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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이 자리한 장소들
대학원생이 자리한 장소들
  • 박수정
  • 승인 2022.08.02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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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박수정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공동체에서 개인에게 할당된 자리는 그 공동체에서 개인이 자리한 사회적 위치를 드러낸다. 기업은 권고사직을 받아들이지 않는 노동자를 압박하기 위해 책상을 옮기거나 덜어낸다. 화장실 한 칸을 내어 만든 청소노동자의 휴게실이 문제시되는 것은 한 인간이 배설하는 장소에 다른 인간이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장소를 포개어두기 때문이다. 사회 운동의 많은 부분이 장소를 둘러싼 투쟁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인류학자 김현경이 지적했듯 장소의 문제가 사회적 인정의 문제와 닿아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대학원생들에게 할당된 장소는 어떠할까. 대학에서 대학원생들이 머물 수 있는 장소는 일시적이고 한정적이다. 학과에 부여된 연구실이 있고 대학원생만이 사용할 수 있는 도서관 개인 열람실이 있다. 소속된 연구소가 있다면 연구소 내의 자리를 하나 얻을 수도 있겠다. 문제는 열거한 장소들이 지극히 유동적이며 불안정한 자리라는 데 있다. 대학원생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는 시간 단위로 대체될 수 있는 장소이다. 그 시간은 하루의 단위일 수도, 계절의 단위일 수도 있지만 그 장소들은 언제든지 다른 누군가의 자리로 대체 가능하다.

대학원생은 학내에서 다종한 일을 수행하지만 일차적으로 대학원생이 맡은 일은 연구다. 연구 작업을 위해서는 자료가 필요하고 자료를 보관할 장소와 자료를 읽을 자리가 필요하다. 대개 전집 형태로 묶여 있는 자료와 참고 서적은 결코 두 손으로 이리저리 옮길만한 무게와 분량이 아니다. 그러나 자료의 무게나 분량보다도 문제적인 것은 이 많은 자료를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으며 자료를 보관할 장소와 자료를 읽을 장소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누군가는 자료의 더미를 시간의 단위로 옮길 것이고 누군가는 하루의 단위, 누군가는 계절이라거나 그 이상의 단위로 짐이 된 자료를 이고 옮길 것이다. 

나 또한 끊임없이 짐을 이고 학교 안을 배회한다. 사람들은 학교에 정주하는 것처럼 보이는 내게 학교 지박령이라고 웃으며 농담하지만 나는 학교 안에서 머물기보다 배회하는 일이 잦다. 4시간을 주기로 도서관 좌석을 연장하고 하루를 단위로 짐을 챙기고 푸는 행위를 반복한다. 24인치 모니터로 글을 쓰거나 업무를 보는 일, 신체에 걸맞은 책상과 의자를 가지는 일은 사치스러운 일이며 언제든 다른 장소로 옮겨가도 적응이 가능하도록 노트북과 담요, 물병 등을 챙겨 다닌다. 그렇게 일련의 짐들과 함께 학교 안을 배회한다. 

정주할 장소가 부재한 대학원생들이 자리를 찾아 학교 안을 배회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차라리 그것은 학교 ‘안’이라 조금은 다행스러운 일일까. 장소라는 게 공동체의 성원에게 부여되는 권리라면 학교 내부를 임의로 머물다 떠나는 대학원생들의 모습은 대학에서 대학원생이 자리한 위치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러한 자리 없음에 관하여, 권리 없음에 관하여 대학원생들은 목소리를 내거나 연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으레 그렇다는 듯 각자 조용히 흩어져 임시적인 자리를 잡고 반납하기를 반복할 뿐이다.

벨 훅스는 팃낙한을 인용하여 교수를 치유자이자 남을 돌보는 전문가라고 지적한다. 더 정치한 고민이 거듭되어야겠지만 교수가 담당하는 교육을 대학의 역할로 확장시킬 수 있다면, 대학 교육에는 학생들을 치유하고 돌보는 일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학원생들은 대학에서 일상적인 돌봄을 거의 경험하지 못한다. 대학은 인권 교육을 확대하고 소모임 지원 등의 프로그램을 편성하지만 이 모두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이다. 대학원생에겐 여전히 머물 장소가 부재하며 대학원생이 대학에서 경험하는 감정이란 정처 없음과 불안이 주를 이룬다. 대학원생들의 이러한 감정은 이전 세대가 경험한 감정이니 방치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대학원생이 학교에서 겪는 이와 같은 일련의 경험들은 자연스레 결핍으로 이어진다. 어디에도 정주할 곳이 없다는 생각과 어떻게든 정주할 곳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이러한 결핍은 자리를 배정받게 되었을 때 받은 돌봄을 돌려주는 삶이 아니라 축적된 결핍을 충족시키는 삶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학 교육이 권력에 순응하는 존재를 기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유를 실천하기 위한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학문후속 세대인 대학원생을 돌보는 일에 조금 더 힘써야 하지 않을까. 학문후속 세대가 순종이라거나 복종의 방식이 아니라, 빚진 몸이 되어 받은 돌봄을 돌려주겠다는 다짐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대학원생에겐 보다 많은 돌봄이 필요하다.

 

박수정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부산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과정에 있다. 「해방기 문학장의 자기비판 연구」라는 제목으로 석사학위논문을 썼다. 석사논문의 관심사를 이어나가 해방기의 청년 세대와 학병 세대에게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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