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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와 번역서를 중심에 둔 독특한 발표…“지성의 나침반 역할 하겠다” 
저서와 번역서를 중심에 둔 독특한 발표…“지성의 나침반 역할 하겠다” 
  • 최익현
  • 승인 2022.07.12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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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춘계학술회의
‘한반도의 정치 공간과 시대변화를 읽는 사유의 힘’

저작과 번역 통해 '말하고 묻는' 방식의 색다른 접근
앞으로 시대상황은 근대문명의 복합적 위기와 한반도 지정학적 특성 관련 위기 가능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정세가 긴장의 파고를 높이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역학 관계에도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학회장 강상규 방송대 교수·일본학과)가 ‘한반도의 정치 공간과 시대변화를 읽는 사유의 힘’을 주제로 2022년 춘계학술회의를 개최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6월 25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방송대 대학본부 열린관 대강당에서 진행된 학술회의는 제1부 ‘역사 속 한반도의 정치 공간의 다이나미즘: 저작을 통해 말하다’, 제2부 ‘전환기의 정치와 사회를 읽는 사상가의 눈: 번역을 통해 묻다’로 진행됐다. 학회 발표가 개별 연구자들의 논문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 학술회의는 ‘저작’과 ‘번역’을 통해, 말하고 묻는 방식이라는 조금 색다른 접근을 선보여 흥미로웠다. 

지난 6월 25일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춘계학술회의가 열렸다. 사진=강상규 교수 제공

학회 지향점 확인해준 발표들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학회장에 연임된 강상규 교수는 학회장 인사말을 통해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가 지향하는 정신과 가치는 ‘동서양 사이의 긴장, 남북 간의 파고 속에서 균형을 잡아가며 우리 민족이 성공적인 항해를 할 수 있도록 지적인 나침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말하면서,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지켜야 할 가치와 바꿔야 할 가치 사이에서, 깨어있기에 끊임없이 흔들리며 늘 새로이 균형을 찾아가는 지성의 나침반 역할을 우리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가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라고 밝혔다. 

이날 발표된 논문은 제1부 「소중화 조선, 대마도를 정벌하다」(박홍규·고려대), 「태종의 공신·외척세력 제거의 정치적 의미」(박현모·여주대), 제2부 「『만들어진 종교』: 메이지 일본을 관통하는 종교라는 물음」(이예안·한림대), 「코로나19 시대의 사회 감정: 마사 누스바움의 『혐오와 수치심』을 중심으로」(조계원·고려대)다. 철저하게 저작과 번역서를 중심으로 ‘말하고’, ‘묻는’ 학술대회였다. 발표 후 이택휘 전 서울교대 총장의 사회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어떻게 바꿔 미래를 열어갈 것인가’를 주제로 발표자와 토론자 등의 종합토론이 예정됐지만, 발표가 길어지는 바람에 아쉽게도 폐회사에서 전체 내용을 정리하는 것으로 대체됐다. 

번역서를 놓고 논의를 펼친 2부보다 저작을 중심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친 1부를 중심으로 이날 춘계학술회의의 지적 풍경을 복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다만, 이예안이 메이지 말기 일본이 종교의 개념과 영역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짚으면서 ‘도덕’의 종교화를 지적한 부분은 곱씹을 만하다. 그는 ‘도덕의 종교화’를 두고 “20세기 전반기 일본의 ‘문제적 종교’로서 국가신도, 국체론, 천황제국가주의를 설명할 수 있게 하는 핵심 논리”라고 강조했다. 

또한, “누스바움은 우리가 불가피한 취약성을 지닌 동물적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희망이 없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나아가라고 말한다”라고 지적한 조계원의 발표도 흥미롭다. 그는 경쟁에 내몰리고 위기감에 사로잡힌 이들이 “사회적 약자를 ‘무임승차자’로 혐오하고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정책을 지지할 수 있”는 현실이기에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역량(capability)”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누스바움의 주장을 거듭 강조했다. 

‘소중화 질서’ 확인과 ‘토사구팽’의 재해석

제1부 논의는 각각 『태종처럼 승부하라』(푸른역사, 2021), 『태종 평전』(흐름출판, 2022)을 바탕으로 전개됐는데,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태종’이 공통점이다. 그러나 이는 소재적 측면일 뿐, 세부적으로는 전혀 다른 문제를 천착했다. 

박홍규는 1419년(세종 1년) 5월 왜구의 침입에 대한 상왕(태종)의 대응 즉, 이 과정에서 상왕이 어떻게 상황을 활용해 ‘소중화 질서’를 구축하게 되는지를 추적했다. 박현모는 왕자의 난을 통해 집권한 태종 이방원이 외척인 여흥 민씨 세력과 공신들을 제거하는 과정을 재조명함으로써, 월나라 재상 범려(范蠡)의 말에서 유래한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정치세계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상기했다. 전자는 15세기 초 정치질서로서의 ‘소중화’라는 의식과 이의 현실적 발현이란 문제를 제기했다면, 후자는 ‘토사구팽’이 오늘날 정치 현장에서도 주요하게 활용될 수 있는 현실적인 정치적 결단임을 환기했다. 

신하들의 대마도 정벌 반대론을 물리치고 자신의 뜻을 관철했던 상왕(태종)의 정치 행위에서 박홍규가 읽어내려 했던 것은, 대마도 정벌의 진짜 목적이었다. 여기서 발표자는 기존의 ‘명의 정왜론(征倭論)’이 아닌 ‘조선의 국가전략과 그에 따라 실행된 대 일본 정책’이라는 맥락을 좀더 강조했다. 그 결과, “조선의 중화공동체 전략에 따라 대 일본 기미정책을 추진하던 상왕이 왜구의 침략을 받게 되자, 왜구의 근거지인 대마도를 습격해 왜구를 응징하고, 대마도주의 항복을 받아내서 손상된 대 일본 기미정책을 관철시키려고 했다는 점”을 읽어냈다. 

강상규 학회장은 "근대문명 전체를 종합적으로 직시하면서 지혜로운 해법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진=강상규 교수 제공

박현모의 발표문 가운데 인상적인 대목은 다음이다. “문제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정치사에서 발견되는 자연스러운 순리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거나 그 점을 무시하는 사람들이다. 사냥이 끝났는데도, 여전히 활과 사냥개를 사용하겠다는 사람이나, 국가라는 새로운 공동체가 세워지고, 선거가 끝났는데도 가(家)의 이익이나 당파적 목적에 매몰돼 있는 사람들이 그 예다.” 여기에 ‘위국(爲國)’ 즉, 국가를 만든다는 것의 정치적 의미가 있다는 해석이다. 공신이었던 하륜과 조영무가 온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들이야말로 ‘위국’의 의미를 깨닫고 ‘삶아지기[烹] 싫어 스스로 물러나 숨으려[藏] 애썼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박홍규의 발표에 토론자로 나선 송종호(방송대)는 기존 논의에서 탈피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발표자의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세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요약하자면 첫째, ‘중화공동체’와 ‘소중화 조선’이라는 세계 속에 일본 막부의 위치는 어떠했나.

둘째, ‘태종=정치적 리얼리스트’라고 설명했지만, ‘소중화 조선’이란 유교적 명분론에 입각한 이념을 추구하기 위해 대마도 정벌에 나선 태종의 정치 행위는 ‘정치적 리얼리스트’로서의 외교정책이라 할 수 있는가.

셋째, 태종과 세종의 대 일본 정책 상의 차이와 그것이 조선-일본 관계에 미쳤던 영향을 오늘날 한일관계에서는 어떻게 참고할 수 있을까. 일본 막부의 위치에 대한 좀더 치밀한 논의와, 리얼리스트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유교적 명분론’에 치우친 것은 아니냐는 반론이다. 

토사구팽의 의미를 강조한 박현모의 발표에 대해 토론자 소진형(서울대)은 “왕권이 강하지 않은 상황에서 외척과 공신을 제거하는 것은 역으로 왕권을 더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렇다면 태종이 외척과 공신을 수월하게 제거할 수 있었던 조건이 무엇이었는지가 궁금하다”라고 운을 떼면서 “태종과 민씨 집안 사이에 어떤 사건들이 있었고, 그 사건들을 태종이 해석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인가?

민씨 집안의 변명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태종이 민씨들의 불충과 욕망을 언급하는 것을 우리가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태종대의 공신들이 여전히 등용되거나 제거되는 것을 유형별로 나누는 것이 과연 ‘공신’에 대한 문제일지, 아니면 일반적인 ‘신하’에 대한 것일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 

‘지금, 여기’와는 다른 시공간을 탐색하는 의미

강상규 학회장은 폐회사에서 “우리가 지금 그리고 앞으로 경험할 시대 상황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근대문명의 복합적인 위기의 측면과 함께,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과 관련된 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역사적 경험을 반추해가면서 답안을 찾아갈 필요가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문명 전체를 종합적으로 직시하면서 지혜로운 해법을 마련해가야 한다”라고 지적하면서, “‘한반도의 정치공간과 시대변화를 읽는 사유의 힘’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오늘의 발표와 토론은 이러한 고민에 대한 해법을 ‘지금, 여기’와는 다른 시공간을 넘나들며 탐색해보려는 문제의식 속에서 이뤄졌다”라고 의미를 매겼다.

최익현 편집기획위원 editor@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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