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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군징
주제군징
  • 최승우
  • 승인 2022.07.1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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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샬 지음 | 전용훈 외 4인 옮김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220쪽

17세기 서양의 과학과 철학으로 신의 섭리를 증명한 천주교 교리서
‘주제(主制)’는 주제자(主制者) 혹은 주제자인 신의 섭리를 뜻하고, ‘군징(群徵)’은 ‘여러 증거를 통해 증명한다’는 의미이다. 『주제군징(主制群徵)』은 17세기 중국에서 활동한 독일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Johann Adam Schall von Bell, 湯若望, 1591~1666)이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도덕신학자이자 예수회사인 레시우스(Leonardus Lessius, 1554~1623)가 라틴어로 쓴 『무신론자와 정치가들에 대항한 신의 섭리와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논의』(총2권) 제1권을 발췌하여 수정·번역한 책이다. 아담 샬은 신이 ‘우주 전체의 완성’이라는 공적인 목적을 위해 만물을 창조하였고, 이는 개별 사물의 모양, 구조, 활동 양상, 다른 사물 간 관계 등에서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또한 개별 사물의 존재와 활동 양상을 통해 신의 존재와 섭리를 증명한다. 이에 더해 중국 유가 지식인들에게 기독교 신학을 설득하기 위해 유가 철학의 개념과 이론을 비판적으로 논의하는 독자적인 내용도 기술하였다.

라틴어본 참고 최초 역주본, 정확한 번역과 풍부한 주석
최근 한국서학사 연구가 심화하면서 조선 지식인들이 서학으로 포괄되는 서양의 신학·철학·과학 지식에 어떻게 반응하고 이를 변용하여 자신의 논의 속으로 끌어들였는지 탐구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이번 『주제군징』 완역은 동서양의 핵심 지식이 교차하던 당대를 이해하며 오늘날 한국서학사를 심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책은 다른 판본에는 없는 저자 아담 샬의 「소인(小引)」과 천주교 신자 이조백(李祖白)의 「발문(跋文)」을 수록한 유일한 판본인 바티칸도서관 소장 소인판을 최초 간행본으로 추정하고, 번역을 위한 저본(底本)으로 삼았다. 특히 라틴어본 원서를 참고하여 번역의 완성도를 높였고, 유가철학·서양 중세철학, 과학사, 성서학 및 서양 고전학에 소양을 지닌 다섯 명의 연구자가 번역문을 만들고 주석을 더하였다.

‘스러지지 않는 인간, 위대한 신’을 말하다
레시우스 원서의 핵심 주제인 ‘영혼불멸론’을 『주제군징』에서는 ‘권지하 「12. 영혼이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증명함(十二以靈魂常存徵)」’에서 간략히 다룬다. 다른 예수회사들처럼 아담 샬도 중국인들에게 영혼의 비물질성을 끊임없이 강조하며 영혼불멸설을 설파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혼령 혹은 혼백을 기(氣)의 이합집산으로 보는 동아시아 유가철학의 혼백 개념이 물질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영혼 개념과는 다르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영혼이 비물질성에 기초한 실체라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동아시아의 음양론적인 혼백 개념을 강하게 비판함으로써 영혼불멸론을 이해시키고자 했다.
『주제군징』의 다양한 내용 가운데 특히 17~18세기 한중일 학자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끈 것은 ‘권지상 「5. 인체의 목적으로 증명함(五以人身向徵)」’이다. 이 항목은 인체의 구조와 생리활동이 모두 신의 존재와 능력에 대한 방증(傍證)임을 역설한다. 아담 샬이 직접 서술한 도입부는 “신의 섭리를 증명하고자 하니 멀리는 물건에서 취하고 가까이는 사람의 신체에서 취할 것이다. 목적이 없는 사물은 없으니 어찌 사람의 신체만 그렇지 않겠는가”라고 시작한다. 아담 샬은 당대까지 밝혀진 의학 지식을 통해 인체의 각 부분이 훌륭하게 기능하도록 만든 신의 위대성을 드러내려고 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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