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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과 나…30여 년 내 인생의 황금기를 기억하며
교수신문과 나…30여 년 내 인생의 황금기를 기억하며
  • 홍경실
  • 승인 2022.08.0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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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보내 온 편지_ 홍경실 고려대 철학과 강사

 

홍경실 고려대 철학과 강사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에는 두문불출하기 일쑤이다. 간혹 장을 본다거나 산책할 요량으로 현관을 나설 때면 아파트 공동우편함으로 눈길이 향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나를 반겨주는 <교수신문>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교수가 된 게! 대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한 때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강사생활을 시작한 적이!

1992년 국내 최초로 대학문화의 선봉을 기치로 하는 전문 주간지, <교수신문>이 창간되었다. 그해,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었던 나는 어서 학위를 취득하고 교수가 되어 저 신문의 당당한 구독자가 되리라는 결의를 다졌던 기억이 새롭다. 자본으로 채색되는 사고의 세속화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가풍과 전공 학문인 철학으로 중무장했던 그 시절의 나에게 <교수신문>이란 반드시 교수직에 몸담는 사람만의 전유물인양 세상에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한 달에 네 번 정도 찾아오는 주간지의 구독자가 되기에는 일간지 구독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이 우편함을 빛내주는 <교수신문>에게 미안할 정도로, 일주일에 한 번씩 <교수신문>은  평생 강사꼬리를 떼지 못 한 채 은퇴를 몇 해 앞두고 있는 나를 변함없이 환대해주고 있다. ‘교수면 어떻고 강사면 어떻단 말인가! 강의실에서 대학생들의 온전한 시선을 받는 데도 차별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사회가 양산한 대학 강의실에서의 비정규직 일군에 나의 젊음과 학문과 가정사가 엮어지면서 지금의 나에게 이르렀다는 사실을 곰곰 생각만 해 보아도 굳이 거창한 이념이나 주의가 무색해오는 것 같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란 그 얼마나 헛된 美名이란 말인가! 한 해 또 한 해를 보내면서 임용공고문에 목을 빼며 합격통보를 학수고대했던 기억은 이제 은퇴를 얼마 남기지 않은 이 한 여름에, 강의료조차 끊기다시피 하는 억지춘향격의 이 여름방학의 막막함을 달래줄 회상거리로 불어나는 중이다.

역사에 부침해온 무수한  사건사고와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인물들의 이름을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다. ‘교수신문’의 이름이 강사신문이지 않듯이 영웅이나 위인이 아닌 필부필녀까지 죄다 기억해내어 대접을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 나에게 ‘교수신문과 나’란 이 글의 제목은 적어도 ‘강사신문과 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수니 강사니 하는 이름에 삶과 생활의 실질이 과연 어떻게 일치한다 할 수 있겠는가. 

이름이나 브랜드 가치에 목을 매달고 질주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욕망을 성찰하는 인문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이 글을 투고하면서, <교수신문>의 역사와 함께 대학 강단에서 보낸 30여 년의 강의의 역사를 ‘교수신문과 나’라는 제목의 글로써 자축하고자 한다. <교수신문>과 함께 해온 내 인생의 황금기를 기억하면서, 나보다 오래도록 지속하게 될 <교수신문>의 무궁무진한 발전을 기대해 본다.

홍경실 고려대 철학과 강사
고려대에서 박사를 했다. 저서로 『동학과 서학의 만남』 『논쟁과 철학』 『베르그손의 철학』 등이 있다. 1997년부터 <교수신문>을 구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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