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2-12-02 18:00 (금)
대학평가에 매달리기보다 학생들에게 최고의 교육경험을
대학평가에 매달리기보다 학생들에게 최고의 교육경험을
  • 배소현
  • 승인 2022.08.17 0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하제일연구자대회 20 한국 고등교육 이야기 

<교수신문>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연재를 시작하며: 새 세대 한국 인문사회 연구자를 만난다

 

우리 고등교육과 고등교육 연구가 교육을 위한 
도구나 운영체계의 외형적 발전보다 
교육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기고 성장시키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세계적인 고등교육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화려한 실행전략이 아니라 학습자를 성장하게 하는 교육의 방향성일 것이다. 
재정지원을 받기 위한 평가와 홍보에만 대학의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대학의 상황이 하루빨리 개선되어, 
대학을 선택한 학생들에게 최고의 교육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한국 대학들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시작되기를 바란다.

6년 전 미국에서 고등교육 행정 분야 박사과정을 시작하기로 했을 때, 두 가지 막연한 기대가 나의 결심을 확고하게 해주었다. 첫째, 독립적인 학문으로서 고등교육 분야 교육과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미국에서 대학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세계 무대를 선도하는 미국 대학의 운영 사례를 직접 탐구하여 국내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부푼 꿈을 가지고 대학에 대해 배우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미국에서의 박사과정은 위에서 언급한 나의 첫 번째 기대를 충족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고등교육 연구자와 소통할 기회가 제한적이었던 한국의 환경과 달리 내가 수학한 프로그램에만 무려 15명의 고등교육 분야 교수진이 있었다. 수백 명의 연구자, 행정가, 교수가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입학, 학습, 학생지원, 재정, 평가 등)에 대하여, 대학의 모든 구성원(학생, 교직원, 동문 등)의 생활과 인식에 대하여 배우고 연구하는 모습은 여태까지 접해보지 못한 놀라운 광경이었다.

대학과 대학을 이루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탐구 노력이 미국 고등교육을 발전시켜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관연구(IR), 학생지원, 다양성과 포용 부서 등, 오랫동안 발전해온 부서와 운영 활동을 경험하며 대학에 대한 지식을 넓힐 수 있었다.

그러나 몇 해가 지나도 나의 두 번째 기대만큼은 결코 충족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에만 적용되는 대학교육을 연구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러한 연구가 한국 대학에서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계속되었다. 서로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대학’은 고유한 의미를 지닌 채,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다른 규칙을 따르며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더 많은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도록 독려하는 미국의 대학 연구는 높은 대학 진학률을 보이는 한국의 상황과 거리가 있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에 대한 관심 또한 이민자로 세워진 미국 사회의 특성에 기인한다. 더욱이 미국에서 교류했던 많은 연구자들은 미국 외 국가의 고등교육에 대해 한결같은 무관심을 보여주었다.

한국 대학이 미국과 어떻게 다른지 소개할 때마다, 그저 “흥미롭구나”에서 끝나는 미지근한 반응에 지쳐갔다. 

로이터에서 발표한 가장 혁신적인 유럽대학 순위(2018)를 소개하며 대학평가기관인 QS에서 사용한 이미지다. 대학의 혁신이 기술혁신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인상을 받게 한다. 이미지=www.qs.com

세계대학순위평가, 미국에서 찾은 타협점

내가 박사 논문 주제로 선택한 ‘세계대학순위평가’는 미국에서 한국 고등교육을 연구하고자 했던 내가 찾은 타협점과 같았다. 미국 대학이 순위평가에서 최고로 평가되며 한국 대학은 이를 따라 순위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이 연구주제는 내게 가장 적합한 것으로 보였다.

나는 미국의 학자들이 축적해온 순위평가에 대한 지식과 대학 연구방법을 적용하여 한국 대학이 순위평가에 어떠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지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이 연구를 통해 한국 대학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무엇보다 더 많은 연구자에게 한국 대학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다.

한국 대학 세 곳의 대학순위평가 대응 방식을 탐구하는 연구를 수행하며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한국 대학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연구에서 살펴본 대학의 구성원들은 대학의 평판도와 연구실적 위주로 단순하게 평가되는 세계대학순위의 한계를 인지하지만, 사회적 관심과 기대, 해외 우수 인재 유치, 대학 간 국제교류 확대 필요성, 특히 세계수준 대학을 육성하려는 지난 20여 년간의 정부 정책 방향과 같은, 대학 내외부의 요인에 의해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국내 고등교육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규모는 달랐지만, 각 대학은 세계 순위 향상을 중요한 정책 목표로 삼고 있었다.

다만 대학의 유형과 거버넌스, 인지도, 자원의 차이에 따라 대학의 대응 노력 정도와 성과는 크게 달랐다. 어떤 대학은 과감한 재정투입과 전략적 홍보를 통해 순위 상승을 이루는 데 반하여, 다른 대학은 세계 평가보다 예산 지원과 직접적으로 연계된 정부 주도 대학평가에 역량을 집중해야 했다.

나는 이 연구를 통해 세계대학평가처럼 보편적인 주제일지라도, 국가별 고등교육체제의 특성에 따라, 또한 대학의 고유한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뚜렷한 한계점 보이는 정책과 프로그램들

졸업 후 이제는 고등교육 전공자로서 한국 대학의 행정을 다시 경험하며, 세계대학평가 너머 다양한 고등교육 문제들을 현재의 관점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대학의 위기’, 더 정확히 말하면 ‘충원 위기’ 상황에서 대학의 발전적인 변화를 이끌고자 하는 정부 정책에 따라 각 대학은 끊임없이 기존의 운영체계와 교육방법에서 과감히 벗어날 것을 요구받고 있다.

그 요구는 때로 재정 지원과 결부되어 강제성을 띠며,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학과별 입학정원 조정부터 대학 발전계획 수립과 캠퍼스 공간 활용 마스터플랜 수립, 대학 성과관리체계 구축, 역량기반 교육과 혁신 교수법 도입에 이르기까지 대학운영의 전 영역에 걸쳐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고유한 현실 인식과 고등교육 발전 전략, 정부 주도적 대학 정책에 대응하는 대학의 모습, 한국 고등교육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한국 대학에서 활발하게 실행되는 이와 같은 정책과 프로그램은 그 도입과 실행과정에서 세계대학평가가 그러했듯이 뚜렷한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먼저 세계대학평가와 같이 이러한 정책의 수립 과정에는 한국 대학과 분명한 차이가 있는 영미권 대학의 목표와 사례가 큰 영향을 끼쳐왔다.

한 기업 데이터 분석 업체(inetsoft)의 대학 핵심성과지표 데이터 시각화 화면. 대학 또한 기업의 실적 발표와 같이 정량적 지표로 교육성과를 보여줄 것을 요구 받고 있다. 이미지=inetsoft.com

예를 들어 미국에서 발달한 대학의 기관연구 부서는 교육 성과의 관리가 정책적으로 강조되면서 지난 몇 년간 국내 많은 대학에서 도입되어왔다. 정부의 대학역량 진단에서 인증되는 대학 성과관리체계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많은 대학이 신규 부서를 만들고 성과관리를 위한 정보시스템 설계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상황이다. 모든 대학이 자체 발전계획을 세우고 그 실행전략의 성취 여부를 수치로 보여주는 것만이 정부에서 제시한 A+ 대학의 운영 방법이다. 

이에 더하여 정부의 대학혁신 열풍을 타고 학생 성공, 학습자 맞춤형 교육, 학사제도 유연화, 문제해결 학습이 교육 현장을 휩쓸고 있다. 이 역시 애리조나주립대, 조지아텍, 스탠퍼드대 등의 교수학습 사례가 대학혁신의 모범 답안처럼 수많은 국내 대학 행정가 사이에서 공유되며 실행되는 중이다. 

세계 대학혁신 모델들, 한국 환경에 맞는 것일까

이 모든 사례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다른 고등교육체제에서 발전시켜온 특별한 운영체계와 프로그램이 한국의 고등교육 환경에서 어떻게 뿌리내릴 수 있을지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등록금도, 입학정원도, 재정 투자도, 그 어느 것 하나 대학이 결정할 수 없는 우리의 상황에서, 다방면의 재정지원을 바탕으로 학생과 대학발전을 위해 자율적 성장을 이루어온 영미권 대학의 교육과 운영 방식이 우리 대학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 여전히 미지수이다. 평가나 홍보에 활용될 수 있는 외형적 성장과 변화에만 대학의 역량이 집중되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짤막한 지면에 한국 대학의 이야기를 최대한 담아보려 노력했지만, 이를 빼곡하게 채우고도 여전히 다루지 못한 고등교육의 문제들과 연구주제가 우리 앞에 높이 쌓여있다. 대학 연구자로서, 대학 교육행정 전문가로서, 한국 고등교육과 고등교육 연구가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다른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고등교육 문제들을 함께 고민할 고등교육 연구자가 필요하다. 대학과 대학을 이루는 사람들에 대해, 대학의 모든 교육, 연구, 운영 활동에 대해 탐구하며 대학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연구자가 양성되어야 한다. 고등교육 분야가 보다 독립된 연구 분야로서 각 대학에서 발전해야 하며, 다양한 배경의 연구자, 행정가, 대학 교육행정 실무자가 고등교육의 여러 문제를 학술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우리 고등교육과 고등교육 연구가 교육을 위한 도구나 운영체계의 외형적 발전보다 교육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기고 성장시키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세계적인 고등교육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화려한 실행전략이 아니라 학습자를 성장하게 하는 교육의 방향성일 것이다.

재정지원을 받기 위한 평가와 홍보에만 대학의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대학의 상황이 하루빨리 개선되어, 대학을 선택한 학생들에게 최고의 교육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한국 대학들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시작되기를 바란다. 

배소현 한국에너지공과대 교육혁신센터 대우교수
대학 교육행정 실무자로서 한국 대학을 경험하며 대학 연구자의 길을 선택했다. 미시간주립대에서 고등교육행정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남대 미래전략정책실과 교육혁신본부를 거쳐 한국에너지공과대 교육혁신센터에서 대학교육 연구를 계속하는 중이다. 한국과 미국의 대학 국제협력부서, 교육부서, 기관연구부서, 기획부서를 경험하며 발전시켜온 대학과 대학 행정에 관한 지식과 관점으로 고등교육 국제화, 대학순위평가, 학생의 대학 교육경험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한다. 최근 발표한 주요 논문은 세계대학평가기관의 전략과 이미지메이킹, 한국·중국 연구중심 대학의 비전과 소통 방법, 온라인 국제협력학습(COIL)의 설계와 실행, 캠퍼스 다양성 지원 정책과 교차적 정의를 탐구하였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