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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일시적 해외 거주를 넘어 공존의 디아스포라로
태국: 일시적 해외 거주를 넘어 공존의 디아스포라로
  • 최승우
  • 승인 2022.07.0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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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구 지음 | 눌민 | 296쪽

초국적 특성을 지닌 재태한인, 다양한 재태한인의 목소리로 재현해낸 입체적인 삶의 증언
이 책은 태평양전쟁 시기 일제가 많은 한인을 포로 감시원, 공사작업 노무자 등으로 끌고 가면서 시작된 재태한인의 이주와 정착의 초기 역사를 다양한 자료를 통해 여러 각도에서 면밀히 살펴보고, 이후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각 시기별로 재태한인이 거주국 태국 사회에 어떤 경로와 동기로 이주했으며 그 과정에서 개인과 민족의 정체성, 정치적 성향은 어떤 방향으로 변화했는지 50여 명의 심층 인터뷰와 방콕 거주 458명의 한인 설문조사를 통해 생생하게 담아냈다.

특히 1980년대 중반부터 태국을 드나들며 변화하는 태국 한인 사회를 직접 목격하고 방콕 치앙마이대학교에 교수로 초빙되면서 본격적으로 한인 사회를 연구해 다수의 태국 관련 책까지 쓴 부산외국어대학교 총장 김홍구 교수의 밀도 높은 분석은 태국 한인 사회의 현주소뿐 아니라 미래 전망까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저자는 재태한인의 이주 현상을 거시적 측면에서 초국가주의적transnational 문화의 흐름이라고 전제한다. 최근의 국제 이주는 단순히 한 사회에서 다른 사회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둘 이상의 장소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연계를 유지하는 초국가적인 면모를 갖는다고 보는 것이다. 초국적 이주민transmigrants은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며, 이중적 언어를 구사하고, 두 국가에 두 곳의 거주지를 유지하며, 이 두 곳에서 정치·경제·문화적 이해를 추구한다. 즉 한 국가에 고정되어 있는 단일 정체성이 아닌 다중적이고 가변적이며 혼종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 책에서는 일반적으로 디아스포라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주제들-이주, 적응, 정체성-을 재태한인(교민과 체류자)의 경험에 적용해보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 한인들이 태국으로 이주하게 된 동기와 과정, 일상적 삶 속의 생활양식과 정체성, 한인과 현지인 사이의 관계와 갈등 양상, 한인의 현지 사회에 동화되는 과정과 초국적 정체성에 대해 파악해보았다.

또한 한인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을 동질 집단으로 보는 단일동족집단모델mono co-ethnic group model이 아니라 ‘다자적 동족집단모델multilateral coethnic group model’을 채택해 이른바 태국 한인 사회에서 최상위층이라는 주재원에서부터 최하위층이라고 일컫는 한국인 가이드까지, 다양한 계층 집단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뿐만 아니라 지역적으로 떨어져 있고 상대적으로 역사는 짧지만 모범적인 한인회 활동 모습을 보여주는 치앙마이 한인회만이 가진 특수성까지 살펴보았다.

시대별 이주 동기의 변화와 재태한인 사회의 성장
태국 이주의 최초 세대(1930~194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징집병) 또는 군속으로 징용되어 태국 혹은 동남아 지역에 진출, 정착하였거나 일제강점기 시대 중국 등에서 거주하다 종전 후 태국에 이주한 사람들이다. 이후 의미 있는 역사적 맥락에 따라서 태국 한인 이주사는 대개 3개 정도의 시기 구분-6.25전쟁 직후(1950~1960년대), 베트남전쟁 시기(1970~1980년대), 1980년대 중반 이후-이 가능하다.

주요 이주 동기가 되었던 제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끝났으나 이민 1세대가 귀국하지 않은 까닭은 당시 한 끼 제대로 먹기도 힘들었던 고국에 비해 태국은 ‘곡물창고’라고 불렸을 정도로 식량 사정이 넉넉했기 때문이었다. 1950~1960년대의 이주 동기는 6.25전쟁, 전후 국가 건설 과정에서 해외 진출 시도 및 해외이주법 제정 등을 들 수 있다. 이때부터 선교사, 연예인, 유학생, 유엔 기구 직원, 건설회사 직원, 여행·호텔업자 등이 태국에 유입되면서 교민 사회의 인적 구성이 다양화되기 시작했다. 베트남전쟁은 재태한인 사회의 발전에 또 다른 계기로 작용했다. 우리나라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하고 있을 때 태국은 파월 장병들의 공식 휴가지였기 때문에 이들을 상대로 한 관광산업이 호황이었다.

태국은 동남아 국가 중 한국과 50년 이상의 수교 역사를 갖는 3개국 중 하나이며(필리핀 1949년, 태국 1958년, 말레이시아 1960년 외교 관계 수립), 1970년대까지만 해도 동남아에서 교민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 한인들이 뿌리를 내린 안정도 측면에서 최고의 국가이기도 했다. 한국 건설사가 19966년대 최초로 태국 도로 건설 산업에 진출했고 한국 항공사로서는 처음으로 대한항공이 1969년에 태국에 취항했다. 대체로 1980년대 중반까지(정착형 이주자가 다수인 때)는 아직 태국 이주자 수가 많지 않았고 이주 동기로는 경제적 이유가 중요했지만 다른 이유도 상존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재태한인 사회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었다. 1985년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미국의 달러화 강세를 완화하려는 목적으로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의 재무장관들이 맺은 합의) 결과와 1987년 민주화와 노동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신발, 완구, 섬유 등의 수출형 노동집약적 업종들이 공장 운영이 어려워지자 대거 태국과 동남아 등지로 진출했다. 이로 인해 한국 투자 진출 증가 등 한·태 경제협력 관계 증진에 따른 상사원 및 투자업체 직원 등이 급증했다. 이 시기는 태국의 공업화와 산업화가 활발히 진행되는 기간으로 태국 경제는 1987년 이후 급속한 수출 신장을 바탕으로 유사 이래 볼 수 없었던 고도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1987~1990년 연평균 두 자리 수 이상의 경제성장률 증가를 보였다.
여기에 더해 1989년 한국의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에 따른 한국인 관광객의 급증으로 한인들이 급격히 태국에 유입되었다.

이때의 이주로 태국 한인은 특수한 존재 양태를 갖게 되었는데 바로 ‘정착형 이주자settler’보다는 ‘일시적 해외 거주자sojourner’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당시 이주한 한인은 태국의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취득해도 실익이 별로 없는데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 1981년 우리나라와 태국 간에 비자면제협정이 체결되면서 양 국가의 국민은 상대국에 90일간의 무비자 체류가 허용되었다. 그래서 잠시 인근 국가로 출국했다 다시 입국하는 비자런visa run을 이용해 체류기간을 편법으로 연장하며 생활한 것이다. 이로 인해 재태한인 사회의 초국적 특성이 더욱 심화되었다.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는 한국과 동남아 국가에 큰 충격을 주었고 동북아와 동남아가 서로 별개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단위이자, 나아가 하나의 동아시아라는 지역으로 묶일 수 있는 단위라는 인식이 생겼다. 그 결과 정치경제 결속이 빠른 속도로 발전했으며 인적ㆍ문화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2000년대 초 초국가주의 현상으로서 ‘재태한인의 대규모 이주 현상’ 중 눈에 띄는 것은 한류와의 관련성이었다. 태국 속 한류는 재태한인 이주 현상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태국 내 한류는 영화·TV 드라마·케이팝 등은 물론이고 온라인 게임·음식·화장품·한국어 교육 등 전방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와 관련해 태국 내에서 사업하는 한인들도 나타나고 있다.

태국 한인의 일상적 삶과 사회계층의 분화와 갈등
재태한인은 대체로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기에 대다수가 태국 사회에 동화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들은 태국어 구사 능력이 부족하고, 한국어는 거의 모든 가정과 한인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며, 한국식의 가치관과 규범도 유지하며 산다. 한국식 명절이 지켜지고, 조상숭배도 행해진다. 태국인과의 결혼이 드물며, 한국식의 이름과 성을 그대로 사용한다. 또 현지 사회의 결사체나 조직 참여도도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태국 이주의 역사가 오래되고 이주 동기 역시 다양해지며 교민 사회는 여러 분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이주해온 한국인들은 현지 사회에 문화적으로 적응하는 과정에서 모국의 문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체류 국가의 새로운 전통과 문화도 수용하는 통합 유형을 보이고 있다.

태국 한인 사회에서 문화 적응 및 정체성과 관련해서 경제력과의 관계를 주장하는 독특한 의견도 찾아볼 수 있다. 사회경제 지위에 따라 한인들이 상당히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며 “돈 없으면 정체성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돈 있는 사람은 자기 뿌리에 대한 집착이 강해 추석이나 설에는 무조건 한국에 들어간다. 반대 상황에 있는 돈 없는 사람은 그러지 못해서 점차 뿌리가 없어진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민족 동일시나 애착도 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소득 상위층이 하위층보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긍정률이 대체로 높다.

교민 사회는 피라미드 사회와 같다는 주장도 있다. 제일 밑에는 가이드와 현지채용 한국인이 있고, 그 위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이며, 다음은 개인사업자, 제일 위는 대기업 주재원들이 층을 이룬다. 태국 내 최하위층은 한국인 가이드이다. 가이드는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패키지여행 자체가 많이 줄었고, 여행객들도 SNS 등을 통해서 여행 정보를 많이 확보하기 때문에 수입도 크게 축소되었다. 반면에 부유층의 삶은 완전히 다르기에 이로 인해 한인 사회에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다.
주재원과 현채 사이에서도 갈등은 존재한다. 주재원과 현채는 일상적인 삶의 적응 및 사회편입 방식(현지화)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서로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들기보다는 맞서고 적대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재원과 현채와 갈등이 실제보다 과장된 경우가 많다는 시각도 생겨났다.

방콕에 비해 라이프스타일 이주가 많아 동질성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 치앙마이 한인 사회에서는 사회문화적 초국가주의 행태와 한인 정체성을 강화시켜 주는 모범적인 한인회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태국인과 재태한인, 다름을 넘어 공존과 화합으로
1980년대 이전 한국의 태국에 대한 인식은 6.25전쟁 당시 파병을 한 고마운 국가, 국왕과 불교의 국가, 킹스컵으로 알려진 국가 정도였다. 그러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몇 차례의 계기를 통해 인적·물적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태국인은 시키는 일만 한다’라든지 ‘태국인들은 성실하지만 창의력이 부족하다’라든지, ‘태국인들은 느리고 게을러서 일을 철저하게 처리하지 못한다’ 등의 고정적인 인식이 생겼다. 한국 기업의 태국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생산공장에 고용된 태국인 노동자들과 이후 2000년대 이후 국내에 유입한 태국 노동자들을 통해서 태국에 대한 인식이 구체화된 것이다.

반면 태국인은 한국인에 대해 양가감정을 가졌다. 1968년 한국의 1인당 GNP가 태국을 앞서기 시작하자 태국인은 한국을 아리랑과 인삼의 나라, 새마을 운동을 성공시키고 빠른 경제 발전을 한 나라,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2002년 월드컵을 성공시킨 나라라고 긍정적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양국 간 교류가 본격화되는 1980년대 중후반 태국인은 한국인의 투자 초기 노동집약적 제조업 공장에서 빈번하게 발생했던 노사분규와 태국 관광 초기 한국인의 행태로 인해 부정적인 이미지도 갖게 되었다. 그들은 ‘한국인은 직설적이고 목소리가 크다’ ‘욕을 잘한다’ ‘빨리빨리, 먹고 죽자 등의 말을 잘한다’라며 인정은 많지만 별로 웃지를 않아서 무섭다고도 한다. 이 이미지는 양국의 핵심적인 역사 관계를 함축할 뿐 아니라 한인과 태국인이 현지에서 맺고 있는 관계의 두 가지 다른 양상을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나 평가는 일방적인 것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인이 태국인에 대해 가진 일반 이미지는 선천적인 유전형질에 의해 결정되기보다는 후천적인 문화 배경이나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문화 차이에 대한 몰이해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인류학자 엠브리는 태국 사회를 ‘느슨하게 구조화된 사회loosely structured social system’로 규정했다. 태국인은 집단의식이 부족하며 사회 의무와 책임의 한도 내에서, 사회에 큰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활동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질적인 문화 차이를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한인일수록 이른바 현지화가 많이 된 경우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사회문화적 실천에 상당히 성공한 한인들로서 상대방의 문화에 대한 진지한 이해와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저자는 앞으로 태국 경제가 더욱 성장하고, 한인들이 현지 문화를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교육과 훈련이 이루어지면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기고 나아가 한인들과 현지인들 간의 갈등관계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또 태국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무엇보다 태국어 구사 능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조언한다. 체류 국가의 언어 구사 정도는 곧 해당 국가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정도와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2000년대 들어서 타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젊은 재태한인의 수가 증가하고 태국 사회에 한류가 중요한 사회 현상으로 대두되면서 서로에 대한 고정 이미지를 바꾸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초석이 놓였다고 볼 수 있다. 과거 단순한 관광과 투자 진출을 넘어 한국의 발달한 IT 기술과 문화예술·인적 교류까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면 태국 한인 사회의 확대 발전을 불러올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동남아 한인 이주사 기록
이제 동남아 어디를 가도 그곳에서 삶을 일구고 있는 다수의 한국인을 수시로 목격하게 된다. 그들이 언제 어떻게 모국을 떠났으며, 낯선 땅에서 무엇을 해 생계를 유지할까? 그들에게 거주국과 한국은 각각 무슨 의미이고 어떤 정치, 경제,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살며 2세 교육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하지만 지금까지 동남아 한인 이주와 정착 사례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된 적이 없다 보니 이들에 대한 실태 파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이에 교육부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진흥사업단)이 공동으로 해외한인연구사업을 지원해 동남아 한인 사회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가 실행되었다. 총 8명의 전문 학자가 직접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브루나이 등 9개국을 방문하여 동남아 한인 이주의 역사와 현황을 포괄적이며 체계적으로 연구하였으며 그 결과물로 동남아의 국가별 한인 사회를 총체적이고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동남아 한인 연구 총서”를 발간하게 되었다.

『동남아 한인 연구 총서 4 태국: 일시적 해외 거주를 넘어 공존의 디아스포라로』는 이 총서의 네 번째 책으로 1940년대 초기 태평양전쟁 시기부터 시작된 태국 한인 이주의 역사를 시기별로 나눠 자세히 보여준다. 태국의 경우 이미 이민 1세대의 목소리는 직접 듣기 힘들어진 상황인데 더 늦기 전에 태국 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다룬 의미 있는 저서가 출간된 것이다. 태국 한인의 과거, 현재뿐 아니라 미래 전망까지 다루는 최초의 역사 민족지民族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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