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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시스터스부터 블랙 핑크까지…시대 상징하는 여성의 목소리
펄 시스터스부터 블랙 핑크까지…시대 상징하는 여성의 목소리
  • 최지선
  • 승인 2022.08.17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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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어디서 왔니 ⑦ 한국 팝과 여성

대중가요의 역사와 문화를 현장감 있게 조명한 『한국 팝의 고고학』 시리즈(1960, 1970, 1980, 1990)가 화제다. 이 시리즈는 한국 팝에 대한 문화연구 측면과 K팝의 뿌리를 찾는 여정으로서 의미가 있다. 특히 『한국 팝의 고고학』은 공간을 중심으로 노래에 얽힌 이야기를 통사적으로 엮어내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에 책의 공저자인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가 ‘K팝 어디서 왔니’라는 제목으로 책에서 못다한 얘기를 총 8회에 걸쳐 연재한다. 

 

보컬·어쿠스틱 연주 등 부수적 역할에 한정됐던 여성
작사·작곡부터 실험적 시도 등...남녀 장벽을 넘어 진화

이제 『한국 팝의 고고학』 시리즈에서 아쉬운 부분을 이야기할 차례다. 몇몇 평자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안타깝게도 서울 이외의 지역에 대한 내용이 빈약했고, 여성의 음악 활동에 대해서도 그리 많이 다루지는 못했다. 이번 글에서는 후자에 초점을 맞춰 보기로 한다. 

과거에 여성이 대중음악계의 주변적이고 부수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사실을 상세히 언급하는 일은 새삼스러울지 모른다. 간략히 말해 여성은 음악의 생산보다는 소비의 역할을, 생산의 영역에서도 연주자, 작곡자, 프로듀서, 디제이, 엔지니어 등과 같은 역할보다는 보컬의 역할을 더 많이 맡았으며, 연주의 역할 역시 피아노나 어쿠스틱 악기에 한정되었다는 사실은 문화연구나 젠더연구의 화두였다. 그렇지만 생산보다 소비가 덜 중요한 영역인지, 또한 보컬이 다른 직업군에 비해 덜 창의적인지 의문도 제기돼 왔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대중음악에 여성의 목소리가 빠지면 어떻게 될까. 멀게는 『한국 팝의 고고학』에서 다루지 않은 ‘조선유행가’의 대표적인 목소리에 식민지 시기의 이난영이나, 1960년대 ‘엘레지의 여왕’으로 불리던 이미자를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저자들이 ‘한국 팝’의 개막을 알렸다고 손꼽았던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는 한명숙의 목소리로 전파됐다. 신중현이 주조했던 ‘소울·사이키델릭 사운드’도 김추자, 김정미, 펄 시스터스와 같은 여성 가수들에 의해 날개를 달았다. 김민기의 작곡을 빛내준 양희은도, 박춘석이나 길옥윤 같은 작곡가의 뮤즈였던 패티김이나 혜은이 외에도 수많은 히트곡이 여성 가수의 목소리를 통해 가창됐다. 그렇지만 보컬리스트는 ‘창작자’가 아니라고 간주됐기 때문에 대중적인 인기에 비해 음악적 가치 측면에서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작사 부분에서 큰 역할을 한 여성

보컬리스트뿐 아니라 작곡, 연주, 편곡, 프로듀싱 등 창작의 많은 영역을 남성이 차지했기에 여성 창작자는 『한국 팝의 고고학』 저술에서 (특히 1990년대 이전 시기에서) 적은 비중을 할애하는 데 그쳤다. 그렇지만 작사 부문은 상황이 좀 다르게 전개되었는데 김희갑의 작곡에 단짝인 양인자는 1980년대에 작사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본격적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발라드 작사 트로이카’로 군림했던 박주연·지예·함경문 등이 한 획을 그었고 한경혜, 강은경, 윤사라, 채정은, 조은희 등이 줄을 이으며 작사는 여성의 지분이 큰 분야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도 작곡가들의 명단에서 여성의 이름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이라는 영화 제목이 절로 연상되는 지점이다. 

엔지니어 영역이나 비즈니스 분야는 남초 현상이 더 심한 직군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1970∼1980년대 매니지먼트 계에서 거론돼야 하는 두 명의 ‘파워 우먼’이 있다, 정미조, 강인원, 부활, 이범학, 민해경 등을 스타로 만든 이명순, 그리고 희자매와 인순이, 김완선 등을 길러낸 한백희가 그들이다. 그외에 1990년대 초 여성 록 밴드 와일드 로즈를 매니지먼트한 심혜련도 언급할 만할 인물이다. 

한편, 1990년대 이후에는 좀더 다양한 여성 음악인들이 등장하며 다양한 시도를 한다. 김완선에 이어, 엄정화, 이효리 등이 섹시 디바의 계보를 이어왔다면 이전 시기부터 활동한 한영애와 장필순은 독보적인 아티스트의 반열에 올랐으며 이소라, 이상은 등도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사례에 속한다. 김윤아는 밴드 자우림을 오랫동안 이끌며 꾸준히 활동해오고 있다. 

 

‘걸 파워’라는 세계적인 유행이 반영된 듯 여성 보컬을 앞세운 모던 록 그룹이 하나둘씩 출현하고 걸그룹이 속속 등장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에 갓 상륙한 알앤비의 새로운 얼굴도 박정현, 양파, 이뉴, 애즈원 등의 여성이 더 적합했던 것 같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기획 상품인 아이돌 가운데 걸그룹은 애초에 보이그룹의 ‘후속’으로 출발했는데, 지금 이런 언급을 접하면 마치 선사시대의 한 장을 읽는 기분이 들 것이다. 

‘한국 팝’보다는 ‘K-pop’이라는 어휘가 더 어울리는 시대가 되자 그런 ‘장벽’을 넘어서는 진화적인 사례들이 더 빈번히 등장한다. 투애니원과 블랙 핑크는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의 아이콘으로 등극했고 아이유는 송라이팅과 프로듀싱 능력까지 갖춘 솔로 아티스트로 성장하여 각광받고 있다. 그 외에도 여기서 호명하지 못한 여성 음악인이 훨씬 더 많다. 1990년대 후반 이후 활성화하기 시작한 비주류·인디 음악계에서 좀더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사례들이 더 많았다는 점도 언급돼야 한다. 

그런데 이들의 일부 시도에 대해 관습의 답습인가 진보적인 성취인가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대거 조명될 때에도, 여성 아이돌이 대중적인 인기를 모을 때에도 ‘여신’의 이미지로 소비되었는데 이는 관습적 여성성의 재현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순수하거나 감성적인 이미지도, 섹시하고 관능적인 이미지도 나아가 자주적이고 개척적인 이미지조차 또하나의 프레임이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거보다 많은 것이 변한 지금, 또 바뀌지 않는 것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제대로 잘 기록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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