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3:45 (금)
강성위 박사의 한시 세계...‘일상성·해학’으로 웃다가 울다
강성위 박사의 한시 세계...‘일상성·해학’으로 웃다가 울다
  • 김재호
  • 승인 2022.07.22 1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제의 책_『술다리』(푸른사상 | 182쪽)

시를 짓는 이가 어찌 부귀 얻기를 기약하랴!
사람 놀래줄 묘구를 생각하고 또 생각할 뿐...

전문가적 안목에서 보자면 강성위 박사의 한시는 매우 파격적이다. 이 파격성은 특히 절구(絶句)에서 두드러지는데 시의 제재는 물론 그 내용을 통해 시인이 구사한 파격의 깊이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파격을 구사하면서도 한시 고유의 격률은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 한시가 요구하는 매우 까다롭고 엄격한 격률은 스포츠에 있어 복잡한 룰과 같은 것이다. 물론 한시에는 격률이 매우 관대한 고시(古詩)와 같은 형식이 있기는 하다. 룰을 준수하지 않는 스포츠가 재미를 줄 수 없듯 격률을 준수하지 않는 한시 역시 그럴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강성위 박사 한시의 파격성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 그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만들고 있다는 데에 주의를 요한다.

 

강성위 박사(서울대 중어중문학과)의 한시 세계는 일상성과 해학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웃다보면 어느새 눈물이 난다.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도무지 시가 될 것 같지 않은 것도 성공적으로 시화시킴으로써 그는 확실히 한시의 외연을 넓히고 있는데, 그의 일상이 일반인들의 삶과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에 눈물이 나게 되는 것이다. 한시를 이토록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시인이 우리나라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문학적 큰 자산이다.

강성위 박사의 한시는 너무나 현대적이어서 과연 이것이 한시인가 싶을 정도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시임에 틀림이 없다. 그의 시는 한시라는 형식을 빌리기는 했지만 이 시대 생활인의 애환을 그대로 노래하고 있는 것이기에 현대시로 간주해도 손색이 없는데, 제목에 ‘희작(戱作)’, ‘희음(戱吟)’과 같은 말이 붙은 시편들에서 그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시라는 형식은 시상을 담는 언어적인 도구일 뿐이다. 한글이 아니라 한자로, 한시만의 독특한 멋을 살리면서 쓴 시편일 뿐인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자신의 시를 개량(改良) 한시 혹은 현대 한시로 부르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강성위 박사의 이번 한시집의 또 다른 특징은 철저히 본인의 얘기를 적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한시가 일상이나 현대적인 삶과 얼마나 밀착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일반인들과 한시 사이에 거리를 두지 않으려는, 정확하게는 그 둘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그의 치열한 몸짓인 것이다.

어렵기로 정평이 난 한시라는 형식을 시인은 왜 굳이 고집하는 것일까? 시인의 대답은 뜻밖이다. “한시를 제대로 감상하고 제대로 번역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시인이라면 감상하거나 번역할 때 작가의 입장에서 시를 바라볼 수 있지만, 시인이 아니라면 작가의 입장에서 시를 바라보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이란다. 이는 피를 쏟고서 마침내 득음을 한 소리꾼이라야 어떤 소리가 좋은 소리인지 제대로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시인은 또 한시의 국제적 공용성을 거론한다. 한시는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필수 교양이었기 때문에 지금에 한문과 한시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어떤 언어를 모국어로 하던 간에 시인의 한시를 직접 읽고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한시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국제적인 형식의 ‘시틀’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느 시인이든 시를 짓는 목적은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러기에 시인은 「代序(서문을 대신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詩手何期得富貴(시수하기득부귀) 시를 짓는 이가 어찌 부귀 얻기를 기약하랴!
驚人妙句思而思(경인묘구사이사) 사람 놀래줄 묘구(妙句)를 생각하고 또 생각할 뿐…
乾坤景似西施麗(건곤경사서시려) 천지의 경물은 서시처럼 아름다운데
軸滿??羞學詩(축만비휴수학시) 시축(詩軸)엔 비휴만 가득하여 시 배운 게 부끄럽구나.

이 시에 보이는 서시는 옛날 미녀 이름이고 비휴는 옛날 추녀 이름이다. 시축은 시를 적는 두루마리를 가리킨다. 시인의 위와 같은 의지는 일찍이 중국의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시가 사람을 놀래줄 수 없다면 죽더라도 쉬지 않겠다.[語不驚人死不休]”고 한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시인이 시를 배운 것이 부끄럽다고 한 것은 당연히 겸사(謙辭)이기는 하나 그림이나 노래가 아닌 바로 시에 대한 열정을 내보인 것이다. 단언컨대 시인은 ‘정말 좋은 시’를 향한 여정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서문을 대신하여」는 비장한 각오와 함께 자신감이 묻어나는 독백인 것이다.

시인의 시우(詩友)이기도 한 서울대 중문학과 이영주 교수는 시인의 시를 총평하여, “강성위는 세상에 보기 드문 시(詩) 사냥꾼이다. 마음을 끄는 글감이 눈에 띄기만 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곧바로 그의 시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그의 한시에 일상에서 실제 겪은 일이 많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의 한시는 읊는 대상을 한정시키지 않고 상투적인 표현을 지양하는 것이기에 어느 시편이든 진부하지 않으며 참신하고 기발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점이 바로 강성위 한시의 특장(特長)이다.”라고 하였다.

이번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 중 두 편을 소개한다.

致藝誠(치예성) 예성에게
塵?是險洋(진환시험양) 인간 세상은 험한 바다
人衆皆孤島(인중개고도) 사람은 모두 외로운 섬.
爾我共浮杯(이아공부배) 그대와 나 함께 술잔 띄움은
一橋相築造(일교상축조) 다리 하나 서로 놓는 것.

妻促斷煙(처촉단연) 집사람이 금연을 재촉하다
有朋起坐同甘苦(유붕기좌동감고) 벗이 있어 서서나 앉아서나 고락 함께하면서
點火相親三十霜(점화상친삼십상) 불 밝히며 서로 친한 지가 서른 해가 되었는데
共床未卄吾家室(공상미입오가실) 침상 함께한 지 스무 해도 되지 않는 집사람이
動促絶交言壽康(동촉절교언수강) 걸핏하면 절교 재촉하며 장수와 건강 말한다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