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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업데이트된 마르크스 GPS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업데이트된 마르크스 GPS가 필요하다
  • 신현우
  • 승인 2022.07.1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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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18 ‘비인간’ 정보기술 자본주의 연구

<교수신문>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연재를 시작하며: 새 세대 한국 인문사회 연구자를 만난다

핵심은 ‘비인간(non human)’화이다. 
놀이하는 사람들, 시장에서 흥정하고 거래하는 사람들, 
공동으로 채집·채굴하는 사람들의 만남들은 
노드와 P2P, 알고리즘과 인공지능, 데이터와 아바타로 대체된다. 
“그건 내가 아니라 인공지능이 결정한 것이니, 나한테 이러지 말고 인공지능에게 따지시오!” 
이제 항의하는 노동자들은 뻔뻔한 자본가가 아닌 이들 비인간과 먼저 마주하게 된다. 
인간만이 노동하고, 인간만이 가치를 만들어내며, 
자연이 인간을 중심으로 조직화되어 있다는 
기존의 믿음으로는 이 거대한 변환을 이해하기 어렵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한계에 도달한 이윤율 저하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변곡점들을 스스로 창출한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테크 기업들은 이용자들의 활동을 데이터화 하고 수집하며, 가장 효과적인 상업화 알고리즘을 도입해 가치 실현의 새로운 영토들을 독점 지배한다.

정보기술의 탈영토화를 이룬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스스로 일하게끔 만들고, 공물을 납부하도록 강제한다. 임금노동이 밀려난 자리에 프리랜스·긱·일용직·품팔이·자영업·제로아워 등 다양한 비 임금노동 형태들이 투과되고 있는 것이다. 1인 방송 크리에이터들, 유튜브 영상 편집자들, 플랫폼 데이터 라벨링 작업자들, 소셜미디어의 인플루언서들, 요식 자영업자들과 배달 라이더들이 이 블랙박스에 접속된 채 살아간다. 

담론 생산력 떨어진 좌파 학문공동체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더 큰 변곡점들이 융기하는 중이다. 웹 3.0, 라이프로깅, 메타버스 등 신기술 혁신담론과 블록체인, 인공지능의 파고가 몰려온다. 복잡하게 겹쳐진 자본주의 위상학적 시공간은 문화창조노동과 시청행위를, 요리와 배달노동을, 물류와 마케팅을, 인간의 주목과 사치품 판매를, 광고와 지대를, 친밀감과 알고리즘을, 원자(atom)의 경제와 비트(bit)의 경제를 정보기술로 결합시켰다.

화폐가 암호화폐로 우회되고, 작업증명 데이터를 ‘디지털 원본성’으로 둔갑시키며, 게임플레이를 노동으로 전유한다. 이 복잡한 모자이크는 인간/자연, 물질/문화, 주체/객체, 정신/기술이라는 이원론적 구도에서 노동가치를 추적하는 마르크스 등대지기들에게 큰 어려움을 안겨주고 있다.    

 이에 반해, 좌파 학문공동체는 담론 생산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인공지능, 메타버스, 블록체인 등 신기술에 대항하는 언어들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오래된 마르크스주의·비판 문화연구자들은 복잡한 정보기술에 대한 문해력이 낮을뿐더러 고매한 진정성을 버리지 못해 기술문화의 대중적 영역으로 들어갈 시도 자체를 좀처럼 하지 않는다.

예컨대 온라인 게임 아이템 경제에 정치경제학 비판을 시도하거나, 유튜브 크리에이터·편집자들의 작업, ‘탈중앙화’ 블록체인에 대한 노동과정 분석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소위 ‘하위문화’ 이거나, 노동가치론의 논의 대상이 아닌 미시영역인 것이다. 20~30대 청년들의 노동 시간과 여가 시간의 대부분이 암호화폐, 게이밍, 유튜브, 소셜미디어로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장 『자본론』을 들고 ‘제페토’나 ‘로블록스’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인데 기성 마르크스·비판 문화연구자들 대부분은 이게 뭔지조차도 모른다. “요즘 젊은 연구자들은 전태일도, 머리띠도 알지 못하는군!” 같은 태도로는 오늘날 정보기술 현실에서 대항문화도 대항담론도 불가능하다. 이런 몰이해 속에서 문화연구는 탈정치화되고, 마르크스를 새롭게 연구하고 갱신하고자하는 노력은 좌절되고 있다. 

‘비인간’ 정보기술 자본주의의 파국에 대응하기 위해, 진보와 혁명을 향한 이론도, 현장 실천도 시스템 업데이트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8회 맑스코뮤날레 공식 포스터. 왼쪽 사진=펙셀

비인간의 위상들: 블록체인, 게이밍, 인공지능

자본의 초공간 도약은 코페르니쿠스의 좌표계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대표적인 예가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은 노동과 상품유통, 화폐교환에 대한 중앙통제라는 기존의 제어방식을 완전히 우회한다. 블록체인은 개인 단위의 노동과정이 아니라 노드 단위의 탈중앙화 작업을 기반으로 한다. P2P로 연결된 노드들이 공동 작업하지만 소수의 노드들에게만 보상(암호화폐)이 주어진다. 정부, 은행 같은 자본주의 중재 기구도 이를 통제하지 못한다.

블록체인의 탈중앙화(decentralisation) 로직 자체가 하나의 분산기술 플랫폼이 되고 있다. Dapp(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 DAO(탈중앙화 자율조직), DID(탈중앙화 신원인증), Defi(탈중앙화 금융) 등 새로운 기술 체계와 분업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신기술은 NFT(대체불가능토큰) 등으로 파생되어 미술품 거래 및 투기, 게임아이템 거래, 메타버스 플랫폼에서의 생산물 창조 및 교환에도 적용되는 중이다. 글로벌 사우스에서 전례 없이 많은 노동인구가 P2E게임과 메타버스에서의 작업에 동원되고 있으며, 점차 지구 전체로 확산되는 중이다.

메타버스에서 아바타가 입을 옷의 로고를 제작하고, 여기에 NFT로 원본증명을 넣은 후 이더리움으로 거래를 한다. 암호화폐 거래 수수료(이 또한 암호화폐)가 작업증명 그리드에 할당되고, 그 중 소수의 노드로 이뤄진 풀(pool)이 보상을 가져간다. 거래가 완료되면 다시 메타버스 플랫폼업자가 거래 수수료를 떼어간다.

이렇게 번 암호화폐를 환전하는 과정에서 암호화폐 거래소가 다시 환전 수수료를 수취한다. ‘유명 아이템 제작자’ 라는 명성을 획득하기 위해 소셜미디어에서 홍보 활동을 하고, 유튜브 영상을 업로드한다. 구글이 광고 수수료를 떼어가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이 활동을 추적해 이용자들을 끝없이 연결한다.

아마존의 알고리즘은 이들의 활동을 분석해 최적화된 상품 판매 마케팅을 펼친다. 제품 판매자들은 자신의 광고를 매칭시키기 위해 옥션 알고리즘에 연결된다. 소셜미디어의 피드는 광고를 이용자들에게 맞춤으로 노출시킨다. 빅데이터 분석으로 탄생한 인공지능은, 이런 작업들을 자동화하고 자율화한다.

배달플랫폼의 인공지능 배차시스템, 인간 자연어와 이미지 처리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GPT-3’, 차별, 혐오를 학습한 인공지능 ‘테이(Tay)’와 ‘이루다’ 등은 언제든지 휴머니티를 대체하거나 신체·마음의 작업을 탈 숙련화할 준비가 되어있다. 

핵심은 ‘비인간(non human)’화이다. 놀이하는 사람들, 시장에서 흥정하고 거래하는 사람들, 공동으로 채집·채굴하는 사람들의 만남들은 노드와 P2P, 알고리즘과 인공지능, 데이터와 아바타로 대체된다. “그건 내가 아니라 인공지능이 결정한 것이니, 나한테 이러지 말고 인공지능에게 따지시오!” 이제 항의하는 노동자들은 뻔뻔한 자본가가 아닌 이들 비인간과 먼저 마주하게 된다. 인간만이 노동하고, 인간만이 가치를 만들어내며, 자연이 인간을 중심으로 조직화되어 있다는 기존의 믿음으로는 이 거대한 변환을 이해하기 어렵다. 

진보 이론도 현장 실천도 시스템 업데이트 요구

가장 큰 문제는 국내 학문 공동체 전체가 마르크스를 낡은 골동품처럼 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류가 왜 위대한지를 인문학 개념으로 풀이하고 정책입안에 적용하는 패션연구, 경제적 효용성만 강조하는 신산업 담론과 여기에 종사하는 개량 연구(메타버스를 활용해 교통신호등을 만들자는 등)는 넘쳐난다.

문제는 실적·양적연구 중심의 정량평가 시스템 속에서 마르크스나 비판이론을 선택한 연구자들은 살아남을 길이 없다는 데 있다. 이러니 유수의 대학에 자리 잡은 원로 비판연구자들 사이에서도 패배주의가 전염병처럼 퍼져나간다. 좌파 학문 공동체 스스로가 후속세대를 키우고, 지속가능한 대항 담론을 생산하는 데 흥미를 잃었다. 마르크스는 낡았으며, 요즘 청년들에게 『자본론』을 독해할 능력 따윈 없을 테니 가르치는 것도 진작에 포기하는 식이다. 재생산이 멈추니, 악순환은 반복된다.

좌파 마르크스주의는 여전히 고전적인 이데올로기 분석과 비물질노동/정동노동 이론에서 업데이트가 안 된다. 비판적 문화연구는 여전히 텍스트, 언어, 상징계, 구조에 붙들린 채 좀처럼 나아가질 못한다. 이런 답보 상태에서 오늘날 자본주의는 수많은 전태일들을 사이보그화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인공지능이 노동 분업을 조직하고, 노동이 가상(게임)화되어 사람들은 그것이 착취인지 알지 못하며, 시장교환을 암호화폐가 대신하는 생명기술정치는 이미 펼쳐지기 시작했다. 탈중앙화된 정보기술에 의해, 버려진 자들을 태운 뗏목은 육안으로는 관측할 수 없는 위상들의 틈바구니로 표류한다. 이 이도공간에서 뗏목을 찾아내기 위해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마르크스의 위상 GPS 시스템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는 업데이트된 마르크스를 필요로 한다. 지쳐 잠든 마르크스 등대지기들은 잠을 깨야 하고, 천문학도들은 우주 탐사가 아니라 방파제로 와야 한다. 이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인공위성을 하늘에 쏘아 올릴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비인간’ 정보기술 자본주의의 파국에 대응하기 위해, 진보와 혁명을 향한 이론도, 현장 실천도 시스템 업데이트를 요구하고 있다. 

신현우 서울과기대·한예종 강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상문화연구로 석사학위를, 서울과학기술대에서 정보기술 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디지털 플랫폼과 게이밍, 정보 커먼즈,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에 걸쳐진 자본주의 시공간에 펼쳐지는 노동과 기술의 문제를 미디어 정치경제학과 비판이론의 접근으로 탐구하는 연구자이다. 박사학위논문에서 디지털 게이밍과 1인 방송·영상 플랫폼 속 ‘플레이노동(playbour)’ 의 현실을 분석했으며, 최근에는 메타버스-P2E게임-암호화폐·NFT로 연결된 크립토자본주의(crypto-capitalism)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주요 학술 논문으로는 「메이커문화의 플랫폼화 비판: 중국 선전의 메이커스페이스 사례를 중심으로」(2020), 「정보기술 환경에서의 문해력과 노동의 접합: 상징궁핍과 디지털 지대경제의 격자구조 비판」(2020), 「디지털 게임의 대중미학 에르고딕 연구: 컴퓨터-문화 조형행위의 인식적 지도그리기」(2021) 등이 있고, 저서로는 『사물에 수작부리기: 손과 기술의 감각, 제작문화를 말하다』(2018,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향하여』(2022, 공저), 『위기와 성찰의 뉴노멀 시대』(2022, 공저) 등이 있다. 계간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문화연대 집행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대학원에서 디지털 문화이론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아트&테크놀로지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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