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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물고 달아난 도둑고양이
시간을 물고 달아난 도둑고양이
  • 최승우
  • 승인 2022.07.01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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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호 지음 | 싱긋 | 264쪽

“문학의 탐색 대상이 삶이라면,
그 짝인 죽음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다.”
영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삶에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있는 죽음에 천착한다. 죽음은 살아 있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래서인지 많은 살아 있는 자들이 죽음을 쓰고, 그리고, 노래해왔다. 저자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죽음을 다룬 영시를 선별하여 소개한다. 죽음이 사랑하는 이를 더이상 볼 수 없게 되는 슬픈 사건이라는 단편적인 인식에서 더 나아가 죽음을 입체적으로 조망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통찰이 곳곳에서 빛난다. 마치 길처럼 펼쳐진 영시에서 만나는 죽음의 풍경은 죽음이 두렵고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그때 진실한 삶의 얼굴이 드러난다.

온 세상은 하나의 무대이고,
모든 남녀는 그저 배우일 뿐이어서
무대에 오르고 퇴장하나니.
_윌리엄 셰익스피어, 『뜻대로 하세요』

삶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순리이지만 어쩐지 잔인하게 느껴져 외면하곤 한다. 저자는 이러한 필연적인 운명을 “생명의 탄생과 더불어 삶이 시작되면 거꾸로 세워진 모래시계에서 자그마한 시간의 알갱이들이 쉼 없이 쏟아져내린다”와 같이 아름답게, 때로는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향해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간다”처럼 날카롭게 표현한다. “삶이 무대에 올라 쏟아지는 조명을 받는 동안에도 죽음은 (…) 무대 뒤에서 분주히 자신이 등장할 때를 기다리고 준비한다”라는 저자의 표현처럼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삶이 진행될수록 더 주목받는 존재는 삶이 아니라 죽음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죽음에 친숙해지는 것이 이 삶을 충실하게 사는 지혜를 얻는 길이라고 하지만 그 말을 확신하지 못할 때가 자주 있다. 그래도 생에 대한 터무니없는 욕망과 지나친 집착을 자제하고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경우는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뿐이다.” _「프롤로그」에서

저무는 삶의 풍경이 보여주는 것들
1부 ‘마침내 죽음을 만나다’에서는 죽음의 의미와 속성을 되새기며 죽음의 모습을 확장해나간다. 죽음은 어떠한 차별도 없이 모두를 방문하기에 죽음의 시들이 보편성을 획득하는 한편, 저마다의 상상력으로 흥미로운 세계를 펼쳐 보인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죽음이 삶에서 배운 것을 잊고 새로운 것을 배우러 가는 과정이라 표현했고, 에밀리 디킨슨은 관 속에 누워 있는 화자가 감각을 잃는 과정으로 죽음을 표현했으며, 헨리 반다이크는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 배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계속 존재하는 것처럼 죽음도 마찬가지라고 표현했다.

2부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에서는 죽음에 맞닥뜨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가 죽은 뒤의 세상 혹은 내가 죽어서 가게 될 곳은 어떤 모습일지, “그 누구도 다시 돌아와 죽음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 말해줄 수 없기에” 문학적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알프레드 하우스먼의 시는 ‘떠나는 자’가 친구에게 사랑했던 여성이 잘 지내고 있는지 물으며 자신이 없는 세상을 궁금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에드나 밀레이의 시는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남겨진’ 가족이 유품으로 삶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떠나는 사람은 자신의 빈자리를 세상이 느끼기를 바라고, 남겨진 사람은 “영원히 메울 수 없는 구멍”을 안고 살아간다.

당신이 없다는 것이 나를 지나갔네
마치 실이 바늘귀를 지나는 것처럼.
내가 하는 모든 것은 그 색으로 꿰매진다네.
_윌리엄 스탠리 머윈, 「이별」

3부 ‘이 삶에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에서는 죽음의 시를 감상함으로써 더 또렷하게 떠오르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늘을 살라’ 혹은 ‘오늘을 즐기라’는 뜻의 ‘카르페 디엠’을 다룬 시부터 안락사와 존엄사의 문제를 다룬 더들리 랜들의 「안락 살인자들에게」, 낮보다 밤, 삶보다 죽음이 보여줄 것들을 기대하는 월트 휘트먼의 「초원의 밤」까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죽음이 오기 전까지 삶은 계속되므로 살아 있는 자들은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

“모든 삶은 죽음의 자리에서 생겨나고,
그렇게 생겨난 삶은 때가 되면 죽음의 자리로 가서
다른 생명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죽음의 풍경을 둘러보러 나섰던 저자가 산책을 마치고 알게 된 진실은 ‘삶에서 죽음이, 죽음에서 삶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도널드 홀은 「내 아들, 내 사형집행인」이라는 시에서 아들을 사형집행인이라 부른다. 아이가 성장한다는 것은 “시간이라는 사형집행인”이 형을 집행하러 오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모의 죽음 위에 자식의 삶이 세워”진다. 자식이 자라 부모가 되면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서 사형집행인의 모습과 불멸의 생명을 동시에 보게” 된다. 삶-죽음의 순환 관계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주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재고하게 한다. 그럼으로써 죽음은 유한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이에게 위로가 된다.

내가 연인을 꼭 안고 있을 때
그녀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고 있었네.
나는 우리 밑에 평화로이 누워 있는 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네.
불쌍한 사람들! 무례한 짓을 하려 하지 않았으니
용서해주기를 바란다네.
우리는 죽은 이들이
살아 있는 이들의 환희에 화내지 않기를 바랄 뿐.

나 또한 죽어 누워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질 때,
지나가는 두 연인이
내 위에서 약혼을 맹세하기 바라네.
오 내가 그들이 속삭이는 맹세를 듣고
슬퍼하리라 생각하지 말게.
그들의 사랑이 새 생명을 잉태한다면
나는 기뻐하겠네.
_로버트 윌리엄 서비스, 「죽음과 삶」

“이 책이 일깨우는 중요한 점은 죽음의 의미를 소멸의 미학 속에 밀봉하지 않고 삶의 새로운 창조를 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 오직 “삶과 죽음에서 밝혀야 할 비밀이 있다면 이것뿐이다.” 이것이 죽음의 구원일 수 있다.” _「추천의 말」에서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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