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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변화 부드럽게 유도…‘넛지’가 사고 막는다
좋은 변화 부드럽게 유도…‘넛지’가 사고 막는다
  • 유무수
  • 승인 2022.07.15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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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넛지: 파이널 에디션』 리처드 탈러·캐스 선스타인 지음 | 이경식 옮김 | 리더스북 | 488쪽

선택의 자유 존중…자유지상주의적 간섭주의로서 넛지
공공의 안정성 높이려면 선택 설계인 선한 넛지에 주목

지난달 28일, 미국 버지니아주 체스터필드에서 실수로 차에 남겨두었던 아기가 숨진 채 발견됐다. 아이의 아버지는 집근처 숲에서 권총자살을 했다. 미국 어린이 안전사고 예방단체 ‘키즈엔카즈’는 조수석에 기저귀 가방 등을 둠으로써 아기가 함께 차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신호를 남기라고 조언했다(<서울신문> 「18개월 아기 땡볕 차량 비극... 아빠도 죄책감에 극단적 선택」, 2022년 6월 30일자). 이 책의 설명에 의하면 운전자가 차량에서 내릴 때 뒷좌석에 동승객이 남아 있을 경우 경고를 해주는 현대 자동차 싼타페의 ‘후석 승객 알림’ 장치는 ‘넛지(nudge)’에 해당한다. 

 

행동경제학자인 저자들에 의하면 사람은 늘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이콘(Econ)’이 아닌 ‘인간’이다. 인간은 때로는 머릿속이 흐리멍덩하며 아내나 남편의 생일도 잊어버리며 편향과 실수로 잘못된 선택을 때도 많다. 그래서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넛지가 필요하고 유용하다.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듯이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좋은 변화를 부드럽게 유도하고자 한다. 강압적인 규제, 금지, 세금 등은 넛지가 아니다. 넛지는 ‘자유지상주의적 간섭주의’를 유지한다.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는 선택 설계가 있으며, 사소하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넛지가 사람의 행동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의 남자 화장실 소변기에는 특정 위치에 검은색 파리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파리 이미지는 소변이 주변으로 튀는 것을 대폭 감소시켰다. 슈퍼마켓에 차례를 기다리는 곳에 페인트 줄을 그어놓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거리를 유도할 수 있다. 시카고 레이크 쇼어 도로의 S자로 굽은 길이 연달아 나오는 구간에는 일련의 흰색 가로선이 그어져 운전자가 본능적으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 속도를 줄이는 효과를 내게 함으로써 교통사고를 줄였다. 파리 그림, 페인트 줄, 흰색 가로선 등은 모두 넛지를 이용한 것이다. 선택 설계는 악용될 수도 있다. 1938년 독일의 투표용지는 히틀러의 정책에 찬성하는 ‘예’라는 선택지는 ‘아니오’보다 훨씬 크게 그려져 있다. 이는 ‘예’를 쉽게 선택할 수 있게 유도하는 넛지다.

저자들은 넛지와 반대로 ‘사람들이 원하는 바람직한 결과를 얻기 어렵게 만드는 선택 설계의 어떤 측면’을 해시태그 기호를 붙여 ‘#슬러지’라고 이름 지었다. 슬러지는 ‘질척질척한 진흙, 산업 및 정제 과정에서 비롯되는 혼합물, 엔진이나 배수구의 폐기물’을 뜻한다. 체육관에서 회원탈퇴를 어렵게 만든 것은 슬러지다. 정부기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요식절차에는 슬러지가 많이 끼여 있다. 경제적 혜택을 받고자 하는 가난한 사람이 어려운 웹사이트를 방문해야 하고, 수많은 문제에 답변해야 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질문목록들이 포함돼 있다면 슬러지를 당하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이 새로운 건물을 세울 때 건축을 맡은 회사는 교수들이 서로 우연히 만나는 기회를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건축회사는 교수 연구실을 그 건물에서 가장 높은 3개 층에 배치하고 열린 계단으로 연결되도록 설계했다. 교수들이 우연히 쉽게 자주 마주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도록 장려하고 싶다면, “그 일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공공정책에서 공공의 안전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라면 정책 입안자는 가장 안전한 선택이 가장 쉬운 선택이 되도록 ‘선택 설계’를 해야 한다. 저자들은 공공정책이나 경영 분야에서 ‘선한 넛지’가 실현되는 세상을 강조했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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