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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도 인력 양성에 투자해야
산업계도 인력 양성에 투자해야
  • 이덕환
  • 승인 2022.07.04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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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이덕환 논설위원.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논설위원

장관도 없는 교육부에 반도체 인력 양성에 ‘목숨을 걸라’는 대통령의 추상같은 특명이 떨어졌다. 사회부총리 직을 겸하고 있는 교육부에게 산업부·중기부·과기부와 같은 ‘경제부처’의 마인드를 요구한 것이다. 국가의 중요한 안보·전략 자산인 반도체에 필요한 인력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는 교육부는 ‘개혁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도 있었다.

경제 전문가 출신 국무총리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던 국무총리가 발 벗고 나섰다. 교육부와 반도체 산업현장을 직접 찾아가서 대통령의 특명을 다시 전달했다. 산업 인력 양성을 강조하지만 인성 함양과 덕을 키우는 교육의 진정한 가치도 잊지 않겠다는 변명은 몹시 옹색한 것이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반도체 인력난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욕은 이해가 된다. ‘인력자원’의 양성을 책임진 교육부에게 개혁적·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촌각을 다투는 반도체 산업계의 인력난 해소는 긴 호흡의 교육 정책을 맡고 있는 교육부가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굳이 필요하다면 수도권 대학에 반도체학과를 만들 수는 있다. 작년에도 수도권의 반도체학과 정원을 4천 명이나 늘여주었다. 제도적으로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의 ‘시행령’을 개정할 수도 있다. 국회를 볼모로 삼고 있는 야당의 협조를 얻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렇다고 당장 반도체 산업계가 원하는 인력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진단이 정확해야만 치유가 가능하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으로 반도체 인력은 9만9천285명이다. 반도체 산업 현장에서 부족하다는 인력은 고작 1천621명이다. 그중 절반이 넘는 894명은 현장의 실질적인 작업을 담당해야 하는 고졸이다. 전문대 수준의 인력도 316명이 필요하다. 

반도체만 그런 것이 아니다. 12대 주력 산업에서 절박하게 요구하는 인력 2만8천50명 중에서 46%도 고졸 인력이다. 그런데 고졸 인력을 공급해줘야 하는 특성화고는 지난 10년 동안 41.9%나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고등학생 수의 감소 33.5%보다 훨씬 큰 폭이다. 대학에 반도체학과를 만들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뜻이다.

현재 산업계가 겪고 있는 인력난은 산업계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생산 현장에서 강도 높은 업무와 잦은 교대 근무를 원하지 않는 학생들을 활용하기 위한 투자가 부족했다. 산업계의 고질적인 인력난은 기업이 고졸 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해줘야만 해결될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다.

반도체 산업계가 요구하는 대졸 인력은 학사 362명, 석사 40명, 박사 9명뿐이다. 모두가 반도체학과를 졸업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물리학·화학과 같은 기초과학 분야와 재료공학 등의 공학 분야의 졸업생도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실 대학에서의 산업인력 양성의 진짜 심각한 문제는 양(量)보다 질(質) 때문이다. 반도체 기업이 대학의 인력 양성을 위해 투자와 노력을 하지 않았다. 대학이 유능한 교수와 값비싼 실험교육 장비를 확보할 수 있도록 협조해주지 않았다. 산업계가 요구하는 인력을 맞춤형으로 길러줘야 한다는 기업의 편협하고 이기적인 자세도 버려야 한다.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계약학과’도 결국에는 대학의 체력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독약이 될 것이다.

이덕환 논설위원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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