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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의 정치, ‘공정한 조세·수취 제도’를 지향한다
무위의 정치, ‘공정한 조세·수취 제도’를 지향한다
  • 김재호
  • 승인 2022.07.04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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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⑩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9를 맞이해 「자유와 이성」을 주제로 총 44회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본성, 재난과 질병에 대한 제약과 해방 등을 역사, 정치, 철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살펴본다. 지난 11일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철학)가 「도가의 자유관」을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11강은 장동진 연세대 명예교수(정치사상)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역사와 전개」, 제12강은 박찬표 목포대 교수(정치언론홍보학과)의 「자유, 공화주의, 다원주의」, 제13강은 박수형 서울특별시의회 입법조서관의 「자유주의의 변용: 역사와 사회적 맥락」, 제14강은 이근식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경제사상)의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천지·만물은 자기 안에 운동의 원인 갖고 자발성이 본성
예 이전의 인간의 본래성 회복하는 게 노자의 정치사

 

정치적 자유 특히 “간섭의 부재”로서 자유라는 개념은 근대의 번역어이기 때문에, 근대 이전의 동양 문헌에서 이 단어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유라는 단어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도가 사상에서 정치적 자유에 근접하는 단어를 고르라면 그 후보는 당연히 ‘자연(自然)’이 될 것이다.

한문 고전에서 ‘자연’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노자』이다. 『노자』에는 자연이라는 개념이 모두 다섯 차례 등장하지만, 『논어』, 『맹자』, 『시경』, 『서경』 등의 유학 경전에는 등장하지 않으며, 『노자』 이후의 도가 계열 문헌인 『장자』에는 자연 개념이 모두 여섯 차례 등장한다. 『노자』의 ‘자연’은 에피쿠로스의 원자처럼 외부로부터의 개입이나 사역(使役) 없이 만물이 ‘스스로’ 자기 힘에 의해서 자라나고 성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천지·만물은 자기 안에 운동과 변화의 원인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 그러함” 즉 자발성을 본성으로 한다.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는 노자의 무위·자연의 정치사상을 강조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주지하다시피 노자의 정치사상은 “무위·자연”이라는 네 글자에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무위와 자연의 주어는 각기 다르다. ‘무위’의 주어는 ‘도’ 또는 성인이고, ‘자연’의 주어는 만물 또는 백성이다. 도는 천지의 운행 법칙을 말한다. 성인에 의한 무위의 정치는 백성들이 자발적인 삶을 살도록 도와줄지언정 간섭하지는 않는다. 백성들은 위로부터의 개입이나 간섭이 배제된 상태에서 스스로 화육하고, 스스로 바르게 되며, 스스로 풍족하게 되고, 스스로 본래의 질박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공자의 정치사상이 이름과 행위의 일치 즉 정명(正名)을 목표로 했다면, 노자는 이름이 부여되기 이전의 자발성과 본래성을 회복하는 일 즉 무명(無名)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해서, 당대의 혼란을 종식시키려는 공자의 해법이 무너진 ‘예’를 회복하는 일에 있었다면, 노자의 주안점은 ‘예’의 자의성을 폭로하고 ‘예’가 생겨나기 이전의 상태로 사회와 제도를 되돌림으로써 인간의 자발성과 본래성을 회복하려는 데 있다.

유교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인’과 ‘의’는 공자와 맹자가 좋은 정치의 표상으로 내세웠던 최고의 덕목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왜 노자는 인ㆍ의를 쇠락한 시대를 상징하는 하덕(下德)으로 여기는 것일까? 노자에 의하면 ‘인’과 ‘의’는 ‘도’와 ‘덕’이 사라진 후에 나타난 유위적 규범으로서, 사사로움과 편파성의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노자는 “천도(天道)에는 친/소(즉 편파성)가 없다”라고 하고, “천지는 인(仁)하지 않다”라고 말한다. 인·의를 도와 덕에 비해 완선하지 못한 규범, 쇠락한 시대의 하덕(下德)으로 보는 노자의 관점은 국정운영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한비자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인다.

인·의보다 한 단계 더 쇠락한 규범은 ‘예’이다. 공자는 이름에 걸맞은 행위의 실천을 통해 ‘예’를 회복할 수 있다고 기대했지만, 노자는 ‘예’의 자의성과 허위성에 초점을 맞춘다. ‘예’는 진실함과 미더움이 상실된 시대의 표징으로 단지 침략 전쟁의 구실로서만 기능할 뿐이다.

노자에게 정치의 목표는 자의적인 지배와 간섭을 배제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자발적인 삶과 본래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일 즉 ‘자연’의 회복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강압과 간섭 그리고 수탈과 착취를 멈추는 일 즉 유위(有爲)로부터의 탈피가 요구된다.  ‘유위’란 무거운 세금과 잦은 부역 동원 그리고 위하(威哧)와 형벌에 의한 권위주의적 통치를 말한다.

노자는 ‘교화’라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에 반대한다. 노자의 이상적 통치자는 유위 대신 무위의 지배를 행하고, 언설에 의한 교화 대신 ‘말없는 가르침’을 행한다. 무위 정치는 군주의 무욕(無欲), 무사(無私), 무집(無執)에서 출발한다. 무위 정치는 불간섭과 비지배의 정치이자 부드러움을 숭상하는 온유함의 정치이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정치이며 불평등을 시정하고 균평을 지향하는 정치이다.

‘무위’는 자의적인 권력의 남용을 배제하는 불간섭의 정치이지만, 문자 그대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무관심하거나 무기력한 정치는 아니다. 분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조세정책과 엄정한 수취 체계를 확립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백성들의 자화(自化)를 지원하기 위한 이러한 노력은 이미 남음이 있는 자에게 다시 보태주려는 ‘유위’의 노력이 아니라 ‘천도’의 균평함을 본받으려는 ‘무위’의 노력이다.

전통적으로 노자 무위·자연의 정치사상이 지향하는 궁극적 이상향은 소국과민(小國寡民)으로 알려져왔다. 『노자』의 ‘소국과민’ 장은 수많은 주석가와 독자들에 의해 지배자가 없는 사회,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이 사라진 사회, 무정부주의, 아나키즘, 원시 공산 사회, 원시 씨족사회, 생태 공동체 등으로 읽혀왔다. 하지만 ‘소국과민’의 이상과는 정반대로, 춘추·전국 시대의 제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더 넓은 영토와 더 많은 인구를 얻기 위해 광토중민(廣土衆民)의 정책을 펼쳤다. 더 많은 인구를 얻기 위해 어떤 나라에서는 덕스러운 정치56를 표방하기도 했지만, 다른 어떤 나라에서는 연좌제를 만들어 주민들을 상호 감시케 했다. 

‘소국과민’에 관한 내용은 『노자』에서 제80장 말고는 발견할 수 없다. 이 장은 통행본(왕필본)에는 실려 있지만 곽점 초간본에는 들어 있지 않다. 이 내용이 『노자』에 삽입된 시기는 아마도 전국 시대 말기로 추정된다. 하지만 누구에 의해 어떤 의도에서 ‘소국과민’의 내용이 뜬금없이 『노자』에 삽입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면밀한 고찰이 필요하다.

‘소국과민’ 장을 그나마 합리적으로 독해하려면 제60장에 나오는 큰 나라의 경영 방략과 비교의 시각에서 읽는 일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제60장에서는 큰 나라의 경영 방략과 관련하여 “큰 나라를 다스리려면 작은 생선을 요리하듯 해야 한다.”61라고 적고 있다. 큰 나라(대국)를 지향하라는 말이 아니라 “큰 나라를 다스릴 경우라면” 작은 생선 요리하듯 조심스럽게 경영해야 한다는 뜻이다. 각종 법령과 정책을 자주 변경하다가는 나라 안에 커다란 혼란과 동요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소국과민’이라는 문구도 제60장처럼, “작은 영토 적은 인구의 나라라면”이라는 조건절로 읽는 것이 순통하다. 62 영토가 작고 인구도 적은 나라의 경우라면, 각종 법령과 제도를 지나치게 번거롭지 않도록 간소화하는 일이 필요하고, 군사무기 개발과 전쟁 준비에 재화를 쏟아 붓기보다는 백성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려는 박실(樸實)의 정치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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