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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학문후속세대로 살아가기
지방에서 학문후속세대로 살아가기
  • 임정빈
  • 승인 2022.07.19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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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임정빈 경상국립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나는 노동 운동에 관심이 많은 사회학 연구자다. 경기도 수도권에서 살다가 경상국립대학교로 진학하면서 지방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학교는 진주, 자취는 창원, 사회단체 등 활동은 부산에서 하면서 경남의 이모저모를 알게 됐다. 소문으로만 듣던 경남은 정말 제조업이 발달한 곳이었다. 덕분에 공장에서 신문을 뿌리고 현장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하는 등 현장과 밀접한 활동들을 많이 할 수 있었다.

경남 사람들은 수도권과의 격차 문제도 느끼고 있었지만 노동 현장에서는 오히려 수도권보다 이곳에서의 운동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활동가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평생을 수도권에서 살았던 내게는 새롭고 낯선 관점이었지만 노동 운동이 활발한 경남의 분위기는 내게 많은 걸 배울 수 있게 해주었다. 만약 내가 계속 수도권에서만 살았다면 몰랐을 관점이다. 최근에는 민주노총 7월 전국노동자대회를, 한창 조선업 관련 투쟁이 진행 중인 거제에서 하자는 제안이 제출되어 결국 서울과 거제 양쪽에서 개최되기도 했었다.

한국처럼 지역주의와 지방 특색이 강한 나라라면 일부러라도 기회를 만들어 지방에서 살아보는 것이 사회과학 연구자로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수도권에서 나고 자라 지방에서 살 필요성을 못 느끼고 평생을 수도권에서만 산다면 다양한 관점을 가질 기회를 놓칠 수 있다. 해외 유학도 좋지만 자기가 사는 나라의 문화를 풍부하게 접할 기회의 장이 수도권 연구자들에게는 절실한 것이 아닐까.

혹시 제목을 보고 지방대 대학원생의 고충을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독자라면 이런 이야기에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물론 내 주변에는 지방대생으로서의 고충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지방대 학문후속세대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준 마이크를, 내가 살아보니까 좋더라는 얘기로 채우는 내가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지방대생은 학문하기 힘들다는 프레임 아래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게, 과연 정말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낳을 수 있는 길인지 묻고 싶다. 또한 지방대생은 학문하기 힘들다는 일반화가 적절한지도 묻고 싶다. 사람마다 다르다는 말로 넘어가려는 게 아니다. 나도 서울과 지방의 객관적인 물질적 격차 등은 인정한다. 하지만 지방은 힘들다는 말로만 가득한 담론은 현 상태를 극복할 전망이 있는 것일까? 그러면 지방에는 어떤 사람들이 올 것이며 어떤 사람들이 남을 것인가? 서울에 가지 못한 사람들 혹은 지방을 복구시키겠다고 희생하는 사람들? 실제로 지방대를 다니다 보면 지방이 낙후하니까 수도권으로 가고 싶다는 연구자나, 지방을 발전시키기 위해 남아서 분투하겠다는 연구자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지방에도 찾아보면 장점이 있고 서울보다 나은 점들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나에게 경상국립대 진학은 최선의 선택지였다. 지방은 지방대끼리 공동으로 학술대회를 열고 학점 교류를 하고 수도권에서는 잘 하지 않는 우리의 역사ㆍ문화 및 지방 특색을 찾는 연구를 기획하고 발전시킨다. 한국에서 일어난 굵직한 민주화 투쟁 의거들은 많은 것들이 지방에서 출발하기도 했다. 대구학생시위 및 마산의거로 출발한 4·19혁명, 부마항쟁, 5·18 등이 그렇다. 내가 살아본 경남은 경상도는 보수적이라는 편견과 다르게 아래로부터의 사회운동의 가능성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지방은 상대적으로 청년이 더 줄어서 그런지 지방 청년들에게는 정책 제안과 관련한 마이크의 제공도 활발하게 보장되어 있었다. 

그런데 현재 지방 부흥의 전략은 이처럼 지방의 장점을 선전하는 것과는 다른 듯하다. 서울과의 자원 격차에 대한 문제제기도 좋지만, 우리에게는 지방의 전망과 희망을 찾고 개발하는 것 또한 절실하다. 그렇게 하지 않고 서울은 ‘우위’에 있고 지방은 ‘낙후’하다는 프레임이 유지된다면, 학계에서는 ‘서울에 가지 못한 학문후속세대들’에게 마이크를 일부 나누어주는 것 이상의 개선은 어려울 것이다. 지방의 가능성은 서울에 좋은 인재를 진출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방의 장점을 살리는 데 있기 때문이다.

 

임정빈 경상국립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회이론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라는 제목으로 석사논문을 썼다. 민주주의, 계급, 젠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노동·정치·사람’이라는 사회운동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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