소련 자료에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초기 북한의 국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맡은 고려인 허가이는 1953년 자살하기 직전 “후퇴 시기 당 문서고 소각”을 두고 김일성에게 호된 비판을 받았다(AVPRF f. 0102, op. 9, p. 44, d. 9, ll. 74-75). 1956년 초, 한 북한 관리는 “전쟁으로 거의 모든 정부 문서고가 파괴됐다”고 평양 주재 소련 관리에게 토로하기도 했다(AVPRF f. 0102, op. 16, p. 24, d. 6, l. 31).

1945년 광복(‘해방’) 이후부터 1991년 소련 해체까지 평양 주재 소련 대표부는 실로 방대한 양의 문서를 생산해 모스크바로 보냈다. 이 문서들은 일차적으로 소련의 대북(對北) 정책이라는 틀 안에서 생성됐다. 즉 이 사료들이 담고 있는 정보가 북한의 실상을 온전히 반영한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북한 문서고가 개방되지 않는 이상, 북한사 연구에 필요한 사료를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바로 이 러시아 문서를 검토하는 것이다. 따라서 해당 문서들이 소장된 러시아 국립문서고는 북한사 연구의 보고(寶庫)이자 초기 북한 사회를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유용한 통로를 제공한다. 

‘러시아연방 대외정책 문서고’에서 만난 조소앙

북한사 연구자가 주목해야 하는 러시아 국립문서고는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단연 모스크바에 소재한 자료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국내외 연구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모스크바의 국립문서고는 러시아연방대통령문서고(APRF), 러시아연방대외정책문서고(AVPRF), 러시아연방국립문서고(GARF), 러시아국립경제문서고(RGAE), 러시아연방사회정치사문서고(RGASPI), 러시아연방현대사문서고(RGANI), 러시아과학원문서고(ARAN) 등이다. 한편 APRF나 AVPRF는 현재 접근이 무척 제한적이거나 불가능하다.

필자가 2019년 당시 촬영한 러시아연방사회정치사문서고(RGASPI)의 전경. 건물 앞에 걸려있는 맑스, 엥겔스, 레닌의 얼굴은 이 문서고가 소련 시절 맑스-엥겔스-레닌연구소였음을 보여준다. 사진=우동현

러시아 국립문서고는 대부분 폰드(fond, 문서군), 오피스(opis, 문서 목록), 젤로(delo, 문서철) 순서로 계층적 분류 방식에 따라 사료를 보관한다. AVPRF처럼, 오피스와 젤로 사이에 파프카(papka, 문서함)라는 추가적인 분류 단위가 존재하기도 한다.

사료가 가진 ‘폰드-오피스-젤로’ 형태의 문서고 정보(archival signature)는 역사 연구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사료가 가장 중요한 증거(evidence)로 쓰이는 역사 연구의 특성상, 연구의 ‘객관성’을 담보하는 표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선행 연구의 문서고 정보를 좇아 추가적인 사료를 발견할 가능성도 있다.

필자가 2019년 당시 촬영한 러시아연방현대사문서고(RGANI) 내부에서 본 강 건너 모스크바 크렘린의 옆모습. 사진=우동현

모스크바의 국립문서고에서 북한사 사료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북한은 소련의 입장에서 외국이었고, 따라서 관련 사료는 주로 소련공산당이나 소련 국가(행정부), 소련 기업 등의 대외 관계를 다룬 폰드에 담겨있다. 일례로 AVPRF는 평양 주재 소련 대사관이 접수하고 처리한 방대한 양의 북한 관련 문서를 보관한다. 이 문서들은 김일성의 딸 김경희의 아명(김경자)을 보여주거나, 독립운동가 조소앙의 말년에 관한 단서를 제공한다.

김경희(장성택의 처)의 아명이 김경자임을 보여주는 북한 외무성 자료(AVPRF, f. 0102, op. 16, p. 24, d. 4, l. 13). 문서 네 번째 줄에 “김일성 동지의 딸 김경자”라고 적혀있다. 필자가 이 자료를 찾아내기 전까지 그녀의 아명과 관련해서는 미중앙정보부CIA의 첩보가 유일한 정황 증거였다. 사진=우동현
조소앙의 사인에 관한 소련 대사의 일지(AVPRF, f. 0102, op. 14, p. 75, d. 7, l. 425). 당시 북한 주재 소련 대사 푸자노프가 고려인 출신의 북한 내무상 방학세(니콜라이 방)와 나눈 대담을 기록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조소앙은 한국전쟁 당시 납북돼 평양에 거주하다가 1958년 9월 30일 자취를 감췄다. 이후 북한 당국은 조소앙의 소지품이 발견된 대동강을 3일간 수색해 그의 시신을 발견했다. 푸자노프가 조소앙의 자살 원인이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방학세는 최근 그가 “친구들과 주변인들”에게서 비판을 들었다고만 말했다. 소련 대사는 일지에 “이렇듯 충분히 합리적인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기록했다. 사진=우동현

러시아 최대 ‘러시아연방국립문서고’

모스크바 소재 국립문서고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먼저 러시아 최대의 국립문서고 GARF는 실로 다양한 정책 문서를 보유하고 있다. 북한과 관련해서는 양국 행정부 차원의 논의가 어떻게 정책 결정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유용하다. GARF와 같은 건물에 있는 RGAE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경제 교류와 관련된 사료를 다수 소장하고 있다.

RGASPI와 RGANI는 소련공산당과 조선노동당의 교류와 관련된 사료가 소장돼있다. 당은 사회주의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결정 기관이다. RGASPI는 1952년 이전까지, RGANI는 1952년 이후 생산된 당 관련 문서를 소장하고 있다. RGANI 자료를 대거 이용해 1950년대 북한의 사회주의 이행 과정을 재구성한 조수룡의 연구(2018)는 북한 경제사 연구의 획을 그은 연구로 평가된다. 

북한 관련 문서가 대외 관계 폰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필자가 2020년 작업한 GARF의 소련보건성 폰드(R8009)에는 1960년대~1970년대 북한 관련 젤로가 없었다. 이러한 공백은 대개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다른 폰드에 자료가 담겨있다. 둘째, 해당 자료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물론 해당 자료가 생산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스크바에는 국립문서고 외에도 연구자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문서보관소(repository)가 여러 군데 있다. 그중에서도 북한사 사료와 관련해 가장 주목받는 곳이 러시아국립도서관, 일명 ‘레닌 도서관’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 도서관을 자세하게 들여다볼 것이다.

우동현 요크대 박사후과정
「Leveraging Uneven Cooperation: Socialist Assistance and the Rise of North Korea, 1945-1965」이라는 제목으로 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국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북한사 연구자로는 최초로 미국 로스알라모스국립연구소에서 학술 발표를 했다. 역서로는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 『플루토피아』, 냉전기 미국 핵기술의 국제사를 다룬 『저주받은 원자』(가제), 국제공산주의운동을 2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풀어낸 『전쟁의 유령』(가제),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 총서 36권 『해방 직후 한반도 북부 공업 상황에 대한 소련 민정청의 조사 보고』(공역) 및 38-39권 『러시아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 소장 북한 인물 자료 Ⅱ·Ⅲ』(공역) 등이 있다. 『매거진 G 4호: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에 기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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