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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사회 인쇄기 보급에 400년 걸려
무슬림 사회 인쇄기 보급에 400년 걸려
  • 유무수
  • 승인 2022.07.0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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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규제를 깬 혁신의 역사』 칼레스투스 주마 지음 | 박정택 옮김 | 한울아카데미 | 430쪽

돼지털 인쇄판 청소 브러시가 신성모독
인쇄과학 종사자는 사형에 처해지기도

케냐인으로서 유엔 생물다양성 협약 사무총장으로 활동했던 칼레스투스 주마 저자가 아홉 가지 혁신 제품의 사례들을 바탕으로 혁신에 대한 사회적 반대의 역동성을 탐구했다. 조지프 슘페터에 의하면 혁신은 기존 관행에서 벗어난 ‘새로운 조합’의 창출이며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다. 혁신은 사회의 재편을 일으키기에 기존의 틀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필요성과 충돌한다.  

 

오스만 제국의 인쇄기술에 대한 사회적 반응은 혁신과 관련한 시스템 전반의 역학을 보여준다. 오늘날 이슬람 공동체에서 인쇄되어 통용되는 종교서적은 400여 년의 저항을 극복한 산물이다. 구술과 서예가 코란에 포함된 마호메트의 말을 전달하는 사회적 공인 시스템으로 되어 있는 오스만 제국은 종교 텍스트의 인쇄기술 사용을 금지했다. 한 때 인쇄과학에 종사하는 자는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이슬람교도들에게 돼지털로 의심되는 인쇄판 청소 브러시가 ‘알라’의 이름에 접촉하는 것은 신성모독 행위였다. 이슬람 문화에서 서예가는 국가에서 지원했으며 필경사는 대규모의 세력으로 성장해 있었다. 또한 서예적 표현을 할 수 없는 인쇄술은 열등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소수 종교인들이 비(非) 아랍문자로 책을 출판하는 인쇄소 허용, 이브라힘 뮈테페리카의 종교적 자료를 배제한 인쇄, 인쇄기 도입이 국가에 세수를 창출하는 추가적인 기회제공, 필사본의 심미적 속성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석판인쇄의 발명 등의 요인들이 축적되면서 무슬림 세계에서도 인쇄출판이 확산될 수 있었다. 

결국 기술의 진보가 신기술에 대한 반대를 줄이는 작용을 더해주고, 혁신에 의한 사회적 편익이 현직(incumbency, 현상유지)보다 크며, 정책결정권을 지닌 지도자가 혁신에 우호적일 때 혁신의 성공가능성이 높아진다. 산업혁명 당시 영국 전역의 섬유장인들이 직조 기계를 파괴하면서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직조기계와 섬유공장이 점차 보편화될 수 있었던 이유도 편익이 위험보다 훨씬 컸고 특별법과 법원의 판결 등에서 국가 권위가 직조기계를 도입하려는 기업가에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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