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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독일의 동아시아 연구동향
[해외통신] 독일의 동아시아 연구동향
  • 신진욱/독일통신원
  • 승인 2001.07.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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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1 10:08:27
‘동아시아’는 오늘날 한국 지식인들의 토론장에 점점 더 빈번히 등장하는 중요한 담론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라는 단어를 유의미한 학적 범주로 만들어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는 자명하지 않다. 동아시아는 문명사적, 경제적, 정치적, 언어적으로 결코 동질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동아시아’는 단순히 지리적인 경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정체성과 역사적 연속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문화적 실천의 한 과정이자 결과로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학적 연구를 통한 지식들은 담론적 재구성의 자의성을 제한하는 중요한 이성적 좌표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의미에서 ‘동아시아’라는 범주는 ‘담론’과 ‘지식’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맺음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담론과 지식 사이의 역동성

해외에서의 동아시아 연구 역시 이러한 역동성 속에서 변화되어 왔다. 아마도 서구에서 학문적으로 체계화된 동아시아론을 최초로 제공한 것은 막스 베버일 것이다. (서양의) ‘세계지배논리’와 (동양의) ‘세계적응논리’를 대비시킨 그의 종교사회학적 테제는 오랜 동안 서구 지식인들의 아시아관을 지배해왔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경제적·정치적 부상과 더불어 이러한 관념은 이제 상당부분 수정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로 미국의 아시아 연구자들에 의해 발전된 ‘유교자본주의’ 테제가 유교윤리와 경제발전 사이의 기능적 상호연관을 질문해 왔다면, 독일에서는 80년대를 달구었던 ‘근대성 논쟁’과의 연관 속에서 역사학적-사회학적 비교문명 연구가 발전되어 왔다. 이 연구들은 베버의 실질적 테제를 근본적으로 수정하면서도, 그의 종합적인 역사적 접근방식을 계승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세 가지 접근이 학문적 토론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주목받고 있는 흐름은, 이스라엘의 사회학자인 사뮤엘 아이젠슈타트가 야스퍼스의 ‘축성시대’ 개념을 바탕으로 발전시켜 온 비교문명연구이다. 이 접근은 각 문명적 전통에 내재한 ‘초월적’ 차원들이 근대에로의 이행과정에서 수행한 정치적·문화적 역할을 주목하고 있다. 그는 1997년 하이델베르크에서의 ‘막스 베버 강연’들에서 ‘근대의 다양성’에 대한 중요한 테제를 발표함으로써, 허위-일반화된 근대성 개념을 넘어서는 근대사회론을 제안했다.

다음으로 독일의 저명한 베버 연구자인 볼프강 슐르흐터 역시 꾸준히 역사사회학적 비교문명 연구를 조직해왔다. 그는 베버의 역사적 접근을 계승하여 ‘서구적 근대형성의 일회성’을 추적함으로써, 서구적 경험에 바탕한 근대성 이론을 무매개적으로 일반화시킬 수 없는 역사적 근거를 체계화했다. 최근 그는 ‘제2차 축성시대’라는 개념을 통해, 근대의 형성과정에서 각 사회들이 제1차 축성시대에 형성된 문명적 요소들을 어떻게 재구성해 왔는지에 대한 비교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비교정치학적 연구 활발

마지막으로 요한 아나손의 ‘복수적 근대성’ 이론 역시 독일에서의 토론에 점점 더 빈번히 등장하고 있는 이슈이다. 일찍이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출발했던 그는, 오랜 동안의 자기비판 끝에 최근에는 근대형성에 대한 비교역사적 연구를 발전시켜왔다. 그와 동료들은 저널 ‘열한번째 테제’를 무대로 특히 동남아와 동북아의 근대형성과정에 대한 연구들을 발표해왔다. 위의 두 접근이 비교적 장기지속되는 역사적 궤적에 비중을 두고 있다면, 아나손의 접근은 근대의 문턱에서 각 사회들이 직면했던 역사적 체험과 그 체험을 재구성하는 방식들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편 이상과 같은 비교역사적 접근과는 별도로, 독일의 정치학계에서도 동아시아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하이델베르크의 저명한 정치학자인 볼프강 메르켈과 베를린 자유대의 에버하르트 잔트슈나이더에 의해 주도되는 이 흐름은, 특히 ‘체계변동’이라는 맥락 속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비교정치학적 연구들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들은 정치적 민주화 혹은 경제적 구조변동 등을 상호고립시키지 않고, 정치·경제·시민사회를 종합하는 총체적 시야 속에서 각 영역의 변동과정 사이의 관계를 추적하려 시도하고 있다.

독일에서의 동아시아 연구들은 내부인의 시각에서 포착하지 못하는 중요한 비교사회적 관점들을 담고 있다. 이 흐름들과의 지적 교류는 한국에서의 동아시아 연구에 의미있는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신진욱/독일통신원 베를린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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