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 지음 | 집문당 | 322쪽
사람들은 자신이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원시인들이 살던 동굴은 남향받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날이 밝으니까 동굴의 남쪽 입구가 동쪽인 줄 알고 살았다. 베이컨(Francis Bacon)은 이를 “동굴 속에 사는 사람의 편견”(idola specus)라고 이름 지었다. 그런 편견이 어찌 원시인뿐이었겠는가? 첨단 과학의 시대에 사는 현대인에게도 그러한 편견은 허다하게 있다.
학문의 분야에서 이러한 편견으로 가장 오염된 분야가 역사학이다. 백내장과 같은 주자학적 중화주의로 한국사는 이미 시력을 잃었다. 여기에 더하여 지역감정과 종교적 근본주의 그리고 문중(門中) 사학까지 덮쳐 한국사가 시좌를 잃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사학은 사료를 기초로 하지만 마치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에 중국의 「25사」나 문중 기록으로 한국사를 다 풀어낼 수 있는 대상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데에서부터 사관과 역사의 시좌(視座)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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