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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스트레스, 지옥의 2중주에서 어떻게 벗어날까
불확실성·스트레스, 지옥의 2중주에서 어떻게 벗어날까
  • 김재호
  • 승인 2022.08.05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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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불확실성의 심리학』 아힘 페터스 지음 | 이미옥 옮김 | 에코리브르 | 424쪽

스트레스 상황에서 에너지의 90퍼센트 뇌에 분배
최종 목표를 향한 능동적 추론과 예측 오류 수정

최근 가족의 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특히 자식을 살해하고, 부부가 동반 자살하는 경우가 잦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건 경제적 불안정성인데, 이는 결국 심리적 불확실성이라 할 수 있다. 막막한 미래에 대한 절망감,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옥죄어 오는 불안과 스트레스는 극단적 행동으로 치닫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뇌과학자이자 독일 뤼베크대 교수인 아힘 페터스가 쓴 『불확실성의 심리학』은 그런 경우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만약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정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앞으로 계속 일어날지도 모를 비극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페터스 교수가 분석하는 불확실성과 대응 방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심지어 (포도당 공급의) 90퍼센트를 뇌에 분배하고 나머지 10퍼센트를 신체에 분배한다.”(149쪽) 인간이 극단의 스트레스에 놓이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과 신경 전달 작용을 하는 호르몬 노르아드레날린이 편도체의 명령을 수행한다. 즉, 뇌에 더 많은 혈당이 흘러가도록 신체에 포도당 공급은 줄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신체가 스트레스에 반응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스트레스가 좋은 스트레스, 견딜 만한 스트레스, 출구 없는 유독한 스트레스로 나뉜다는 점이다. 유독한 스트레스를 못 견디는 이들은 동맥경화와 심혈관질환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많다. 

뇌는 평상시 에너지를 절약하는 모드를 유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불확실성에 휩싸인 상태에서는 재교육 모드로 정보 획득과 스트레스 제어에 주력한다. 뇌가 생존을 위해 모드를 바꾸는 것처럼, 우리도 불확실성에 맞서기 위해 지각적·능동적 추론을 해야 한다. 불확실성을 줄이려면 정보가 필요한데,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선 충분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실험에 따르면, 약간의 스트레스만 증가해도 뇌의 포도당 소비는 112퍼센트까지 늘어났다. 뇌가 신체의 에너지를 끌어당겨 무리를 하는 건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스트레스가 아니라 불확실성이다. “스트레스란 뇌가 내놓은 불확실성 제거 프로그램인 것이다.”(165쪽) 그래서 페터스 교수는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불확실성은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라며 “싸워야 할 상대가 박테리아이듯이 우리의 적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바로 불확실성”이라고 강조한다. 같은 맥락에서 투자의 귀재 워렌버킷은 골드만삭스 연설에서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바꿀 수 있는 것들 중에서 한 가지에 역량을 집중했다”라고 말했다. 이런 태도는 생사를 좌우하기도 한다. 

『불확실성의 심리학』의 백미는 베이즈 정리의 사전·사후(조건부)확률을 뇌과학의 측면에서 층위를 나눠 분석했다는 점이다. 사전확률은 믿음으로서 상위의 최종적인 목표와 하위의 현재 상태에 따른 가정으로 나뉜다. 내가 누군가를 짝사랑하고 있다면, 상대방과 결혼하는 건 최종적인 목표(상위)다. 물론 지금 당장은 그 혹은 그녀와 데이트(하위)를 한 번 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각각의 사전확률은 어떻게 될까? 이때 뇌가 엄청난 에너지를 쓴다. 하지만 현재 상태를 보니 그 혹은 그녀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그렇다면 내가 그녀와 데이트할 수 있는 하위 사전확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예측 오류를 수정하려면, 능동적 추론의 지각-행동 사이클을 통해 조금씩 전진하는 게 필요하다. 데이트 대신 메시지 주고 받기, 결혼 대신 연인되기나 서로 더욱 알아가기 등으로 말이다.    

 

『불확실성의 심리학』의 저자 아힘 페터스는 독일 뤼베크대 교수이자 내과 의사다. 그는 뇌과학을 연구하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페터스 교수는 ‘공감-신뢰-확실성의 선순환’을 강조한다. 믿을 수 있는 정보를 기반으로 사회적 결속과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선순환을 방해하는 건 어둠의 3인조라고 불리는 ‘마키아벨리즘, 나르시시즘, 정신병’이다. 상대방에 대한 심리적 폭력은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강조하는 페터스 교수는 우울과 수동적 태도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누가 어둠의 3인조에 휩싸이고 싶어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건 심리학·뇌과학의 기제와 동시에 사회적 안전장치다. 페터스 교수가 이 책의 말미에서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의 경제·문화 자본을 언급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사회적 안전장치는 개인들의 태도와 뇌과학만으로 분석·제공되기 어렵다. 그 실마리는 분명 찾을 수 있으나, 불공정한 출발선 등 사회과학 차원에서 극복해야 한 난제는 수두룩하다. 그래서 더욱 불안하고 불확실하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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