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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탐사선을 탄 걸리버
화성 탐사선을 탄 걸리버
  • 최승우
  • 승인 2022.07.18 0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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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지음 | 문학수첩 | 376쪽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주인공은 증기기관차로 대륙을 가로지르고,
에디슨이 바꿔놓은 뉴욕의 풍경은 오 헨리 소설의 배경이 되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야기로 표현하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이해한다. 누군가가 슬픈 일을 당했을 때 ‘그 사람이 느낀 감정은 슬픔 점수 200점 정도다’라는 식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고 무슨 일을 당했기 때문에 슬퍼하고 있으며 그래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연을 이야기로 전한다. 이야기를 통해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기 때문에, 그 이야기 속에 자기 자신을 대신 넣어보면서 공감을 하거나 뒤이을 상황들을 짐작해 보기도 한다.

이처럼 이야기, 즉 문학은 자연스럽게 한 사회의 모습과 거기에 속한 사람들의 삶을 반영한다. 그리고 사회와 사람의 삶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변화한다. 따라서 문학에는 어떤 식으로든 과학기술의 영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중세에 생긴 아서왕 전설에서는 신비로운 보검을 뽑는 장면이 중요하지만, 근대에 나온 늑대인간을 물리치는 이야기에서는 은으로 만든 탄환을 쏘는 총이 중요한 무기로 등장한다. 에디슨이 주식 정보를 전신으로 알려주는 ‘주가정보 송신기’를 발명하지 않았더라면, 오 헨리의 단편소설 〈정신없는 브로커의 로맨스〉의 주인공은 받을 수 있는 주가 정보가 적은 탓에 오히려 덜 바빴을지도 모른다.

《화성 탐사선을 탄 걸리버》는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듯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문학의 걸작들을 통해, 사회와 인간의 삶을 변화시킨 과학기술을 좀 더 흥미진진하고 쉽게 와닿도록 설명한 책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이 잘 드러나고 기술 간의 연결 관계를 알아보기 쉽도록 대체로 시대 순으로 이야기 한 편씩을 다루는 방식으로 구성되었으며, 그저 막연하고 먼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도록 그런 과학기술이 우리나라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조선 세종 시기에 정밀한 달력을 만들기 위해 달과 해, 행성들의 움직임에 관한 책 《칠정산七政算》을 펴냈는데 이 책에는 이슬람교의 천문학 연구 결과인 《회회력回回曆》이 반영된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 내용은 사실 프톨레마이오스 같은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들의 연구를 계승한 것이다. 즉, 고대 그리스 천문학이 아랍인들을 통해 조선의 세종에게까지 전달된 셈이다.(〈chapter 4. 《천일야화》와 알고리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를 탄생시킨 과학 이야기
호기심과 상상력, 논리적인 추론이 만들어 내는 사유의 힘

저자 곽재식은 책의 시작을 여는 글 〈들어가며〉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의 과학기술은 그럭저럭 좋은 쪽으로 계속해서 잘 발전해 온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널리 읽히는 이야기들에 녹아 있는 과학적 배경을 살펴보면서, 아주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바뀌어 온 세상의 모습을 시간여행 하듯 즐기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한 편의 문학을 읽으면서 그 이야기를 탄생시킨 과학적 배경을 찾아보는 것은 그 자체로 재미있는 일이며, 그렇게 찾아낸 과학적 근거가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고 그 이야기에 더욱 공감하게 해준다.
‘호기심의 아이콘’답게 저자는 이 책 《화성 탐사선을 탄 걸리버》에서도 시공을 넘나드는 엄청난 호기심을 보여준다. 옛 문헌 속 한 줄의 기록이나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한 작은 궁금함으로 시작한 과학과 기술에 관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저자 본인과) 독자 모두의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재미 또한 책에 펼쳐지는 내용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당시 고구려 사람들은 이 쇄갑과 섬모가 옛날 요동성에 선비족들이 살고 있던 시대에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라 믿었다고 한다. (……) 정말로 쇄갑이나 섬모가 하늘에서 내려올 수 있을까? 가끔 하늘에서 작은 물고기나 벌레가 비와 함께 쏟아졌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하다. 물고기나 벌레는 무게가 가벼워서 회오리바람 따위에 휩쓸려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바람을 타고 떠다니다 지상에 떨어질 수 있을 터이니,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갑옷이나 창은 그런 식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다 떨어지기에는 너무 무거운 물체다. 바람을 타고 떠다니다가 비와 함께 떨어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chapter 2. 《일리아스》와 금속학)

트로이의 목마가 등장하는 고대 그리스에서 화성 탐사선을 우주로 쏘아 보내는 21세기의 인도까지, 저자의 끝없는 호기심과 탐구열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다. 과학적 배경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그것을 떠받치는 방대한 지식, 자료는 ‘과학’이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서 동떨어진 골치 아픈 학문이 아니라 그것에서부터 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자 태도이며 창의력과 상상력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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