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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위트컴
리차드 위트컴
  • 최승우
  • 승인 2022.07.08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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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준 지음 | 호밀밭 | 224쪽

1950년 일어난 6·25전쟁은 휴전 이후에도 온 국토에 깊은 흉터를 남겼다. 도시는 폐허로 변했고, 그 기능을 수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특히나 피란민들로 북적이던 부산은 곳곳에 세워진 천막 등으로 인해 화재에 취약했다. 1953년 1월 국제시장 대화재를 시작으로, 같은 해 11월에 일어난 부산역전 대화재는 조금씩이나마 재건을 이루며 일상을 회복하던 부산 시민들의 희망을 삼켜버렸다.

모두가 좌절에 빠져있을 때, 미군 창고를 열어 3만 명의 이재민에게 잠을 잘 수 있는 텐트, 의류, 침구류, 식량 등 군수물자를 긴급하게 지원한 이가 있다. 바로 유엔군 부산군수기지사령관으로 복무하던 리차드 위트컴이다. 위트컴 장군은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이재민 중 누구라도 굶거나, 잠잘 곳, 진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없을 것”이라고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 위트컴 장군이 지원한 텐트에서 누군가는 삶을 이어가고, 누군가는 미래를 꿈꿨다.

정작 위트컴 장군은 부산 시민에게 베푼 선행으로 되려 고초를 겪었다. 군수물자를 함부로 지원했다는 이유로 준법 회의에 회부되고, 미국 의회 청문회까지 불려갔다. 하지만 그는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War is not done with sword nor the rifle. Genuine triumph is for the shake of the people in the country)”라는 말로 미국 의회를 설득했고, 기립박수와 함께 많은 구호금을 받아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이후로도 리차드 위트컴은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찾고, 이를 활용해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전쟁의 여파와 잇따른 화재로 피폐해진 부산 시민들에게, 위트컴 장군의 리더십과 인류애는 그야말로 ‘종합예술’이자 ‘선물’이었다.

박주홍 교수는 부산의 재건 과정에서 발휘한 위트컴 장군의 리더십을 ‘종합예술’이라고 표현한다. 박 교수는 “도시가 폐허로 변해버린 상황에서 걱정하거나 관망하기보다 가용한 모든 자원을 찾고, 이들을 통합해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해결책에 집중했다. 여기에는 그동안 축적된 장군의 모든 경험과 지식이 총동원됐다. 위트컴의 리더십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평가했다. -41p

ㆍ 메리놀병원 건립기금 지원, 이주민 후생주택 건립
보육 및 요양 시설 건립, 부산대 장전캠퍼스 부지 마련...

ㆍ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진짜 ‘부산사나이’
리차드 위트컴이 남긴 선행과 희망을 기록한 첫 번째 책

리차드 위트컴은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장군’으로 불렸다. 그는 메리놀병원 건립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예하 부대원의 월급 1%를 헌금하도록 했고, 직접 한복 차림에 갓을 쓰고 시내를 활보하며 모금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이외에도 이주민 후생주택 건립, 보육 및 요양 시설 건립, 부산대 장전캠퍼스 부지 마련 등 곳곳에서 그의 선행을 확인할 수 있다. 리차드 위트컴은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유일한 장성이기도 하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그의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리차드 위트컴』은 위트컴 장군에 대한 기억을 복원하고자, 그가 보여준 빛나는 선행과 희망의 흔적을 한데 모은 최초의 단행본이다. 국제신문의 편집국장이자 2021년 제2회 한국바른언론인대상(지역언론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던 오상준 기자가 위트컴 장군의 흔적과 생애를 돌아보며, 흩어져 있던 여러 자료를 선별해 하나의 저서로 엮었다.

『리차드 위트컴』에는 위트컴 장군이 부산에 베풀었던 구체적인 선행(1부)은 물론, 평생의 연인이었던 한묘숙 여사와의 국적과 나이를 뛰어넘은 러브스토리(2부), 그가 남긴 흔적들을 살펴보고 재조명한다(3부). 또한 부산에 오기 전 위트컴의 삶은 어떠했는지(4부), 부산이 간직한 전쟁의 상흔은 무엇이 있는지(5부), 마지막으로 여러 전문가의 칼럼을 통해 리차드 위트컴이라는 인물을 폭넓게 읽어내려 시도한다(6부).

“‘부산사나이’다운 면모를 보였던 리차드 위트컴을, 이제는 부산 시민이 기억하고 재조명하며 의리를 지킬 차례”라는 저자의 말처럼, 소홀했던 역사를 돌아보는 과정은 한국 근대사의 한 장면을 복원하는 동시에 지역의 중요한 기억자산을 가꾸는 일이기도 하다. 오는 2022년 7월 12일이 위트컴 장군의 추모 40주기인 만큼, 그의 생애와 업적을 담아낸 『리차드 위트컴』은 독자와 시민들에게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다.

나아가 부산시가 2030 월드엑스포 유치에 뛰어든 상황에서 위트컴 장군의 인류애와 전후 재건 활동을 공유하고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개발도상국의 지지를 얻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2030 부산월드엑스포를 유치하기 위해 공적개발원조(ODA)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위트컴 장군의 활동은 부산형 ODA의 원조이자 구체적 사례로 꼽힌다. 위트컴 장군을 통해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탈바꿈한 성공 스토리를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위트컴 장군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부산시민의 가슴 속에 남아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222p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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